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도 매기가 좋아야 여리도 많이 남기지요. 매기가 없는 데 여리꾼 일인들 많겠소? 그리고 이건 장사꾼이 할 일이 아니오. 장사가 물건을 팔아야지, 입만 가지고 하는 장사가 무슨 장사겠소. 이런 장사는 하루살이요.”

“그런데 아까 비단상전 주인과는 어떻게 거래를 한 것이오?”

“아까 사 자에서 탈 차를 해도 되겠느냐고 한 말은 주인이 물건 값을 얼마나 받을 것인가 미리 알아본 것이고, 그 값에 내 구전을 붙여 손님에게 판 것이오.”

“탈 차는 뭡니까?”

여리꾼의 설명은 이러했다.

상전 주인과 여리꾼 사이에는 하나에서 열까지 약속된 암호가 있었다. 이 암호를 ‘변어’라고 했다. 이것은 주인과 여리꾼이 받을 물건 값을 정하는 것을 손님이 알아듣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일테면 사(些)라는 한자에서 위의 차(此)자를 빼면 밑의 이(二)자만 남는다. 따라서 탈차는 ‘둘’을 뜻하는 동시에 비단 한 필 값이 스무 냥임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선전에서의 비단 한 필 값은 열일곱 냥이 원가였다. 주인은 여기에 석 냥의 이문을 붙여 스무 냥에 팔 생각이었다. 그런데 여리꾼이 흥정을 붙여 스물한 냥에 비단을 판 것이었다. 그러므로 주인에게 한 냥은 더 남은 이익, 즉 여리였고 이를 손님을 데리고 와 흥정을 성사시킨 여리꾼에게 준 것이었다. 주인 입장에서는 여리꾼 덕에 앉아서 물건을 파니 좋은 일이었고, 여리꾼은 말품을 팔아 돈을 버니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그럼 양반과 같이 와 한 냥을 먹은 사람은 뭡니까?”

“뭐긴 뭐요. 떼어먹은 거지!”

“떼먹다니요?”

“지체 높은 양반이 우리 같은 상것들하고 직접 흥정을 하며 말을 섞겠소? 그러니 흥정을 할 아랫것들을 항시 데리고 다니지요. 아까 나와 흥정을 했던 사람은 양반집 집사쯤 되겠지요. 그 집사는 처음 흥정을 할 때 내가 스무 닷 냥을 달라고 했는 데 스무 한 냥에 샀으니 넉 냥을 깎았다고 생각해서 거기에 한 냥을 붙여 주인을 속이고 자신이 먹은 것 아니겠소.”

한양에는 별의별 직업에 별의별 사람이 다 있었다. 아무것도 없이 입으로만 먹고사는 사람, 문밖에 주인을 세워놓고도 버젓하게 속여먹는 사람, 누군가가 한양에서는 ‘눈 감으면 코 베어간다’고 하더니만 그 말이 맞았다. 봉화수는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겠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런 한양의 모습에 흥미가 일었다.

“내일은 나와 삼개나루터를 한 번 돌아봄세!”

최풍원과 봉화수가 광통교 부근의 시전을 살펴보고 돌아오자 유필주가 말했다.

“유 선주, 시전의 그 많은 물건들은 모두 어디서 나오는 것이오?”

“중국에서도 들어오지만, 대부분 공방에서 만들어지고 있는 것들이오.”

“공방은 나라에서 필요한 물산들만 만드는 게 아니오?”

“나라에서 공방을 운영하던 것은 벌써 예전 얘기요. 지금은 각 전마다 공방을 차려놓고 일꾼들을 고용해 자기들이 취급하는 물산을 대량으로 직접 만들고 있다오.”

“그래도 그 사람들이 밥을 먹을 수 있소?”

최풍원이 유필주에게 물었다.

“밥을 먹다니?”

“베를 짜는 일이야 큰일을 다해 놓고 짬짜미해서 가용에나 보태 쓰는 일인데, 그걸 업으로 삼아 해도 살림을 꾸려나갈 수가 있느냐 이 말이요.”

최풍원 뿐 아니라 다른 대다수의 사람들의 생각에 베를 짜는 일이란 하루 농삿일을 끝내놓고 밤에 하거나, 추수가 끝난 뒤 농한기에 부녀자들이 하는 작업이었다. 당연히 생산량도 많지 않았다. 한 농가에서 아녀자들이 일 년 내내 밤잠을 설쳐가며 생산해야 기껏 열 필 안팎이었다. 그래서 그것은 주업이 될 수 없었다. 그런데 공방에 나가 하루 종일 베만 짜면 무얼 가지고 집안 살림을 꾸려나갈 수 있겠느냐는 이야기였다.

“공방 주인이 품값을 주지 않소?”

“그것참! 베를 얼마나 짜서…….”

최풍원은 시전에서 직접 운영한다는 공방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백문이 불여일견이지, 백번 말로만 해서 뭘 하겠소. 내일 삼개나루 다녀오는 길에 베짜는 공방도 둘러봅시다.”

유필주가 말했다.

이튿날, 유필주는 최풍원과 봉화수를 데리고 삼개나루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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