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달’ 드라마작가 김운경

[충청매일 김정애 기자]

 

평소 존경하는 ‘김수현 선생님 드라마아트홀’ 개관 감사

1972년 일일드라마 ‘새엄마’ 보고 드라마의 가치 느껴

일반 시청자들이 갖고 있는 편견·인식 변화 가능성 확인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됐지만 소설가 도전 만만치 않아

드라마 작가로의 전향, 좋은 선택이었고 운(運)도 좋았다

‘서울의 달’, 소시민들의 삶 바탕으로 40% 시청률 기록‘

소외된 이웃들이 성장해 가는 사람냄새 나는 작품 추구

 

 

“청주는 30년 전 친구를 만나러 와 본 후 두 번째입니다. 평소 가장 존경하는 김수현 선생님 고향인데다 드라마아트홀이 개관됐다고 해서 궁금했습니다. 청주시에서 드라마작가들의 대부인 김수현 선생님 이름으로 아트홀을 개관해줘 너무 감사하고 기쁘죠.”

1994년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찍고!’ 등 유행어를 만들고 전 국민을 울고 웃겼던 드라마 ‘서울의 달’ 작가 김운경(66). 그가 지난 12일 ‘드라마로 소통하다’를 주제로 공개 강연하기 위해 김수현드라마아트홀을 찾았다.

김운경 작가가 드라마 작가에 관심을 가지게 된 배경도 김수현 선생님과 연관이 있다. 1972년 MBC에서 방영된 일일드라마 ‘새엄마’를 보면서 드라마가 일반 시청자들이 갖고 있는 편견과 인식의 변화를 줄 수 있다는 점에 대해 감동했다. 드라마의 가치를 처음으로 인식한 작품이다. 

‘새엄마’는 완고한 가정에 후처로 들어가 아름다운 마음씨와 폭넓은 이해로 가족들에게 인정을 받게 되는 한 여인의 이야기를 그린 홈드라마다. 당시 만해도 작가의 머릿속에 새엄마는 ‘계모’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컸다. 낳아준 엄마도 소중하지만 키워준 엄마의 모성도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놀라운 드라마였다. 이후 드라마 작가로 활발하게 활동하던 중 김수현 선생님과 한국방송작가협회 일을 함께 하게 된 인연이 있다.

“하늘같은 선생님과 가까워지게 된 계기죠. 선생님은 어떤 일이 있어도 작가로서 자긍심을 잃지 않으셨죠. 누구 앞에서나 당당하셨습니다. 후배들이 믿고 존경할 수밖에 없죠.”

1994년에 방영된 국민드라마 ‘서울의 달’ 김운경 작가가 지난 12일 충북 청주시 김수현드라마아트홀을 찾아 ‘드라마로 소통하다’ 주제로 공개 강연을 하고 하고 있다. 김운경 작가는 서울에서 성공을 꿈꾸는 시골 출신 김홍식(한석규 분)과 박춘섭(최민식 분),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 신분 상승을 꿈꾸는 차영숙(채시라 분)을 주인공으로 소시민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40%의 시청률을 기록한 ‘서울의 달’외에 ‘서울 뚝배기’, ‘파랑새는 있다’, ‘짝패’ 등의 작품이 널리 알려졌다.
1994년에 방영된 국민드라마 ‘서울의 달’ 김운경 작가가 지난 12일 충북 청주시 김수현드라마아트홀을 찾아 ‘드라마로 소통하다’ 주제로 공개 강연을 하고 하고 있다. 김운경 작가는 서울에서 성공을 꿈꾸는 시골 출신 김홍식(한석규 분)과 박춘섭(최민식 분),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 신분 상승을 꿈꾸는 차영숙(채시라 분)을 주인공으로 소시민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40%의 시청률을 기록한 ‘서울의 달’외에 ‘서울 뚝배기’, ‘파랑새는 있다’, ‘짝패’ 등의 작품이 널리 알려졌다.

 

작가가 청주를 즐거운 마음으로 찾게 된 배경을 오랫동안 설명했다.

재벌이나 좋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보다는 지극히 평범하고 가난한 소시민들의 삶에 주목해 온 작가도 드라마 작가가 된 동기가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께서 불조심 표어를 과제로 냈다. 과제를 제출했더니 선생님께서 아주 큰소리로 웃으셨다. 이후 교무실로 불러 표어를 읽어보라 하셔서 읽었더니 다른 선생님들도 박장대소했다. 이후 선생님이 “너는 이다음에 글을 쓰게 될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이후 백일장에 여러 번 나가게 됐고 상을 여러 차례 탄 기억이 있다. 그 때문일까. 막연했지만 글 쓰는 소질이 있다고 생각했다.

