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테라피 강사

[충청매일] 온 여름을 장마와 함께해야 했던 지난 여름이 무색하게 가을 가뭄이 심해 걱정하던 차에 가을비답지 않은, 마치 봄비 같은 가을비가 포근한 듯 조용히 내린다.

김재홍 작가는 ‘영이의 비닐 우산’으로 인간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시에 그림을 더하니 경쾌하다. 80년대 윤동재 시인의 시 속의 비닐우산을 작가는 자기 식으로 이야기한다. 표지를 펼치면 바로 초라한 비닐우산 하나가 벽에 기대어 있다.

주룩주룩 비가 내리는 월요일 아침 영이는 비닐우산을 쓰고 학교에 간다. 도중에 그 비를 다 맞으며 담벼락에 기대어 잠들어 있는 거지 할아버지를 보게 된다. 그 옆엔 찌그러진 깡통에  비가 떨어져 철철 넘치고 있다. 헝겊 우산을 쓴 아이들 무리가 할아버지를 툭 건드리고 간다. 문구점 아주머니는 연신 물건을 팔면서도 할아버지가 죽지도 않는다며 구박한다. 아침 자습을 마친 영이는 교문 밖으로 나가 할아버지를 보니 여전히 비를 맞으며 잠들어 있다. 누가 볼세라 두리번거리던 영이는 할아버지 위에 비닐우산을 펴서 씌워주고 교실로 달려간다. 오후에 비가 그치고 하굣길에 영이는 담벼락을 살핀다. 그런데 그곳에 할아버지와 깡통은 보이지 않고 아침에 영이가 씌워주었던 구멍 난 비닐우산만 꼿꼿하게 세워져 있다. 영이는 말갛게 갠 하늘을 보며 중얼거린다. “할아버지가 가져가셔도 괜찮은 건데......”라고.

보잘것 없고 작은 영이의 초록색 비닐우산을 따라 펼쳐지는 한편의 서정시이자 서사시다. 절제된 색감이지만 사실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그림. 우울한 현실은 회색으로, 베품의 희망은 초록으로 나타내 절제된 색감이 주는 생동감은 영이를 따라가게 만든다.

책을 펼치면 초록색 비닐우산이 앞뒤 표지에 꽉 차게 그려져 있다. 할아버지를 놀리는 아이들의 우산은 어둡다. 할아버지를 저주하는 글은 회색빛으로 쏟아지는 빗줄기 위에 쓰여 있다. 베풀지 못하는 이들은 회색으로, 베풀 줄 아는 영이는 노랑 옷과 초록 우산으로 그렸다. 

비가 안 오지만 초록색 비닐우산을 펼쳐 쓰고 집으로 향하는 영이는 한껏 성장하고 무언가 모를 위로를 받은 듯하다. 수줍게 할아버지를 도우려는 영이의 용기에 어른들은 박수를 쳐주면 좋겠다. 누림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는 것이다. 넉넉해서 베푸는 것이 아니라 부족하지만 쪼개어 나누는 기쁨을 이야기하며 아이들 성장을 돕는 것이 어른들의 일일 것이다. 비닐우산은 대나무 살에 얇은 비닐을 붙여 만든 아주 약하고 볼품없는 우산이었고 그것조차 흔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해 주고, 좀 더 넉넉해지면 나누리라는 생각이 행복을 나눌 기회도 날려버린다고. 어떤 방법으로든 베품의 대열에 망설임 없이 바로 다가서자고.

어른이 되면 좋지 않은 것이어서 나누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약간 여유가 있어도 받는 이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서 그냥 폐기하는 경우도 있다. 도움이 정말 필요한 데를 찾고, 현명하고 지혜롭게 나누고 공존하는 일을 모색하면 좋겠다. 망설임 없이 우산 한쪽을 내어줄 수 있는 마음, 내어주는 실천으로 날씨는 쌀쌀해져도 가슴에는 훈풍으로 가득 채우게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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