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북진여각에서 사선 스무 척을 건조하다

[충청매일] ③ 북진여각에서 사선 스무 척을 건조하다

이튿날 충주목사 민강과 수행원들이 군선을 타고 북진나루를 떠나자 최풍원은 곧바로 영춘객주 심봉수와 봉화수를 불렀다.

“여보게 심 객주! 사선 스무 척을 건조해야겠네.”

“스무 척이나?”

심봉수가 기암을 했다.

“스무 척이면 언뜻 따져도 이만 냥이 넘는 거금인데 그걸 어떻게 마련하시려구요?”

봉화수 또한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실은 지난 밤 충주목사가 가흥창의 세곡 운반권을 주기로 언약하고 갔다네.”

“아무리 그래도 사선이 스무 척이면 그만한 목재를 구하는 것도 만만찮을 텐데…….”

“그러니까 자네가 날 좀 도와달라는 얘길세.”

“내가 뭘 어떻게?”

“자네가 영춘 태화산 벌목장으로 올라가 김광출에게 부탁해 좋은 소나무 재목을 따로 골라놓게! 그리고 한양으로 올라가는 뗏목에 절대 섞이지 않게 자네가 감독을 좀 해주게!”

“장인어른, 그러시지 말구 우선은 경강선들을 이용하면 어떨까요?”

봉화수는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는 배 건조를 미루고 우선 경강상인들의 배를 빌려 세곡을 운반하자는 것이었다.

“그건 안 되네!”

최풍원이 단호하게 봉화수의 말을 잘랐다.

그것은 최풍원의 판단이 옳았다.

경강상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지금까지 자신들이 도맡아 하고 있던 세곡 운반권을 남에게 빼앗기고 그 밑에서 품팔이를 하는 꼴이었다. 그것은 내 땅을 빼앗기고 그 땅을 소작 부치는 것과 같은 일이니 그 속이 좋을 리 없을 것은 삼척동자도 알 일이었다. 만약 그들이 운반 도중 태업을 해서 기일을 놓치거나 아니면 장난질을 쳐서 세곡을 횡령한다면 최풍원이 그에 따른 배상을 하거나 책임을 져야 할 일이었다. 외줄 타듯 그렇게 아슬아슬한 일을 겪으며 불안하게 하루하루를 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남의 힘을 빌리더라도 내가 힘을 가지고 주도적으로 일을 추진한 후, 모자라는 부분을 남에게 도움 받아야 당당하게 처신할 수 있는 법이었다.

“화수야, 너는 심 객주와 함께 올라가 나무를 관리하거라!”

최풍원은 심봉수와 봉화수를 영춘의 용진나루로 올려 보냈다. 선박 건조에 쓰일 목재를 선별하고 감독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영춘 용진나루는 영월 동강과 주천 서강에서 내려오는 골안 뗏목이 모이는 합류장이었다. 용진나루에서는 영춘 일대 뿐만 아니라 강원도 태백산의 깊은 산중에서 베어진 아름드리 적송들이 좁고 급한 물살을 타고 내려와 다시 매어지는 곳이었다. 강원도에서 내려오는 골안 뗏목은 좁은 협곡의 빠른 물살을 타고 내려와야 했기에 아주 작게 매어졌다. 그것들이 영춘 용진나루에서 다시 묶여지는 이유는 영춘부터는 강폭이 넓어져서 한꺼번에 많은 양의 목재를 운송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용진나루에는 언제나 목재가 산더미를 이루고 있었다. 용진나루는 통발들이 한양으로 올라가기 위해 다시 큰 뗏목으로 묶여지는 집하장 역할을 했다.

뗏목은 나무의 굵기나 길이의 정도에 따라 궁궐떼·부동떼·가재목떼로 나뉘며 이보다 더 작은 나무로는 화목떼와 서까래가 있었다. 부동떼의 경우 제일 앞쪽에 띄우는 떼를 ‘앞동가리’라고 불렀는데 너비는 서른 자나 되었고 보통 서른 개가 넘는 통나무로 엮어졌다. 이를 한 동가리라 했다. 여기에 네 개의 동가리를 더 이어 붙여서 ‘한바닥’을 만들었다. 뗏목은 언제나 이렇게 닷 동가리를 한바닥으로 엮었다. 그런데 두 번째 동가리부터 끝동가리까지는 엮는 나무 그루 수를 두세 개씩 줄여나가 뒤로 갈수록 좁아지는 데 한바닥은 보통 일백오십 그루에서 이백여 그루로 엮어졌다. 그리고 두세 명의 떼매기꾼이 한바닥을 엮는 데는 이틀이나 사흘이 걸렸다. 그리고 두 동가리에서 닷 동가리까지는 단단하게 묶지만 맨 앞동가리만은 사공의 ‘그레’질에 따라 좌우로 움직일 수 있도록 동가리 사이를 떼어서 연결했다. 이렇게 묶여진 뗏목은 보통 앞뒤 사공 둘이서 몰았다.

계절은 여름으로 다가가고 있었지만 첩첩산중 깊은 골에서 흘러내리는 강물은 뼈마디가 에이는 듯 차가웠다. 뗏목은 물 속에서 하는 작업이라 떼매기꾼·동발꾼·목도꾼들은 하루 종일 몸이 마를 새가 없었다. 목도꾼들이야 그런대로 온몸을 적시지 않고 물과 뭍을 오갔지만 떼매기꾼이나 동발꾼들은 물 속에 들어가 뗏목을 엮느라 목만 물 밖으로 내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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