부산에서 태어나 인천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작가는 군대를 다녀  와서야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진학했다. 작가는 “학창시절 모범적이지 않았다. 공부 못하는 친구, 거지와 약장수 같은 소외계층들과 어울렸다”며 “당시의 시간들이 후에 작가활동에 영향을 미쳤다. 내면에 양아치즘이 녹아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바로 작가의 길을 간다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건설과 관련한 직장에 들어가 현장 납품 일을 하게 됐다. 그러던 어느 날 문학동아리에서 함께했던 한 친구가 소설로 등단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됐다. 큰 자극이 됐다. 할 수 있다, 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화를 쓰게 됐다. 당시 ‘모모’와 같은 미하엘 엔데의 작품을 즐겨 읽고 있었다. 미하엘의 작품 중 곱추인 주인공이 하늘나라로 올라가며 어깨에서 날개가 나오는 장면을 읽고 영감을 받았다. 실제 같은 마을에 곱추 청소년이 살았다. 그 청소년을 보며 동화를 쓰고 싶다는 충동을 느꼈다.

첫 작품 ‘하느님의 호주머니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작가의 힘은 세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동화를 쓰고 소설가가 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지요.”

소설에 도전했지만 만만치 않았다. 재능에 대한 회의가 찾아와 고통스럽기도 했다. 황석영 작가의 소설을 접하고 그 이상을 뛰어넘을 자신이 없었다. 삼류로 산다는 것은 참혹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진로를 바꿀 수밖에 없었다. 선택한 것이 KBS 여름방송학교다. 이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드라마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좋은 선택이었고, 어찌 보면 운이 좋았다.

방송학교 과정을 마치고 어떤 파트의 작가로 시작할까 선택지가 주어졌을 때 ‘전설의 고향’을 택했다. 1977년 ‘전설의 고향’ 전담 작가를 시작으로 드라마 작가의 필모그래피를 쌓기 시작했다. 사람들에게 이름을 알리게 된 작품은 1988년 ‘한지붕 세가족’이다. 이 작품은 여러 명의 작가가 이어 쓴 작품으로 서울을 배경으로 이웃들이 서로 갈등하고 화해하면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은 코믹 홈드라마다.

이어서 ‘회전목마’, ‘서울뚝배기’, ‘형’ 등의 작품을 썼으며 많은 사람에게 ‘김운경 표 드라마’를 각인시킨 ‘서울의 달’이 이어졌다. ‘서울의 달’이 시청률 40%라는 성공을 거둔 후 ‘옥이 이모’, ‘파랑새는 있다’, ‘흐린 날에 쓴 편지’, ‘도둑의 딸’, ‘짝패’ 등을 집필했으며 JTBC ‘유나의 거리’가 최근작인 셈이다.

이 같은 작가의 작품에는 공통점이 있다. 재벌이나 의사, 변호사 같은 좋은 직업을 가진 사람보다는 제비족, 카바레 사람들, 소매치기, 건설 노동자, 차력사, 노숙자 등이 주요 등장인물이라는 점이다. 그의 관심은 우리 사회에 소외된 이웃이며 이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성장해 가느냐하는 것이다.

“이것 외에는 잘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배수의 진을 치고 열심히 쏟아 부었죠. 기왕이면 시청자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작품을 쓰고 싶었어요. 작가는 타고난 구경꾼이어야 합니다. 이 이생, 저 인생. 남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타인의 삶에 따뜻한 관심을 가져야 좋은 작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죠.”

타인의 삶에 호기심이 많은 작가는 타고난 구경꾼이었다. 작품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 잠입취재는 기본이다. 일시적인 취재가 아닌, 실제 그들의 구성원이 돼 함께 동고동락하기도 했다.

‘서울의 달’ 집필시절 그는 실제 제비족으로 살고 있는 후배의 도움을 받았으며 카바레의 실상을 알기 위해 형사 친구의 조언을 수시로 얻었다. 춤 교습소에 등록해 2주를 다니기도 했다. 이때 “실직 후 할 게 없어 왔다”며 신분을 감추기도 했다. 춤 교습이 끝나면 뒷방에서 구성원들끼리 고스톱을 치곤했다. 고스톱을 하고 돈을 잃자 춤 스승(‘서울의 달’에서 대머리 박 캐릭터)이 따라 나와 잃은 돈의 얼마를 도로 집어주던 기억이 있다. 인간적으로 너무 미안했고 고마웠다. 그것이 소시민의 인정이었다.

이 과정에서 춤꾼들의 명대사인 ‘선수는 운동장을 탓하지 않는다’,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찍고’라는 명대사들이 나 올 수 있었다. 그는 남들과 다른 드라마를 쓰고 싶었다. 사실적인 소시민들의 적나라한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가난한 사람들이 열심히 살며 희망을 잃지 않는 모습이다.

“나만의 드라마를 구축하고 싶었죠. 철저하게 취재하고 검증하는 과정을 거쳐야 마음이 놓였어요. 그만큼 열정이 있었습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본 사람만이 감동을 줄 수 있다는 말처럼, 작가의 폭넓은 인생경험으로 느끼고 공감한 이야기여야 시청자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언젠가 누이가 집 앞 버스정류장에서 내리지 않고 한 정거장 더 가서 내리더라구요. 그 이유를 알게 됐죠. 가난한 동네에서 내리는 게 창피했던 거죠. 그 경험을 서울의 달에서 써먹었어요. 그런 게 공감을 이끌어냈다고 봐요.”

