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그리고 관아에서 문제가 생겼다고 하니, 잘못한 것도 없는데 겁부터 더럭 나 그저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서른 냥만 포기하면 되겠다고 생각한 것은 밤중이의 순진한 생각이었다. 아무리 무지랭이라도 제 것 빼앗기고 속 좋은 놈은 없어 속을 끓이고 있다가, 이차저차 가슴앓이가 가라앉을 쯤, 어느 날 느닷없이 최 참봉이 직접 밤중이네 집으로 찾아왔다.

“백칠십 냥을 당장 내놓거라!”

최 참봉은 다짜고짜 부모님 장례식 때 빌려 쓴 원금과 이자를 내놓으라고 윽박질렀다.

“백칠십 냥이라니유?”

밤중이는 뜬금없는 소리에 너무 놀라 기암을 했다.

“네놈 애비 상 치른다고 빌려간 돈을 몰라서 묻는 것이냐?”

“그건 지 밭을 넘겨주었잖어유?”

“네 놈은 넘겼는지 모르겠지만 난 받은 것이 없으니 어서 꿔간 돈이나 갚거라!”

“그기 뭔 말이유?”

밤중이는 도무지 무슨 영문인지 일 수가 없었다.

“네놈이 땅을 팔고도 관아에 신고를 안 해 매매가 성사되지 않았으니, 내게 진 빚을 갚아야할 게 아니더냐!”

최 참봉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최참봉네 집사와 밤중이가 무너미 쇠조밭을 이백 냥에 매매계약서를 작성한 후 자신들은 관아에까지 신고를 했는데, 밤중이가 일백 일이 지나도록 신고를 하지 않는 바람에 밭을 몰수당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니 애초에 밤중이가 진 빚 일백칠십 냥을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그건 집사가 알아서 한다고 했는 대유.”

“집사하고 했는지 안 했는지 난 모르는 얘기고, 나는 내 수중에서 나간 돈만 받으면 되니께 어서 내놓거라!”

최 참봉은 밤중이 이야기는 들은 척도 않고 막무가내로 돈만 내놓으라고 윽박질렀다. 다급한 마음에 밤중이가 관아로 달려갔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호방의 말이었다.

“매매대금 이백 냥을 납부하거라!”

호방은 밤중이에게 눈길도 주지 않은 채 사무적인 어투로 말했다.

“이백 냥은 또 뭐란 말이유?”

“최 참봉에게 땅을 팔고 이백 냥을 받았지?”

“받은 게 아니고 빚을 가리고 남은 서른 냥을 받기로 했는데, 그것도 나중에 준다고 해서 아직…….”

“어쨌든 여기 문서에는 이백 냥으로 되어 있지?”

호방은 알 수도 없는 종이조각을 담뱃대로 탁탁 쳐가며 겁을 주었다.

“야!”

“문서에 그리 되어 있는데 무슨 말이 필요한가?”

호방은 밤중이 이야기는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문서만 들먹였다.

밤중이가 호방에게 아무리 사정 이야기를 해도 소용이 없었다. 밭은 밭대로 어디론가 사라지고, 최 참봉 빚 일백칠십 냥과 관아에 벌금으로 내야 할 돈 이백 냥까지 물게 생겼다. 기가 막혔다. 밤중이는 자신이 뭔가 도깨비에 홀린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밭을 팔고도 엽전 한 닢 낯짝도 구경하지 못했는데 외려 빚이 삼백칠십 냥으로 불어나 있었으니 이 무슨 해괴한 일이란 말인가. 하지만 이미 신임 조 부사와 최 참봉은 서로 짜고 입안을 잘 알지 못하는 청풍 관내 농민들을 속여 그들의 땅을 거저 삼킨 것이 부지기수였다. 최 참봉은 관아와 결탁해 법을 악용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 대신 최 참봉은 조 부사에게 상당 부분을 약채로 떼어 상납하고 있었다.

천지개벽을 해도 밤중이 능력으로는 삼백칠십 냥이라는 거금을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밤중이는 관아에서 돌아오는 길에 그만 강물에 확 뛰어들어 죽어버릴까도 생각했다. 자신만 죽어버리면 모든 것이 끝날 것 같았다. 더 이상 살아야 나아지지도 않는 진저리나는 생활을 이젠 그만 끝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구차한 목숨 뭐가 아깝다고 식구들 얼굴이 자꾸만 떠올라 그 짓도 하지 못했다. 밤중이는 집으로 돌아와 울화통이 터질 때마다 시퍼런 낫을 움켜쥐고 달려가  최 참봉이고 호방이고 그놈들 가슴팍을 찍어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도 생각뿐이었다. 밤중이는 돈을 갚을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었다. 그런 와중에도 최 참봉과 관아의 빚 독촉은 계속되었다.

“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테니 아들 두 놈을 내게 보내게!”

어느 날 최 참봉이 밤중이에게 전갈을 보내왔다.

“이런 처죽일 놈들! 사람을 사지에 몰아넣더라도 구멍을 만들고 쫓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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