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충청매일]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가을걷이도 이제 거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듯하다. 얼마 전 아들이 일군 작은 농토에 손주들이 몰려간 적이 있다. 밭에서 고구마, 고추 등 늦게나마 추수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남은 작물을 마저 거둬들일 겸 어린 조카들에게 농촌현장을 체험시키기 위해서였다고 아들은 말한다. 사실 요즘 도심에서 사는 아이들은 쌀이 밭에서 나는지 산에서 나는지도 모를 정도로 농사에 대하여 통 관심이 없는 경우도 꽤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까웠는데, 마침 이런 기회에 어린 손주들이 밭에서 난 작물들을 매만지며 자연과 어울리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일종의 농촌 삶의 체험이라고 해야 할까?

이제 불과 세 살도 안 된 어린 손주들이 고추밭을 기웃거리며 고추를 매만지다가 그 작은 손에 고추를 따면서 즐거워 하는 모습이 정말 귀여웠다. 두 살 위인 다섯 살 난 손녀는 제 얼굴보다 훨씬 큰 고구마를 모종삽으로 어찌어찌 캐어 올리고는 행복해하는 표정이 무척이나 예뻐 보였다. 동생들이 다칠세라 걱정스런 얼굴로 쳐다보고 있는 이제 여덟 살 난 큰 손녀의 모습도 대견스러웠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 역시 흐뭇했다.

가을은 들에서만 익어가는 게 아니라 산에서도 영글어갔다. 얼마 전에 손주들은 밤나무 숲에서 밤알을 주웠다. 그때 즐거워하던 모습이 필자로 하여금 한 편의 시를 남기게도 하였다.

하영이가 / 제 콧잔등보다 커다란 알밤을 들고 / 알밤 꼬리처럼 가는 눈으로 웃고 있어요 //밤알 구르는 소리 꺄르륵 // 하영이를 기다리느라 / 봄부터 밤송이를 보살핀 햇살이 / 밤숲 이슬 위에 퍼지고 // 생애 첫수확 / 다섯 살이 들어올린 / 가을 하나가 / 손바닥 위에서 /동글동글 반짝반짝 /웃고 있어요 // 나의 우주를 환하게 물들이고 있어요 //

- 이종대, 『밤알 하나』 전문

가을은 이렇게 우리 곁에서 결실의 달콤함을 맛보게 했다. 필자는 이처럼 일상에서 만나는 작은 행복이 무척 소중했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온 세상이 어둡기만 했던 올해는 더욱 그랬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인류의 대재앙이 닥쳐와 평범했던 우리의 일상을 위협하면서 어른들은 물론이고 아이들도 밖으로 나가 마음껏 뛰어놀지 못하게 되었다. 그런 아이들을 바라보며 답답해했던 것은 필자 가족만의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런 재난 상황으로 인해 오히려 가족끼리는 더 가깝게 지내는 계기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필자 가족도 되도록 사람들의 왕래가 적은 곳을 택해 자연을 즐기기로 했던 것 같다.

코로나19는 아직도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예언하고 있는 대로 우리는 과거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을 지도 모른다. 같이 모여서 노래 부르고, 즐겁게 춤추던 평범하지만 정겨웠던 일상은 이제는 지나간 먼 추억이 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1년 가까이 계속되었고 앞으로도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하기 힘든 이 상황에서 우리는 마냥 피해 가기만 할 수도 없지 않을까? 그동안 사느냐고 소홀히 했을 수도 있는 소중한 가족을 더욱 가까이 하면서 그 안에서 행복을 찾는 기회를 만들어 나가도록 더욱 노력하면 어떨까? 많은 것이 달라지고 있지만 그래도 최후로 믿을 수 있는 것은 가족이지 않을까? 생각도 깊어지고 평범한 일상이 더욱 소중해지는 코로나19의 해도 단풍이 짙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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