인생에서 불행한 것이 글 쓰는데 도움이 된다는 역설적인 이야기가 결코 역설이 될 수 없는 현실이라는 말이다.

철저한 취재와 경험을 거쳐 탄생한 작품도 작가는 만족하지 못할 때가 많다. 좀 더 완벽을 기하기 위해 작가는 자신을 끊임없이 자학한다. 중국 산수화의 거장 이가염이라는 사람이 남긴 ‘폐화삼천’이라는 말을 늘 곱씹곤 한다. ‘한 장의 그림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3천장의 폐지를 남긴다’는 말이다.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자학하며 고치고 다시 고치는 과정을 거쳐 확신이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폐화삼천’을 실천하기가 쉽지 않다. 그럴 때마다 삶의 현장에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늘 미안하다. 타인의 치열한 삶을 구경하는 것으로 밥을 벌어먹고 산다는 것에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부족한 대본을 배우들이 잘 소화해 표현해 줄 때 고마울 수밖에 없다.

주인공들이 좋은 직업에 잘생기고 예뻐야 한다는 통념을 깨고 싶었다. ‘서울의 달’에서 제비족이 주인공이라고 했을 때 다들 미쳤다고 말했다.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한석규(김홍식 역)와 최민식(박춘섭 역)이 주인공으로 결정돼 드라마가 진행되자 다들 놀랐다. 배우의 역할이 컸다. 오늘날의 ‘한석규와 최민식’이 탄생하게 된 드라마가 됐다.

작품을 집필할 때 결말을 정해놓거나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서울의 달’은 결말을 먼저 결정해놓은 드라마다. 시청률이 40%대로 높아지면서 한석규를 살려달라는 시청자들의 의견이 많았으나 계획대로 한석규를 죽게 했다. 유명한 음악 ‘스와니 강’의 작곡가인 포스터가 뉴욕의 쓰레기통 옆에서 죽은 채 발견돼 응급실에 갔더니 주머니에 단돈 2실링이 들어있다는 신문기사를 보고 영감을 얻어 홍식의 죽음을 비슷하게 설정했다. 

배우를 결정할 때 작가로서 개입하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때로는 배역 설정이 절대적일 때가 있다. ‘파랑새는 있다’는 작품을 쓸 때 캐릭터에 걸 맞는 키 작고 못생긴 남자 주인공을 특별히 주문하기도 했다. PD가 이해를 못했지만 캐릭터를 유지하기 위해 고집과 확신이 필요했다. 배우 얼굴이 아닌 스토리로 승부하겠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밀어부처 관철시켰다. 이후 방송국에서 연장 제안을 할 만큼 드라마가 잘 마무리 됐다.

지난 12일 충북 청주시 김수현드라마아트홀을 찾은 김운경 작가가 본보 김정애 부국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지난 12일 충북 청주시 김수현드라마아트홀을 찾은 김운경 작가가 본보 김정애 부국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그는 특별히 요즘 방송계에서 유행처럼 등장하는 ‘누구누구사단’을 만들지 않는다. 작가로서만 역할을 다하고 싶을 뿐이다. 드라마를 할 때마다 매번 힘들고 종종 슬럼프에 빠지기도 한다. 긴 시간 지구력이 필요한 작업에서 글이 나아가지 않을 때는 무조건 펜을 놓고 집 밖으로 나가 산책을 하거나 산행을 한다. 다시 글이 나아갈 때까지 사색의 시간이 절대적이다. 사색하며 끊임없이 자신에게 “왜?”냐고 묻는다.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드라마, 시청자들에게 따뜻한 공감을 줄 수 있는 드라마를 지향한다. 후배들에게도 그런 드라마라면 얼마든지 좋은 작가가 될 수 있다는 신념을 주고 싶다. 굳이 막장드라마가 아니어도 시청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드라마이기를 바란다.

“인생은 아름답고 살만하다는 따뜻한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드라마는 예술이 아니죠. 삶 자체입니다. 소매치기부터 대학교수까지 남녀노소가 시청하죠. 어떤 장르보다 도덕적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문학작품과 다른 드라마만의 소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술은 부도덕도 용납이 되지만 드라마는 부도덕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드라마가 사회에 끼치는 영향은 예술보다 막강하기 때문입니다.”

그 예로 80년대 일본에서 방영된 ‘바퀴의 한걸음’에 대해 들려줬다. 장애인문제를 다룬 이 작품이 방영된 후 일본사회에 큰 영향을 줘 장애인정책이 개선되는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좋은 드라마의 힘이자 역할이다. 그는 막장드라마는 “불량식품보다 나쁘다”고 경계한다. 좋은 드라마의 역할을 소중하게 여길 때 사회가 선순환 된다고 믿는다.

그가 차기작으로 준비하고 있는 것은 역사드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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