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배무이는 언제부터 하는가?”

그렇게 퉁퉁거리면서도 우복술 노인 말투 속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 배 짓는 일도 이미 오래 전 손을 놓았고, 이제는 나이도 상늙은이 축에 속하니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 힘 빠지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었지만, 나이 먹었다고 아예 눈길도 주지 않고 없는 사람 취급하는 것이 더 사람을 죽이는 일이었다. 그럴 때마다 앞산이 한층 더 가깝게만 느껴지고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자기를 잊지 않고 이렇게 불러주니 갑자기 힘이 불끈불끈 솟는 기분이었다. 그것은 우 노인보다 한참이나 연배인 호호 늙은이 차대길도 마찬가지였다.

“용진서 떼가 내려와야 하는데 워낙에 가물어 놔서…….”

최풍원이 우복술 노인의 물음에 모래톱이 드러난 북진나루 앞 큰강을 보며 말했다.

“이렇게 가물다 쏟아지면 필시 홍수 나지!”

“가물어도 문제지만 홍수가 져도 문제지요.”

차대길 노인의 말을 받아 우복술 노인이 혼잣소리를 했다.

“그러게 말일세. 농사고 물일이고 하늘이 도와줘야 탈이 없는 법인데…….”

뭐든지 마치 맞아야 탈이 없는 법이었다. 만약 비가 너무 내려 폭우라도 쏟아지면 아무리 경험 많고 날랜 뗏꾼이라 해도 그런 물에서는 뗏목을 탈 수 없었다. 두 노인은 그것을 염려하고 있었다.

그러고도 달포가 넘도록 비는 내리지 않았다. 북진여각의 일부 사람들 사이에서는 목도를 해서라도 옮기자는 축도 있었지만, 가까운 거리도 아니고 워낙에 많은 양이라 일일이 사람의 어깨로 나른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동안 우복술, 차대길 두 노인은 배를 건조할 작업장부터 차근차근 준비를 했다. 역시 노인들은 꼼꼼했다. 뗏목이 내려오기 전까지는 그다지 할 일이 없음에도 나루터에 지어진 작업장을 매일같이 돌며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목재만 내려오면 언제든 작업을 시작할 수 있는 배무이 작업장이 완벽하게 차려졌다. 그렇게 한여름이 분주하게 지나갔다. 최풍원은 배무이 기술자들과 잡역을 할 일꾼들을 구하기 위해 충주와 청풍관아를 수시로 드나들었다.

하늘 구멍이 막히기라도 했는지 좀처럼 비 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비는 한여름이 다 끝나가던 끝자락에서야 내리기 시작했다. 낱알들이 속을 채우며 고개를 숙이고 이파리가 노릇하게 기미를 보이기 시작하던 그 때였다. 비는 다소곳하게 내렸다. 차대길 노인의 말처럼 늦장마로 비가 연일 계속되자 드러났던 모래톱도 순식간에 사라지고 불어난 강물을 따라 영춘으로부터 뗏목이 무수하게 떠내려 왔다.

북진나루에는 어지럽게 엉켜있는 뗏목들을 정리하는 철떡꾼들의 고함소리와 통나무를 뭍으로 끌어올려 작업장으로 옮기는 목도꾼들의 발맞추는 소리가 뒤엉켜 연일 혼란스러웠다. 제재소에서는 수십 명의 배무이 목수들이 배에 쓰일 나무들을 켜고 다듬고, 다듬어진 목재들은 나무못을 만드느라 구멍을 파는 연장소리로 가득했다. 스무 척이나 되는 사선을 한꺼번에 만드는 북진나루 배무이 작업장은 경강선을 만드는 한양의 뚝섬 조선소에 옮겨다 놓아도 규모면에서 조금의 손색이 없었다.

북진여각에서 지금 하고 있는 배 건조 작업은 한양의 거상이라고 해도 힘겹고 무리한 일이었다. 세곡을 실어 나르기 위해 사선 스무 척을 한꺼번에 건조한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할 결단이었다. 남한강 최대이자 유일한 수참인 가흥창 조차 열다섯 척의 관선을 보유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 터에 개인이 그것도 일개 작은 고을의 여각에서 사선 스무 척을 짓는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어쩌면 북진여각의 존폐가 걸린 일대의 거사였다. 하지만 새로운 시대 흐름을 놓치면 그것은 곧 자멸하는 길이었다. 기회는 올 때 잡아야 했다. 가흥창의 세곡을 경창으로 옮기고 한양의 새로운 물산들을 발 빠르게 받아들이려면 무엇보다도 시급한 것이 운반능력이었다. 이제껏 경강상인들의 배에만 의존해 왔던 북진여각의 경우 만약에 그들이 파투라도 놓는 날이면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젠 북진여각의 규모도 커졌고 그 규모에 맞춰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믿을 것은 스스로의 힘뿐이었다. 그래서 무리하다고 다들 만류하던 사선 건조를 결심한 것이었다. 최풍원이 그리 결심을 한 이면에는 충주목사 민강의 밀약이 있었다. 충주에는 충주목사 관할의 가흥창이 있었다. 최풍원은 사선 건조가 끝나면 이제껏 경강상인들이 주도해 오던 세곡 운반권도 모조리 빼앗을 작정이었다. 그리고 한양에서 올라오던 경강선 물산들도 직접 배를 끌고 내려가 사들여 직접 판매할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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