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꿈세상 정철어학원 대표

[충청매일] 고구마 밭에 손님이 다녀갔다. 발자국이 어지럽다. 여기 저기 배설물도 있고 고구마잎과 고춧잎을 뜯어 먹은 흔적도 있다. 다른 사람들이 벌판에 있는 밭에 말뚝을 박고 줄을 걸어 담장을 만든 이유를 이제야 알았다.

적당했다. 농사를 망칠 정도로 헤집어 놓지 않고 봐 줄 만큼만 먹고 갔다. 내가 밭에 들인 정성을 알아서인지, 더 많은 욕심을 내면 주인이 담장을 막아 자기 먹이 터를 잃게 될 것을 아는 지혜가 있어서인지 고라니는 적당히 헤집어 놓았다. 어쩌면 더불어 살자는 배려일 수도 있다.

나는 그 녀석의 배려 있는 마음이 기특해서 담장을 치지 않을 생각이다. 아마 그 녀석도 꽤 괜찮은 나날이라고 여겨질 듯싶다. 나도 기분이 좋다. 내가 주인인 양 베푸는 듯하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흙이 품어 베풀어 키워주는 덕을 나도 보고 있다. 그 덕을 조금 나누는 것일 뿐이다. 나누고 보니 행복하다. 행복이 배가 되었다. 나도 고라니도 행복하다.

삶은 비정하기도 하고 각박하기도 하다. 야생 동물들의 삶은 생존이 걸린 절실한 몸부림이다. 사람도 그런 본능이 잠재되어 쟁취에 치열한가 보다.

평소에 친하게 지내는 모 원장이 삶에 의욕을 잃어 실의에 빠졌다. 사는 재미가 없다고 한다. 그 학원 학생들이 우수수 학원을 그만 두어 술렁이었다. 알아본 즉 무척 적극적으로 일을 하며 어머니들과 소통 잘 했던 선생님이 가정사를 이유로 퇴직하더니 바로 그 학원 인근에 다른 학원을 차렸다. 그리고 학부모에게 일일이 전화하며 옮길 것을 종용했다. 그 원장은 경업 피지 의무 위반으로 법적 조치를 하자는 직원들을 만류하며 더 열심히 하면 된다고 독려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열심히’ 보다 친하게 소통하던 선생님의 잦은 전화가 더 어머님 마음을 흔들었다. 어느덧 많은 학생들이 옮겨가 학원 운영에 치명적 상처를 줬다. 그 원장님 삶의 가치관도 꺾어 놓았다. 그 원장님과 무척 친했던 선생님이기 때문에 더 그랬다.

몇 십년 깊은 정을 쌓아 오며 의형제다 양자다 하며 친하던 사람들이 타산 앞에선 멱살을 잡고 악다구니를 쓰는 아픈 모습도 본다. 아니 친형제 친부모 자식 간에도 조금 더 갖겠다고 아비규환일 때도 있다.

갖게 된 사람도 못 갖게 된 사람도 행복하지 않다. 아프다. 슬프다. 어둡기만 하다. 행복은 꽁꽁 얼어 따듯한 파장을 멈추었다. 

“누가 길을 이렇게 막아 놓은 겨!!!”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상점 앞에 차를 잠깐 세웠는데 자전거가 지나가며 불편하다고 난리이다. ‘왜 소리를 지르냐?’고 하며 기 싸움을 할 판이다. 내가 웃으며 다가가서 속삭였다.

“어르신! 짧은 인생 웃어도 아까운 시간에 왜 화를 내세요. 에이 웃으세요.”

우린 결국 웃으며 헤어졌다. 우리는 하마터면 치미는 화에게 웃음도 행복도 빼앗길 뻔했다.

이기는 것은 무엇이고 지는 것은 무엇인가. 갖는다는 것은 무엇이고 잃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혹시 그런 것들에게 더 가치 있는 우리들의 행복, 미소, 위안, 온정, 사는 의미…를 빼앗기는 것은 아닐까?

밭둑에 앉아 고라니의 배려를 바라보며 오랜 사색에 잠긴다. 해는 뉘엿뉘엿 설핏하게 저물고 어느덧 나는 불그레한 저녁노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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