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충청매일] 이른 아침 이슬이 넉넉히 내린 밭에 나가 보았다. 무성하게 자라서 싱그러운 작물들이 반겨준다. 밭 한편 어디선가 도란도란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여 다가가 보았다. 연잎을 닮은 토란들이 잎에 구슬 같은 물방울을 올려놓고 살랑거린다. 바람이 흔들면 구슬이 구르다 흘러내린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묘한 감정에 젖어 든다. 물방울의 흔적을 감쪽같이 지워버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시치미를 떼고 있다. 속내를 보이지 않는다.

생강을 닮은 토란은 흙이 낳은 알이라 하여 토란(土卵)이라 부른다고 한다. 감자도 아니요. 고구마도 아닌 것이 맛은 일품이다.

남도지방에서는 토란국을 끓여 먹는데 제사상에도 올린다 한다. 그런데 토란은 독성이 있어 옻이 오른다. 그래서 장갑을 끼고 까야 하는데 살짝 데쳐서 까면 까기가 쉽고 옻오름도 방지한다. 쌀뜨물을 이용하여 국을 끓이면 독성도 중화되고 맛도 좋다고 한다.

비 오는 날이면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우산이 귀했던 시대라 비오는 날 토란잎을 따서 우산대용으로 사용했었다. 빗방울이 괴었다가 또르르 굴러 떨어지면 뭐가 그리 웃기는지 까르르 웃곤 했었다. 떨어지는 물방울을 상대방에 튕기며 장난치며 놀았었다.

토란에 대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옛날엔 사돈이면 어려운 사이였다. 내 자식에게 잘못해 주는 사돈이 왔을 때 토란국을 끓여 주었다고 한다. 토란국은 국물이 부연해서 뜨거운지 적당한 건지 구별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사돈이 국을 한 수저 떠먹으면 국이 뜨거워 입안이 화끈한데 사돈 앞에서 뱉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뜨거운 걸 삼킬 수도 없어 곤혹스럽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며느리나 사위에게 잘 대해 주고 살아야 한다고 전해져 내려왔다.

이처럼 토란은 맛을 주기도 하고, 좋지 않은 성격을 고치는 데도 이용했었다. 맛있는 회초리라 볼 수 있겠다. 장미에 가시가 있듯, 토란엔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옻 성분이 들어있다. 하나가 좋으면 다른 하나는 좋지 않다. 정반대의 성질을 지니고 있어 조심해야 할 대상이다.

가을이 되면 줄기를 잘라 껍질을 벗겨 말려둔다. 줄기로 육개장을 끓여 먹기 때문이다. 추운 겨울 토란 줄기로 따뜻하게 육개장을 끓여 먹으면 속이 후끈 달아오른다. 추위를 날려버리는 화끈한 맛이다. 쪄먹기도 하고 구워도 먹고, 국도 끓여먹는 토란. 칼륨을 함유하고 있어 체내 나트륨을 배출케 하고 섬유질이 풍부하여 변비와 대장암 예방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고 알려져 왔다.

이렇게 맛있는 토란이지만 예쁜 장미에 가시가 있듯 토란에는 가려움증을 유발하는 물질이 들어있다. 그 독성으로 인해 인간에게 유익함을 줄지 모르지만, 맛과 독을 동시에 안겨준다.

토란의 양면성을 인간도 지녔다. 선을 추구하는 인간에게도 가시나 독을 품고 있을지 모른다. 평소 표출하지 않기 때문에 아름다운 면만 보이게 마련이다. 그러다 극에 달했을 때 비로소 숨겨두고 있던 가시가 돋아나고 독을 내뿜을 것이다. 이중성격이다. 내게도 이중성이 내포되어 있으리라 생각된다. 다만 드러내지 않고 감춰두고 있어서 알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너와 나. 우리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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