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테라피 강사

 

울타리는 풀이나 나무들을 얽고 엮어서 경계를 세우기 때문에 벽돌이나 돌로 쌓는 담에 비해 집 안팎이 훤히 넘겨다 보이는 이웃 친화적 경계이다.

마리아 굴레메토바는 ‘울타리 너머’라는 그림책에서 자유와 소통, 또 그것들을 위한 용기에 대해 이야기한다. 글과 그림은 단순하지만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아기돼지 소소는 소년 안다와 함께 넓은 집에서 살고 있다. 소년 안다는 아기돼지 소소에게 일방적이다. 무엇이 필요하고 어떻게 놀아줘야 좋아하는지 잘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안다는 말을 많이 하고 소소는 듣기만 하며 안다는 소소한테 어울리는 옷이 무엇인지 뭘하고 놀면 좋을 지도 알고 있고 소소는 따르기만 한다. 어느 날 안다의 사촌이 오면서 혼자 있을 수 있게 된 소소는 산책을 나갔다가 멧돼지 산들이를 만난다. 야생의 산들이는 소소가 입고 있는 옷을 보면서 숲에서 달릴 때 불편하지 않느냐고 달리면 신나니까 같이 달리겠냐고 묻는다. 자기는 달리지 않는다고 돌아가야 하니까 나중에 다시 와달라며 소소는 집으로 돌아온다. 어두운 방 안에서 내다보는 밖은 너무도 다르고, 만났던 곳에서 서성거려보지만 산들이는 나타나지 않는다. 어느 저녁 산들이는 덫에서 빠져나오느라 늦었다며 신나게 달리자고 한다. 소소는 울타리는 넘어갈 수 없다고 하고, 그러면 만나서 이야기나 하자고 말하고 산들이는 돌아간다. 사촌이 돌아가자 안다는 소소가 만들고 있던 울타리를 부숴버리고, 소소에게는 의미없는 놀이를 하자고 하며 끝없이 이야기를 해댄다. 소소는 내일은 산들이가 찾아오기를 바라며 잠을 잔다. 다음날 해질녘이 되자 소소는 안다와 하던 왕자놀이 옷을 벗어던지고 숲을 향해 내달린다. 멍청이가 어디로 갔냐고 안다가 찾을 때 소소는 이미 울타리 너머를 달리고 있다. 

등장인물들 안다, 소소, 산들이와 울타리는 사람 사는 이야기 같다. 멋지고 편안해 보인는 안다와 소소가 사는 공간, 안다는 소소가 매우 만족하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며 소소의 일상을 일방통행하지만 소소의 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그림 색상과 여러 사물로 표현한다. 둘 사이는 겉으로 평온해 보이지만 소소가 갈등과 슬픔을 드러내지 않을 뿐이다. 소소가 안다에게 맞춰주는 생활임은 둘이 있을 때는 아기 돼지가 사람처럼 두 발로 서지만 멧돼지 산들이와 있을 대는 돼지답게 네 발로 서는 모습으로도 이야기한다. 안다가 사촌과 노는 시간은 소소가 안다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기로 살아갈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안다가 생각하는 소소가 아니라 소소의 생태에 맞는 소소의 생활을 해볼 기회, 앞표지와 뒷표지에 걸쳐 드넓게 펼쳐진 들판에 작가는 울타리를 그리고 서성이는 작은 소소를 보여준다. 과연 저 울타리를 넘을 수가 있으려는지 따라가 보고 싶게 한다.

상대와 통하지 않는 대화와 놀이, 안다의 으리으리한 저택, 어울리지 않는 옷들은 풍요한 물질적 환경을 말하는 것이겠다. 망설이는 소소에게 산들이는 용기를 주고 손을 잡아 이끌어주는 진정한 친구이다. 어쨌거나 울타리가 안전망이기도 하고 한계이기도 하다면, 저마다 울타리를 쳐 놓고 그 안에서 자유를 찾아 방황한다면 울타리 밖의 삶도 둘러볼 용기도 필요하다. 어쨌거나 울타리 안에서 안전욕구는 충족된대도 사는 것 같지 않은 관계 속에서 지내고 있다면.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