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한양에 전얼 하나 내고 배워 좀 더 큰 규모의 장사를 해볼 작정이네.”

“그렇다면 하루 이틀 걸릴 일이 아닐세 그려. 누추하겠지만, 일이 끝날 때까지 우리 집에 머물면서 천천히 돌아보게!”

“고맙네!”

이튿날부터 최풍원과 봉화수는 한양 일대 장마당을 돌며 조사를 했다. 두 사람은 먼저 조선 팔도에서 가장 화려하고 번듯하게 차려졌다는 육의전부터 가보기로 했다. 육의전으로 가는 길목의 광통교 주변은 도성의 모든 관곡을 저장하는 창고가 밀집되어 있었다. 그만큼 그 주변은 일 년 내내 사람들이 들끓으며, 사상인들의 전과 방과 가가들이 몰려들어 한양 상업의 중심지였다. 그곳은 없는 것이 없는 도깨비 장터였다.

진열된 물목만 보고만 있어도 속이 흡족했다. 짚신·나막신·노파리·설피·당혜·태사혜·수혜자를 파는 신발전, 갓·복건·유건·백립·사모·초립·방갓·굴건을 파는 모자전, 참빗·어레빗·반달빗·용잠·화잠·나비잠·호도잠·면경·쪽집게 같은 부인들의 머리 장식을 파는 전, 부인들이 선호하는 노리개 삼작·투호 삼작·향랑 삼작과 온갖 가락지를 파는 패물전, 물감과 화장구를 파는 전, 원반·소반·책상반·해주반·번상·호족반·개다리소반을 파는 상전, 바구니·광우리·채반·용수·도시락·고리·조리를 파는 죽세전, 사방등·용등·마늘등·수박등·북등·조족등·촛대·등잔·양각등을 파는 등전, 합죽선·백우선·오엽선·윤선·꼽장선·미선·태극선을 파는 부채전, 가마솥·노구솥·절구·번철·삼바리를 파는 생수철전, 놋그릇·주발·신선로·촛대·향로를 파는 유기전, 독·단지·시루·소래기·방구리·자배기·동이·뚝배기·약탕기·접시·사기를 파는 옹기전, 담배 잎을 파는 연초전, 돗자리·갈대자리·삿자리·자리·발을 파는 자리전, 호미·낫·톱·괭이·곡괭이·쇠스랑·가래·삽을 파는 농기구전, 규·구·준·먹통·대패·자귀·줄긋기·송곳·줄·장도리·달구·끌을 파는 공구전, 칠·목기·장롱·절구·방망이·홍두깨를 파는 목물전, 생어물전과 건어물전, 곡물 가루를 치는 솔체전, 인절미·쑥개떡·시루떡을 파는 떡전, 콩엿·호박엿·생강엿·계피엿을 파는 엿전, 솜 파는 전, 채마전, 과실전, 가축전, 잡화전, 도자전, 병풍전, 약전 등 헤아릴 수도 없는 전들이 장마당 구석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구하지 못할 물건이 없었고, 그래서 광통교 주변에는 항상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생필품들을 사고 팔았다.

광통교를 건너면 어수선한 상전과는 달리 반듯한 길 양편으로 정돈된 육전거리가 나타났다. 시전 상가는 목조로 된 이층 건물에 기와를 이은 집으로 위층은 창고였고, 길가 쪽으로 난 아래층을 전포로 사용하고 있었고, 전포 뒤쪽은 가족들의 생활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육의전은 한양의 시전 중 규모가 큰 선전, 면포전, 면주전, 내?외어물전, 지전, 저포전 등 여섯 개의 시전을 말하는 것으로 ‘일물일전의 원칙’을 철저하게 지켰다. 육의전의 전주는 국역 부담의 의무를 지는 대신 금난전권이라는 전매 특권을 이용하여 독점으로 장사를 하는 어용상인들이었다.

육전거리로 들어서자 최풍원과 봉화수는 온갖 휘황한 물산들 때문에 한 군데 눈을 멈출 수가 없었다. 각 전마다 화려하고 진귀한 물산들이 종류 별로 그득그득하게 쌓여 있었다. 한눈에 보아도 그 물건들에서는 품격과 고급스러움이 풍겨왔다.

육의전 중에서도 가장 거액의 자본을 필요로 하는 선전에는 공단·대단·사단·궁초·생초·설한초·운문대단·일광단·가게추·옹문갑사·상사단·통해주·장원주·포도대단·조개비단·금선단·설사·뱃사·호로단·만수단·우단·광월사·아롱단·팔양주·쌍문초·흑저사·남추라·자지상직·거문궁초 등 생전 처음 보는 비단들이 넘쳐났고, 단진목·해남목·고양목·강나이·상고목·군포목·공물목·무녀포·천은·정은·서양목·서양주를 파는 면포전, 명주를 취급하는 면주전, 백지·장지·대호지·설화지·죽청지·상화지·화문지·초도지·상소지·분당지·궁전지·시축지·능화지를 취급하는 지전, 북어·관목·꼴뚜기·민어·석어·통대구·광어·문어·가오리·전복·해삼·가자미·곤포·미역·다시마·파래·우뭇가사리를 취급하는 내·외 어물전, 농포·세포·중산포·함흥오승포·안동포·계추리·해남포·왜포·당포·생계추리·문포·조포·영춘포·길주명천을 취급하는 저포전들이 질서정연하게 육전거리에 자리 잡고 있었다.

“장인어른, 광통교 밖 장마당이나 안의 육의전이나 정말 대단하네요.”

“그러게 말이다.”

“저런 물산들은 다 어디서 오는 걸까요?”

“글쎄-.”

두 사람은 육의전의 화려함과 다양한 물목 물량에 넋이 빠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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