전 청주우편집중국장
수필가

[충청매일] 선친께서는 노년에 가족들이 모이는 명절이나 조상기일 날이면 제를 올리며 자손들에게 조상의 음덕과 짧은 세상 바로 살라는 의미로 일장춘몽(一場春夢)이란 말씀을 자주하셨다. 일장춘몽이란 봄의 꿈이란 뜻으로 인간세상의 덧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인데 그 당시는 선친 말씀의 뜻을 그저 하시는 옛날이야기로 간주하고 마음속에 새겨듣지 않았다.

그러나 필자역시 어느새 40년 공직생활하며 충남북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다 정년퇴직하고 자연인이 되어 무심히 지난날을 뒤돌아보면 인생무상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아득히 먼 거 같으면서도 한편으론 바로 어제일 같이 생생한데 일장춘몽이란 바로 이럴 때 느끼는 소회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그 당시 선친도 조상들과의 어린시절추억을 상기하며 이러한 감정이 들었기에 자손들에게 하신 말씀이었는데 왜 그때는 헤아려듣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에 죄스런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새삼스럽게 일장춘몽이란 말을 되새기게 된 배경은 얼마 전 장모님께서 97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하고 떠나셨다. 아내와 양가 부모님 중 어머니와 장인어른은 작고하신지 이미 20여년 됐고 아버지는 10여년 되었는데 마지막으로 장모님마저 가시니 이제는 부모님이 없다는 생각에 철부지 어린아이처럼 허전한 마음이 들어서이다.

장모님은 아내의 직장관계로 아이들 키워주시느라 신혼 초부터 한집에서 오랫동안 같이 사셨고 아이들이 다 커서 나가 생활할 때도 함께한 시간이 많아 추억도 많고 정이 듬뿍 들었다. 나들이 하는걸 좋아해서 모시고 밭에도 가고 가물가물하다는 옛날 고향도 가보고 관광지도 가고 한마디로 엄마와 아들처럼 지냈다. 신혼 초 처갓집 고향 진천에 근무할 때는 장인어른도 생존해 계셨고 수시로 처가에 드나들며 맛있는 것도 먹고 말 그대로 ‘사위사랑은 장모’라고 장모님사랑을 많이 받았다. 그 후 단양 어상천 근무시에도 가끔 오셨고 충남 태안에도 오시어 충남·북 임지마다 추억이 많아 그리움이 크다.

특히 양쪽 홀로였던 선친 생존 시 휴가 때면 두 분이 연령도 비슷하고 부담 없어 해서 이곳저곳 다니며 추억도 쌓고 모시기가 편했다. 장모님 팔순 잔치 때는 동료직원들이 왔었는데 이번에 조문하면서 그때 이야기를 해서 지난날 회상에 잠기기도 했었다.

평소 몸 관리를 잘하고 연령에 비해 건강해서 10여 년 전 ‘장모님 건강 엿보기’란 제목으로 지면에 글을 쓴 적이 있는데 그때 그 글을 읽으며 좋아하시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그 당시 장모님 건강비결을 다시 소개하면 ‘첫째, 종교에 심취하며 산다. 둘째, 하루 종일 부지런히 움직인다. 셋째, 긍정적으로 즐겁게 산다. 넷째, 자기관리를 잘한다. 다섯째, 호기심이 많다. 여섯째, 식사를 잘한다’라고 썼다.

90대 초반까지도 집에서 둘이 식사할 때면 밥을 많이 드시는 게 사위 앞에 무안해서인지 처음엔 조금 떠다 드시고 슬그머니 더 떠다 드시곤 하는 모습을 보며 혼자 웃기도 했었다. 건강하시다 마지막 몇 년은 치매가 와 초기엔 자식들이 모시다 나중에 요양원에서 영면하신 게 안쓰럽지만 한평생 바르게 사셨다.

일장춘몽이란 말은 봄날의 꿈처럼 인생의 허무함을 이야기하는 부정적의미만이 아니고 짧은 인생을 보람되게 살라는 의미가 있다.

누구나 한번밖에 살지 못하는 인생인데 살면서 보람도 있고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는 교훈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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