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권력이라는 것은 참으로 요상했다. 청풍에서는 가장 어른이고 어떤 좌석에서도 거드름을 피우며 당당하던 부사가 목사 앞에서는 그저 꼬리치는 강아지 모양새였다.

“자, 두 분 영감님들 부실하지만 이것들 좀 드시며 담소를 나누시지요?”

최풍원이 상다리가 주저앉을 정도로 차려진 상 위를 가리키며 음식을 권했다.

“너희들은 뭘 하는 게냐? 오늘 밤 영감님들을 흡족하게 모시지 못하면 너희들은 살아도 죽은 목숨이니라.”

그제야 해어화들이 주병을 들고 술을 권한다 안주를 입에 넣는다 하며 갖은 아양을 떨기 시작했다.

달은 높이 떠올라 초당 앞 연못에 빠지고 멀리 언덕 아래로 펼쳐진 호수처럼 널따란 북진나루의 물결이 유리알처럼 빛났다. 민강 목사는 무릉도원이 저 멀리 심산유곡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 최풍원의 별당이 그곳이라고 생각했다.

“참으로 좋은 밤이오!”

민강 목사의 목소리에서 그윽함이 켜켜이 묻어 나왔다.

“목사 영감님, 달빛에 취하시지 말고 약주에 취해 보시지요? 또 저 꽃들의 향은 어떠신지요?”

술이 몇 순배 돌자 최풍원이 넌지시 농을 던졌다.

“이런 밤이라면 시든 호박도 양귀비처럼 보이겠네.”

이현로도 술기운이 퍼지는지 최풍원의 농말을 받았다.

“최 행수, 군선 건조 문제도 그렇고 전번 받은 것도 있으니 사람이 은혜를 모르면 금수나 다름없니 않겠는가? 내가 뭘 도와주면 좋겠는가. 있으면 말해보게!”

민강 목사가 최풍원에게 먼저 물어왔다.

“목사 영감, 오늘은 저희 집에 오셨으니 그저 약주나 드시다 가시지요.”

오히려 최풍원이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아닐세. 말이 나온 김에 얘기를 해보게!”

최풍원보다도 민강 목사가 더 적극적으로 달려들었다.

“그렇다면 영감, 저희에게 한양의 용산창까지 세곡 운반권을 맡겨주시면 어떠하실는지요?”

“좋소! 그렇잖아도 내가 호방과 상의한 부분이 있소. 어차피 올 조운은 마무리 되었으니 명년 조운권을 알아봄세!"

민강 목사가 저 정도로 적극적으로 밀어준다면 일은 이미 성사된 것이나 진배없었다.

만약 최풍원에게 가흥창의 세곡 운송권이 떨어진다면 북진여각으로서는 천리마에 날개를 다는 격이었다. 현재 충주목 가흥창에 소속된 수참선은 열다섯 척이었다. 수참선에는 척마다 사공 한 명에 조군 세 명이 배속되어 있었다. 수참선이 조운선을 도와 세곡을 운송하기도 했지만 본래 수참선은 조운선의 수난을 막기 위해 앞장서 물길을 인도하는 작은 배였다. 그러니 가흥창에 있는 수참선만으로는 정해진 날짜에 한양의 용산창까지 운송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충주목에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경강상인들이 보유하고 있는 경강선을 이용하고 있었다. 최풍원이 눈독을 들인 것은 가흥창의 막대한 물량이었다. 물론 청풍관아 관할의 세곡은 청풍부사의 비호 아래 북진여각에서 맡고 있었지만 충주의 가흥창 물량에 비하면 젖비린내 나는 일이었다. 당장 가흥창의 운반권을 수주 받는다고 해도 현재 북진여각의 능력으로는 세곡을 한양까지 옮기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새로 배를 건조해야했다. 하지만 배가 단시간 내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 다음에 생각할 문제였다. 우선은 충주목사가 권한을 쥐고 있는 가흥창 세곡의 운반권을 수주 받는 것이 급선무였다. 지금 북진여각의 시급한 문제를 타결하기 위해서는 안전하면서도 확실한 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재원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가흥창 세곡 운반권만 따낸다면 거기에서 생겨나는 운반비만 해도 막대한 돈이었다. 지금까지 북진여각의 객주들과 보부상들이 발품을 팔아 벌어들이는 돈은 세곡을 운반해 주고 나라로부터 받는 돈에 비하면 푼돈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막대한 재원을 이용하면 북진여각의 상권은 한양까지 넓힐 수 있으며, 한양까지 상권이 넓어진다는 것은 곧 조선 팔도로 북진여각의 상권이 확대된다는 이야기였다. 그렇게 되면 북진여각은 남한강 상류의 작은 고을 여각이 아니라 팔도에 이름을 날리는 여각이 될 것이며, 최풍원은 조선에서 내로라하는 거상이 될 절호의 기회를 잡는 것이었다. 최풍원이 충주목사 민강을 북진여각으로 불러들여 향응을 벌이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목사 영감께서 돌봐주신다면 저야 뭘 더 바라겠습니까요.”

“내가 내려가는 길로 살펴보고 기별을 할 테니 최 행수는 좋은 꿈이나 꾸고 있으시오!”

민강 목사가 약속을 했다.

“목사 영감! 이 은혜 백골난망이옵니다!”

최풍원이 또다시 납작 엎드렸다.

그렇게 북진여각 별채 초막에서는 술자리가 무르익어가고 밤은 점점 깊어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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