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그렇게 여름과 가을, 겨울, 해를 넘기며 배무이 작업을 한 끝에 이듬해 초봄이 되자 드디어 북진나루에는 배무이 작업이 끝난 사선 스무 척이 위용을 드러냈다. 지난여름부터 겨우내 살을 에는 듯했던 혹한을 견뎌내며 만들어진 사선들이 동아줄에 묶인 채 진수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최풍원은 그 배들을 바라다보기만 해도 가슴이 벅차올랐다. 북진나루에는 이번에 새로 지어진 배뿐만 아니라 인근에서 모여든 배들까지 어우러져 포구가 비좁을 정도로 빡빡하게 보였다. 나루 바깥쪽으로는 돛이 하나인 야거리와 두 개인 먼쟁이, 거룻배들이 떠 있고 나루 안쪽으로는 새로 지은 사선들이 포구 언덕배기를 향해 새 날개처럼 둥그렇게 감싸며 물위에 떠있었다. 그 앞 모래 언덕 위에는 이번에 지은 사선 중 가장 큰 대선이 정 가운데 앉혀져 있었다. 대선은 군졸을 지휘하는 장군처럼 다른 사선 앞에 당당하게 서있었다. 대선의 이물에서 내려진 굵다란 동아줄은 나루터 앞 느티나무에 단단히 묶여 있었다. 열을 지어 진수식을 기다리는 사선의 위용을 바라보며 배무이꾼들은 지난 모든 고생스러움을 잊을 수 있었다. 구경나온 인근 사람들도 이제나저제나 진수식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선 뱃머리 앞에는 통 크게 차려진 고사상이 푸짐했다. 대선이 묶여져 있는 느티나무 아래는 북진여각의 상전객주들과 임방객주들과 동몽회원들이 최풍원을 호위하듯 둘러서있었다.

“최 행수가 먼저 시작허시지유?”

두 노인이 고사상을 앞에 두고 최풍원에게 초헌을 권했다.

“제일 고생하신 두 어르신께서 먼저 하시지요?”

최풍원이 차대길과 우복술 노인에게 먼저 권했다.

“아닐세! 선주인 최 행수가 먼저 올리는 것이 옳으이!”

“아닙니다. 두 어르신들께서 제일 고생하셨는데 먼저 하시는 게 마땅합니다.”

최풍원이 재차 두 노인에게 초헌 잔을 올릴 것을 권했다.

“아무리 막된 뱃놈들이라 해도 지켜야 할 법도는 차려야하는 법이여! 제사에도 장자가 초헌을 하는 건 당연한 것이여. 배고사에는 배주인이 장자 아니겠는가?”

우복술 노인이 최풍원에게 첫잔을 올리라며 뒤로 한 발 물러섰다. 최풍원이 마지못해 제상 앞으로 나가 절을 올렸다. 그 다음에 두 노인이 나가 뱃머리를 향해 큰절을 했다. 그런 다음 최풍원이 앞장을 서고 두 노인이 그 뒤를 따르며 강물 위에 떠있는 사선을 향해 나아갔다. 세 사람은 스무 척의 배를 일일이 돌며 뱃머리와 돛대, 배꼬리인 고물에다 술을 부으며 정성스럽게 절을 했다. 그리고는 뱃전에서 강물로 음식을 떼어 던지며 고수레를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나루터 언덕에 구경꾼들도 두 손을 모아 연신 허리를 굽혀 절을 했다. 새로 만든 배에 대한 치성이 모두 끝나자 세 사람은 다시 대선의 고사상 앞에 서서 종헌을 하고 소지를 올렸다. 그리고는 대선을 묶어놓은 나루터 앞 느티나무 앞에 섰다. 구경꾼들의 시선이 모두 세 사람에게 모여졌다.

“시작들 하시지요?”

최풍원이 자귀를 두 노인들의 손에 쥐어 주었다.

“같이 하게나!”

 세 사람이 동시에 자귀를 들고 대선이 묶여져 있는 동아줄을 내려쳤다.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동아줄이 끊어지며 동시에 요란한 굉음을 내며 강물을 향해 대선이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대선이 커다란 물보라를 일으키며 연달아 강물 위에 두둥실 떠올랐다. 구경을 하던 사람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두 분 어르신들 정말로 고생 많으셨습니다요. 어르신들이 아니면 이 일을 절대 하지 못했을 겁니다!”

최풍원이 두 노인에게 치사를 했다.

“아무쪼록 무탈한 게 최고일세!”

“번창하시게나!”

두 노인도 최풍원에게 축원을 했다. 최풍원은 이 사선들을 이용해 북진여각의 상권을 한양까지 넓힐 작정이었다. 사선 스무 척이라면 남한강을 오르내리는 경강선단에 견주더라도 결코 처지는 수가 아니었다. 우선 최풍원은 사선을 기반으로 지금까지 경강선에 의존하던 장사에서 독립하여 자급자족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가흥창의 세곡뿐 아니라 남한강 유역에 산재해 있는 한양 부재지주들의 막대한 소작료 운반까지 경강상인들로부터 모조리 빼앗을 요량이었다. 북진여각으로서는 새로운 변화 속에서 살아날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이자 절호의 기회였다. 최풍원은 지금 북진나루에 떠있는 배들을 보며, 저 배들이 자신의 꿈을 이뤄줄 것이라 믿었다. 모든 배들이 돛을 달고 만개한 꽃처럼 북진나루에 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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