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이 사람들아, 조금만 더 서둘러주게! 명년 이월까지는 몽땅 끝내야 삼월부터 세곡을 싣고 운항에 들어갈게 아닌가?”

차대길 노인이 열심히 연장을 놀리고 있는 배무이 인부들의 등 뒤에서 소리를 질렀다.

“그건 사돈네 사정이고 우리는 모르는 일이오!”

자귀질을 하며 창막이를 깎고 있던 부근이가 심통을 부렸다.

“심보를 그렇게 쓰면 안 되는 게여. 사돈 일이고 내 일이고 자꾸 잘돼야 좋지, 다 어려워서 걸금거리는 이웃만 득시글거려봐라 뭘 얻어먹을 게 있겠느냐?”

차대길 노인이 부근이를 나무랐다.

“그건 성님 말이 백번 지당허우. 이놈들아, 사촌 땅 사는 거 배 앓지 말구 생각을 바꿔! 주위에 부자가 있어야 떨어지는 고물이라도 얻어먹을 게 있지, 개뿔도 없는 집구석에 뭐 얻어먹을 게 있겠느냐, 이 말이여! 보태주지 않으면 다행이지.”

우복술 노인이 맞장구를 쳤다.

“노인장들이 뗏장 덮을 때가 되니 부처가 다 됐구먼유!”

부근이가 두 노인의 말을 받아 비아냥거렸다.

“뗏장 덮기 전에 니 놈들한테 기술 전수하고 가려 그런다!”

“뭘 주고가려 그러시우. 거기 가서도 그거 하면 되지.”

“배운 게 그것밖에 없으니, 그렇잖아도 거기 가서도 배나 만들 생각이다!”

“그럼 나도 거기 가서 마차나 만들꺼나?”

세월이 많이 가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이 세상 살아보니 저승보다 나을 것도 없어 그런 것인지 두 노인은 죽는 것도 여사처럼 이야기했다. 하기야 이승이나 저승이나 쥔 것 없기는 매 한가지니 이쪽에 있으나 저쪽에 있으나 아쉬울 것은 없었다.

우복술 노인의 조언을 듣고 충주 관아로 갔던 최풍원이 조군을 데리고 북진으로 왔다.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었지만 민강 목사의 허락이 아니면 불가한 일이었다. 아무리 목사라 하더라도 조군을 함부로 이리저리 움직일 수 없는 일이었다. 나라에서 그 일을 안다면 큰 벌을 받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아무렇지도 않게, 더구나 장사꾼이 하는 사사로운 일에 조군을 보냈다면 군율에 의해 엄히 다스려질 중한 일이었다. 그런데 저리 하는 것을 보면 민강 목사는 대궐에 단단한 줄을 잡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힘이 넘치고 경험까지 있는 조군들이 오자 배무이 작업은 두 노인들의 노련한 기술과 젊은 목수들의 순발력이 합쳐져 순조롭게 진척되어 갔다. 때론 작업장에서 일손이나 목재가 턱없이 달리기도 했지만 최풍원이 관아와 결탁하여 봉산의 나무를 불법으로 베어오기도 하고, 부족한 일손은 조군을 동원하여 메우기도 하며 사선 건조에 박차를 가했다. 갖가지 배에 쓰일 부속품들이 작업장 안에서 마무리되어갈 즈음 북진나루터 모래사장에서는 본격적으로 사선을 조립할 작업대가 줄줄이 열을 지어 늘어서기 시작했다. 그 작업대에서는 배 밑바닥이 만들어지고, 이물과 고물이 만들어지고, 뱃전을 지탱하기 위해 양쪽에 쇠줄을 묶고 막대를 꼽아 돌리는 인부들의 힘찬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왔다. 한 머리에서는 뱃전에 쓰일 널빤지를 구부리느라 장작불을 지펴놓고 물을 뿌려가며 구부리고, 또 한 머리는 이음새에 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기름을 잔뜩 먹인 솜으로 틈새를 틀어막았다. 어느 정도 배 모양이 만들어진 작업대에서는 배를 덮는 덕판이 놓이고 키를 달고 고물대와 이물대를 세워 쌍돛대를 세웠다. 한 장소에서 스무 척의 배가 만들어지는 모습은 일대 장관이었다. 북진나루에는 이 광경을 보기 위해 몰려든 구경꾼들과 배무이 작업을 하는 인부들, 이들에게 물건을 팔기 위해 달려온 장사꾼들이 뒤섞여 또다시 난장이 틀어진 것처럼 연일 북새통을 이루었다.

사람들이 모이면 당연히 필요한 물건들이 있기 마련이었다. 배를 만드는 일꾼들과 구경꾼들, 그리고 장사꾼들이 모여드니 당장 먹는 일도 큰일이었다. 장사꾼들만 해도 배에 들어갈 많은 자재가 필요했다. 목재를 다듬거나 가공하려면 갖가지 연장도 필요했다. 나무껍질을 벗기는 훑이, 규격을 재는 규·구·준, 먹줄을 튕기는 먹통인 승, 나무를 켜는 톱, 면을 매끈하게 다듬는 대패, 나무를 찍어 깎는 까뀌와 자귀, 송곳, 바곳, 도래송곳, 장도리, 줄, 끌 외에도 처음 보는 연장도 숫하게 필요했다. 그런 연장 장사에 사람들이 일하려면 자고 먹는 일까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북진은 때 아닌 장마당이 벌어져 매일처럼 북적거렸다. 자연스럽게 북진에는 날마다 장날처럼 장이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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