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큰일이구려. 먹고 살기 힘들다고 모두들 아우성인데 시골에서 돈이 될 만한 일들은 모두 저런 공방에 빼앗기고 있으니…….”

최풍원은 북진의 앞날이 심히 걱정되었다. 

“농촌은 끝났소!”

유필주가 단정적으로 말했다.

최풍원이 처음 장사를 시작했던 때와 비교하면 세상은 천지가 개벽할 정도로 변화했다. 그런대로 아직 지방은 예전 상술이 많이 남아있었지만 이젠 그것도 얼마 남지 않은 듯싶었다. 한양이 이토록 변했는 데 저 변화가 지방을 그냥 둘 리 없었다. 지난 북진난장에서 가내수공업으로 생산되는 물량만으로는 향시가 열려도 힘들다는 것이 여실하게 증명되었다. 이미 한양에서는 객주들이 공방을 직접 운영하며 대량으로 물산을 생산하고 있는데, 가사일을 하며 틈틈이 만들던 수공업품으로는 대적한다는 자체가 무의미했다. 농촌의 수공업은 자연 고사할 수밖에 없었다. 농촌 살림이 파탄 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농촌이 피폐해지는 것은 비단 한양의 공방에서 대량으로 쏟아져 나오는 물산들 때문만이 아니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벌써 수년째 흉년이 지속되고 있었다. 이미 도성 안팎에는 조선 팔도에서 고향을 버리고 올라온 유랑민들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조정에서는 갖은 방법을 강구하며 유민들을 강제로 고향으로 돌려보내고 있었지만 그런 소극적인 방법으로는 끝없이 밀려드는 백성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들에게는 목숨줄이 달린 문제였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굶어죽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사람이 많이 사는 한양에 와서 품팔이라도 하면 목숨은 연명할 것 같아 죽자 사자 도성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무슨 수로 막을 수 있겠는가. 창자가 등에 붙어 한양으로 들어오는 백성들을 먹을 것도 일할 것도 없는 고향으로 내모는 것은 저승길로 보내는 것이나 진배없었다. 공방을 운영하는 많은 시전상인들 중에는 다급한 유민들의 이런 어려움을 역이용하여 거저나 다름없는 품삯을 주고 부려먹고 있었다. 이렇게 생산된 값싼 물산들은 다시 조선 팔도로 퍼져 농촌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물건이 밑으로 풀려야 백성들이 근심 없이 사는 법인데, 정작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들한테는 가지 않고 부자들 재산 불리는 데만 쓰이고 있으니 그 물건이 무슨 소용이란 말이오. 참으로 답답한 일이구려.”

최풍원이 삼개나루와 공방들을 돌아본 후 유필주의 곡물전으로 돌아오며 한탄했다.

“뭐가 잘못되어가고 있는 것 같소?”

유필주가 짐짓 물었다.

“물건이 많이 만들어지면 사람들한테 풍족하게 돌아가 편안하게 살게 만들어야 하지 않겠소? 그런데 물건은 예전보다 몇 배나 만들어지고 있는데 외려 백성들 살림은 나날이 핍박해져가고 굶주림을 견디지 못하고 떠도는 유민들이 사방에 늘어나기만 하니 괴이한 일 아니겠소?”

“그건 뭔가 세상이 크게 변하고 있다는 징후 아니겠소? 예전에는 그저 일만 꿍꿍 열심히 하면 잘 살 수 있었는데 이젠 그런다고 잘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란 말이요. 그건 우리 같은 장사꾼도 마찬가지요. 내가 처음 장사할 때만 해도 물건을 한 짐 지고 나가 열심히 발품을 팔면 돈도 모이고 그 돈으로 장사도 늘리고 했지요. 그러나 지금은 그래 장사하다간 굶어죽기 딱 알맞소. 이제까지 해왔던 단순한 바꿈이 장사로는 더 이상 버텨낼 수 없소. 그것을 빨리 받아들이고 장사방법을 바꾼 것이 경상들이오. 경상들은 도거리로 축적된 자본을 투자해 대량으로 물건을 생산하고 그 물건을 싼 값으로 시장에 내놓음으로써 팔도 상권을 장악하는 것이오.”

“팔도 상권을 장악하면 뭐하느냐 이거요. 장사가 사람들한테 필요한 물건을 가져다주고 이문을 먹는 일인데 정작 필요한 사람은 물건을 쓸 여력이 없는 데.”

참으로 답답한 일이었다.

“농촌도 빨리 변화에 따라가지 않으면 점점 더 살기가 어려워질 것이오!”

“그러니 평생 농사만 지어온 사람들이, 더구나 지금 당장 먹고 살기도 힘든 농민들이 어떻게 새로운 걸 할 여력이 있단 말이오.”

“그런 건 조정이 앞장서 해야 할 일인데, 자기들 배 채우기도 급급한 터에 백성들 신경 쓸 겨를이 있겠소?”

“언제 조정에서 백성들 생각하는 것 봤소? 세상이 곤두박질을 쳐도 양반이나 부자들은 끄떡없소. 문제는 없는 백성들만 맨날 죽어난다는 데 문제가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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