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 한양 뱃길 오백 리를 가다

[충청매일] ④ 한양 뱃길 오백 리를 가다

사선 진수식이 끝난 며칠 후, 최풍원은 배를 타고 한양 나들이를 하기 위해 봉화수를 대동하고 북진여각을 나섰다. 오늘은 처음으로 가흥창의 세곡을 싣고 한양의 용산창을 향해 첫 출항을 하는 날이었다. 이번 최풍원의 한양 뱃길은 앞으로 북진여각의 운영에도 많은 영향을 줄 것이었다. 지난해 북진난장에서 겪었던 대규모 선단을 통한 경강상인들의 새로운 장사 수법을 통해 그들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웬만한 시골 장마당 정도는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가 있다는 것을 최풍원은 통감했다. 물론 그들이 남의 물건을 거저 삼키기 위해 편법을 쓰기는 했지만, 정상적인 거래를 한다 하더라도 언제든지 그들의 뜻대로 상권을 좌지우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북진여각의 상권 유지에 큰 힘이 되어주었던 청풍부사의 권력으로는 무지막지한 뒷배를 가지고 있는 경강상인들을 통제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장사꾼인 경강상인들이 뒷배를 이용해 고을 원을 위협하고 조정할 정도로 세력은 커져 있었다. 이제는 곳간에 물산만 잔뜩 쟁여놓았다고 부자라고 부르던 예전의 세상이 아니었다. 돈만 있다고 돈을 버는 시대가 아니었다. 그렇게 변한 세상의 밑바탕에는 권력이 있었다. 아무리 큰 재산을 쌓아놓고 있어도 권력을 뒷배로 가지고 있지 않으면 그 재물은 어느날 갑자기 아무도 모르게 어디로 사라지는지도 모르게 없어질 수도 있었다. 자기 재산을 지키려면 세도가와 결탁을 해야 했다. 그리고 정말 큰돈을 벌어 거상이 되려면 더 큰 권력과 손을 잡지 않고는 불가능했다.

최풍원과 봉화수가 탄 배가 맨 앞서서 북진나루를 떠나고 그 뒤를 나머지 배들이 줄줄이 따랐다. 강바람이 건듯 불어 황포 쌍돛이 물오른 큰애기 가슴마냥 빵빵하게 부풀었다. 스무 척이나 되는 배들이 일시에 펼친 쌍돛이 파란 강물에 함박꽃처럼 피어올랐다. 하늬바람을 받은 사선들이 물결을 헤치며 미끄러지듯 가흥창을 향해 강 하류로 내려갔다.

“화수야! 이번 길에 한양에 전을 하나 낼까 한다.”

“전을요?”

“세상이 바뀌고 있다.”

최풍원은 북진에서 앉은장사만 해서는 앞으로 닥쳐올 변화를 감당하기 힘들 것이란 위기의식을 느꼈다. 최풍원의 의중은 북진여각에서 걷어 들인 물산들을 경강상인들에게 넘기지 않고 직접 한양으로 싣고 가 팔면 더 많은 이득을 남길 수 있고, 물산을 풀고 난 후 올라가는 길에 한양의 물산들을 싣고 올라가 팔면 일거양득일 것이란 계산이 섰다. 그리고 앞으로 북진여각도 한양으로 상권을 넓혀보고 싶은 야심이 있었다. 그렇게 하려면 한양의 상권을 수시로 살피며 북진과 긴밀하게 연락을 취할 수 있는 발판이 필요했다.

최풍원과 봉화수가 탄 조운선단이 충주목을 지나 목계나루를 휘돌자 가흥창이 보이기 시작했다. 조군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가흥창이 있는 나루가 가까워지자 조군들이 돛줄임줄을 풀어 내리며 배의 속도를 줄였다. 배가 미끄러지듯 나루 안으로 들어갔다. 배가 가흥창에 정박을 하고 닻을 내렸다. 오늘서부터 이틀 정도는 가흥창에서 세곡을 선적해야 했다. 가흥창은 고려 때부터 운영해오던 수참으로 충청좌도 지역의 세곡을 수납 받아 보관하는 창고로 이곳에 보관된 세곡은 남한강 수로를 통해 한양의 용산창으로 운송되었다. 여기서 한양까지의 물길은 이백육십 여리였다. 가흥창이 있는 강변으로는 사방에서 세곡을 싣고 온 조그만 지토선들이 수를 헤아릴 수조차 없을 정도로 빡빡하게 정박해 있었고, 싣고 온 곡물 섬을 배에서 내리느라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장인어른, 선적이 끝난 배부터 먼저 출발을 시키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어차피 사월까지는 가흥과 용산을 계속해서 오르내려야 할테니 굳이 한꺼번에 오르내릴 필요는 없겠지. 일단 다섯 척씩 조를 정해주고 함께 움직이도록 조군들에게 단단히 일러 놓게! 그리고 선적된 곡물섬의 수를 확실하게 파악한 후 관원에게 물목 단자를 인수하고 떠나도록 하게!”

최풍원이 봉화수에게 관원들과 조군들이 야료를 부리지 못하도록 단단히 일렀다.

본래 조운선은 단독으로 운항을 할 수가 없었다. 반드시 네다섯 척씩 한 조를 이뤄 다니도록 수참에서는 규정하고 있었다. 만일 이를 어겼을 때는 세곡을 기일 내에 입고시키지 못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엄중하게 처벌을 받았다. 여기에는 관원들이나 조군들이 서로 짜고 조곡을 횡령할 것에 미리 대비하기 위함과 항해 도중 위험한 일을 당했을 경우 서로를 돕게 하기 위한 이유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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