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꿈세상 정철어학원 대표

 

저수지 물속으로 나뒹군 초등학생 머리를 배 위에 앉아서 발로 꾹 꾹 밟고 있다. 어린 아이에게 뭐하는 짓이냐고 나무라자 그 코치는 남자 자식은 강하게 키워야 된다고 오히려 큰소리를 쳤다. 수상스키 코치가 자기 아들에게 한 짓이다. 내가 어느 수상스키 강좌에 도전했을 때의 일이다.

나는 물위에 일어서는 것도 쉽지 않았다. 수없이 물속으로 곤두박질쳤다. 벗겨진 스키를 신으려 물속에서 버둥거리면 다리에 쥐가 났다. 너무 지쳐서 그냥 배를 태워 달라고 했더니 코치는 스키를 빨리 신으라며 저수지 가운데 나를 두고 가버렸다. 참 매정했다. 하지만 후에 코치가 어린 아들에게 하는 그런 행동을 보고 나는 혼자 계면쩍어 웃었다.

울고불고할 줄 알았던 그 아들은 아버지의 전략으로 단련된 덕인지 아무렇지도 않게 물속에서 나와 밝고 씩씩했다. 나도 결국은 수상스키를 탔다.

아들 머리를 물속에 처넣는 아버지의 마음이 좋을 리 없다.

그의 과한 행동에 동의할 순 없어도 아들이 대차고 씩씩하길 바라는 마음이 담긴 아버지의 바람을 이제는 알 것 같다. 내가 스키를 탈 수 있게 된 것처럼 아마 그 아들은 다른 아이 보다 강하고 씩씩하게 자랐을 듯싶다.

어릴 적 나는 자주 꾸지람을 들었다.

“어디 버릇없이 아버지 슬리퍼를 찍찍 끌고 다녀!”

아버지 슬리퍼를 신고 마당에 내려갔다가 어른 슬리퍼를 함부로 신었다고 혼이 났다. 밥상머리에서 무심코 숟가락을 먼저 들어도 혼이 났고 방바닥에 벗어 놓으신 옷을 타 넘어도 혼이 났다. 맛있는 반찬으로 젓가락이 향하려면 다른 식구들을 배려하지 않는다고 혼날까 눈치를 보았다. 어린 나는 엄마가 야속했다.

세월이 한참 지나 어른이 돼서야 그 꾸지람의 저의를 알았고 야속했던 엄마의 꾸지람에 감사해했다. 그 꾸지람 덕에 나는 조금 더 옳고 조금 더 예의바른 생각과 행동을 할 수 있었다. 그 꾸지람 덕에 ‘썩 괜찮은 나’가 됐다.

부모의 마음은 자식에게 늘 따듯하고 애처롭다. 자식에게 아무리 잘해줘도 부모 마음에는 늘 부족하다. 아이가 입을 옷을 찾아 정해주고, 학교에서 귀가할 자녀를 위해 식탁에 음식도 준비해 놓고, 하루 일정을 체크하며 쉬어라 학원에 가라하며 모든 것을 다 챙겨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방법은 아이가 배고픈 것을 해결하려고 고민 할 필요도 없고 본인이 필요한 시간을 챙기지 않아도 된다. 시키는 대로 따르기만 하면 된다. 편하다. 하지만 아이에게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성장할 틈은 없다.

부모는 자녀를 향한 사랑이 많을수록 자녀의 많은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고 싶다. 보다 더 편안하고 안락하게 해주고 싶다. 하지만 그럴수록 자녀가 습득해야 할 역량의 성장은 저해된다.

부모는 아이에게 판단할 기회를 주고 아이가 의사결정을 해 문제를 해결하도록 기다려줘야 한다. 아이가 성장통으로 고통 받는 것을 인내로 지켜보아야하고 좀 더 넓고 깊게 사고하도록 유도해 주는 전략 구사도 필요하다.

오늘 모진 말과 사랑의 엄한 훈육을 감내한 부모의 지혜 덕에 자녀는 ‘썩 괜찮은 나’가 돼 이웃과 웃음을 나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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