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통대학교 행정학부
명예교수

[충청매일] 세상의 변화를 보기 위해서는 그 당시 유행하는 대중음악을 보면 보인다고 한다. 2016년 노벨 문학상을 탄 밥 딜런(Bob Dylan)의 1960년대와 1970년대의 노래를 보면 미국 젊은이들의 고민과 저항문화를 볼 수 있고, 김민기의 아침이슬을 부르면 1970년대 군부독재의 암울한 우리 사회의 구조를 보여준다.

최근 들어 아침 산책길에 나서면 나이 드신 분들이 트로트를 들으면서 공원을 걷는 사람이 많아졌다. 트로트 대세가 아침 산책길까지 덮고 있다. 조용히 걷고 싶은 데 노래를 크게 틀고 있는 사람을 보면 짜증스럽기도 하다. 그렇지만 노래와 함께하면 혼자서도 잘 논다는 말을 듣고는 공원의 트로트가 새롭게 들리고 있다.

혼밥, 혼술의 나홀로 문화가 ‘나 혼자 산다’는 모 방송사의 토크 프로그램을 온종일 재탕 삼탕하게 만들고, 코로나 19로 1인 문화 열풍을 불편하지 않은 문화로 만들고 방역을 이유로 음식도 자기 앞 접시로 나누어 먹는 것을 사회가 제도화하고 있다.

조금 오래된 통계이지만 2015년 OECD가 전 세계 37개 주요 국가를 대상으로 ‘보다 나은 삶의 지수’를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어려울 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를 물은 결과 한국인들은 72%만이 “있다” 답해 OECD 회원국 중 가장 낮은 비율을 보였다. 조사 대상국 평균은 88%였다.

최근 유행하는 트로트 가사를 보면 이러한 사회의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인터넷 조회 수가 천만을 넘어선 나훈아의 ‘테스형’은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죽어도 오고 마는 또 내일이 두렵다’고 힘들고 외로운 사람들을 대신하여 세상을 향하여 외치고 있다. 우스운 현상이지만 이 가사를 정치권이 정치적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이번 주 대중음악 트로트 차트 1위에 있는 임영웅의 ‘이제 나만 믿어요’는 나조차 믿지 못하는 내게 ‘나만 믿어요’라고 외칠 사람이 생긴 것을 노래하고 있다. 영탁은 ‘가짜가 많은 세상에 믿을 사람은 당신뿐’이라면서 외로운 사람의 희망을 찐으로 대변하고 있다.

지금 세상은 버트런트 러셀이 이야기하는 자연으로부터 소외, 인간으로부터 소외, 자기 자신으로부터 소외를 더욱 가중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코로나의 팬더믹은 이러한 변화에 커다란 물결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그 변화와 소외의 물결 속에서 믿을 수 있는 존재로 그 가치를 가지는 대중음악이 재유행을 하는 것은 당연하고 고독한 군상인 노년에게 사랑을 받는 것은 음악이 자신과 시대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트로트는 인간 희로애락의 감정을 아주 솔직하게 표현한다. 음악은 그 인생이 가지는 오랜 질병을 견디도록 도와준다. 음악에 핵심은 둘 이상의 음이 어울리는 화음에 있다. 대중의 사랑을 받는 트로트와 함께 사회의 모든 부분이 함께 울릴 수 있는 조화로운 사회가 된다면 우리는 더욱 믿을 수 있는 세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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