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을 사려고 그러시오?”

그때 얼굴에서 약빠름이 잔뜩 묻어있는 여리꾼이 비단을 파는 선전 앞을 서성이던 어떤 사내에게 접근했다. 그 사내의 뒤 서너 발짝 뒤쯤에는 곱게 차려입은 양반이 서서 헛기침을 하며 딴전을 피우고 있었다.

“눈요기나 하려는 거요!”

여리꾼의 물음에 사내는 퉁명스럽게 대답을 했다.

시전의 장사꾼들 중에는 가난해서 자기 전포가 없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장마당을 서성이며 물건을 사려는 사람이 눈에 띄면 그들을 상전으로 끌어왔는 데 이들을 ‘여리꾼’이라고 불렀다. 여리꾼은 특정전포에 소속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무엇을 사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꾀어 상전으로 데려갈 뿐이었다.

“내 보기에 돈푼깨나 있는 양반댁에서 나온 것 같으신데, 내 잘 아는 비단전이 있는데 그리로 갑시다. 이번에 중국에 갔던 사은사를 따라갔던 관원들이 몰래 가지고 온 물건인데 정승 판서도 평생 한 번 입어볼까 말까 하는 최고 물건이라오!”

여리꾼의 설레발에 사내는 잠시 방향을 잃고 머뭇거렸다.

“잘해드릴 터이니 가십시다!”

여리꾼이 틈을 주지 않고 사내의 소매를 잡아끌며 앞장을 섰다. 사내가 끌려가자 양반도 그 뒤를 따랐다. 그러더니 여리꾼은 비단이 잔뜩 쌓여있는 전으로 들어갔다.

“한 필에 사 자에서 탈차를 하면 되겠는가?”

여리꾼이 주인에게 뜻모를 말을 했다.

“그거면 되겠네.”

주인이 말했다.

“한 필에 얼마나 한다오?”

양반과 함께 온 사내가 여리꾼에게 물었다.

“스물닷 냥이오!”

“무슨 비단이 금보다 비싸단 말이오.”

“손님 허풍도 세십니다. 아무렴 비단이 금값만이야 하겠습니까요?”

“그 값이면 다른 비단 서너 필은 사겠소!”

“대국에서 온 최상품이요!”

대국에서 온 비단이라는 말에 사내가 모시고 양반을 돌아보며 눈치를 살폈다. 양반이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더 흥정을 해보라는 말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과하니 뒤에 붙은 꼬리는 잘라냅시다!”

“그렇게 팔면 밑집니다.”

“그렇다면 흥정은 끝난거고, 다른 집으로 가볼 수밖에…….”

사내가 말꼬리를 흐리며 전 밖으로 나가려는 시늉을 했다.

“아따, 성질도 급하시기는. 좀 기다려 보시요!”

여리꾼이 황급하게 사내를 잡아놓더니 선전 주인과 이야기를 하고 돌아와 다시 사내에게 말했다.

“우리도 스무 냥에 들어옵니다. 우리도 중간에 구전이라도 먹어야 하지 않겠소? 그러니 스물한 냥만 주시지요?”

“좋소. 그럼 스무 한 냥에 합시다!”

그러더니 사내는 선전 밖에 서 있던 양반에게로 가서 말했다.

“스무 두 냥이랍니다, 주인어르신!”

여리꾼은 분명 스물한 냥이라고 했는데, 사내는 자기 주인에게 스물두 냥이라고 말했다. 양반이 전대를 사내에게 넘겨주었다. 사내가 엽전 꾸러미를 받아 돈을 헤아리자 양반은 그 모습을 슬쩍 살피며 짐짓 다른 곳을 보는 체 했다. 사내가 스물한 냥을 주인에게 건네주고 한 냥은 자기 주머니에 재빨리 넣었다. 선전 주인은 다시 여리꾼에게 한 냥을 건네주었다.

“장인어른, 저들의 하는 일이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요.”

봉화수는 말로만 들었지 여리꾼을 직접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무것도 없이 말품만 팔아 금시에 한 냥을 버는 여리꾼의 재주가 신기하기만 했다. 양반과 함께 시전에 온 사내의 행동도 이상했다. 여리꾼은 전포주인이 남기는 이익에 자기의 이익을 더 붙여 야 자신의 몫이 생기는 것이었다. 따라서 여리꾼이 자기 몫을 챙기려면 주인이 팔려는 가격을 먼저 알아내서 그보다 비싼 값을 데리고 온 손님에게 불러야 했다. 그런데 여리꾼은 선전 주인과 뜻 모를 말만 하고 난 후 바로 흥정에 들어간 것이었다. 봉화수는 그것이 궁금했다.

“도대체 어떻게 흥정을 한 것이오?”

봉화수가 선전에서 나오는 여리꾼을 잡고 다짜고짜로 물었다.

“그걸 배워 뭘 하려고 그러슈?”

여리꾼은 귀찮다는 듯 육의전 뒷골목의 피전골로 들어섰다. 봉화수도 그를 따라갔다. 여리꾼이 피전골 주막으로 들어가자 봉화수도 함께 주막으로 들어갔다. 한양은 주막도 북진과는 천양지차였다. 기껏해야 들마루나 멍석 위에서 개다리 밥상에 내오는 술을 먹던 청풍의 주막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술청만 해도 즐비하게 늘어선 목로가 청풍 장날에 모이는 장꾼들을 반은 한꺼번에 먹일 정도로 널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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