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기원전 202년, 유방이 진(秦)나라를 멸망시키고 한(漢)나라를 건국했다. 이때 신하 심이기는 개국공신으로 인정받아 제후의 서열인 벽양후에 봉해졌다. 유방이 인정한 심이기의 공로는 두 가지였다. 첫째는 이전에 유방이 패현을 장악하고 우두머리가 됐을 때 심이기가 유방의 부친을 정성을 다해 보좌했다. 둘째는 유방이 항우와 싸워 패하고 달아나자 유방의 부친과 아내는 항우의 포로로 잡혔다. 그때 심이기가 달아나지 않고 포로로 남아 이들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폈다. 이런 계기로 이후 심이기는 유방의 아내 여후의 총애를 받아 승승장구했다.

개국 8년 무렵 조나라 신하들이 유방을 암살하려다 실패했다. 한나라 감찰반이 조나라 왕 장오와 신하들을 모두 체포해 옥에 가뒀다. 이때 장오의 측실이었다가 이전에 유방이 조나라 방문 때 총애를 받아 임신한 여인 조씨가 연좌돼 잡혀왔다. 조씨의 남동생 조겸이 심이기를 찾아가 누나를 살려줄 것을 간청했다. 하지만 심이기는 유방의 아내 여후가 유방과 관계를 맺은 여자들을 크게 질투하고 있어 이 부탁을 외면했다. 결국 조씨 여인은 감옥에서 아들을 낳고 한에 맺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나중에 그 아들은 유방에게 넘겨져 이후 회남왕에 올랐다.

얼마 후 유방이 죽고 그 아내 여후가 집권했다. 이때 심이기는 신하의 최고 자리인 승상에 올랐다. 여후가 죽고 유방의 아들 중 연장자인 문제가 황제에 올랐다. 이때 심이기는 나이가 많아 벼슬을 내려놓고 고향에 내려가 있었다. 이무렵 문제는 자신의 막내 동생인 회남왕을 유달리 총애했다. 그로 인해 회남왕은 자주 황제를 알현할 수 있었다. 회남왕이 성인이 돼 황궁 출입을 하던 중에 자신의 어머니 조씨가 억울하게 옥에서 돌아가셨다는 비사를 듣게 됐다. 그리고 심이기가 자신의 어머니를 충분히 살릴 수 있었는데 묵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30년 전의 숨겨진 일이 드러난 것이었다. 그날부터 회남왕은 심이기를 철천지원수로 여겼다.

“내 이놈을 가만두지 않을 터이다!”

문제 3년 드디어 회남왕이 결심을 하고 심이기를 찾아갔다. 당시 법률에는 아무리 왕이라도 황제의 허락 없이는 함부로 개국공신을 벌할 수 없었다. 그럴 경우 황제의 신하들이 상소하면 왕은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하지만 회남왕은 황제의 총애를 믿고 자신의 원수를 갚기로 했다. 회남왕이 대문 앞에서 심이기를 불렀다. 심이기가 대문을 열고 나오자 회남왕이 그 얼굴을 향해 철퇴를 휘둘렀다. 심이기는 일격에 쓰러졌고 이어 회남왕의 무사들이 달려들어 심이기의 목을 베었다. 심이기는 자신은 평생도록 남에게 악한 일을 한 적이 없다고 여겼고 벼슬에서 물러난 후에는 누구보다 평온한 삶을 살았다. 하지만 이전에 조씨 여인의 일이 자신을 황천으로 끌고 갈 줄은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이는 사마천의 ‘사기세가(史記世家)’에 있는 이야기이다.

복과화생(福過禍生)이란 복이 지나치면 도리어 재앙의 원인이 된다는 뜻이다. 부유하고 높은 지위를 얻을수록 시기와 질투를 많이 받는다. 하찮은 일 하나가 평생의 업적을 개똥으로 만들 수도 있다. 그러니 남의 사정을 들어줄 수 있는 자리에 있다면 작은 일이라도 정성을 다해야 복이 오래 머무는 법이다. aione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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