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그렇게 말씀을 해주시니 소인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요.”

최풍원이 더욱 몸을 낮췄다.

“오티 물을 맞은 때문인지 정말 십년은 더 젊어진 것 같소이다. 지금 당장 이 길로 나서 충주관아까지 걸어간다 해도 문제없을 듯하오. 정말 거뜬하오!”

민강 목사가 태사혜를 신은 발을 가뿐가뿐 들며 말했다.

“오티 물을 맞으셨으니, 이제 두어 해는 잔병 없이 무탈하실 것이옵니다요.”

“내가 이제껏 수령으로 팔도 곳곳을 다녀봤지만 굴에서 나오는 물을 맞아본 것은 처음이라네. 참으로 신기하였다네.”

민강 목사는 아직도 오티의 물 맞은 일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모양이었다.

“내년에도 꼭 다시 모시겠나이다. 오늘은 이만 여각으로 오르시지요.”

최풍원이 앞장서서 목사 일행을 여각으로 안내했다. 일행들이 북진여각으로 들어서자 모든 가솔들이 바깥마당으로 나와 목사를 맞이했다. 최풍원이 가솔들의 인사를 받으며 마당을 가로질러 별채 일각대문을 통해 목사를 사랑방으로 모셨다.

“여기 잠시 유하고 계시면 채비가 끝나는 대로 뫼시러 오겠습니다요.”

말을 마친 최풍원이가 사랑방을 나갔다.

민강 목사가 보료 위의 안석에 앉아 한 쪽 팔꿈치를 장침에 기대고 앉아 찬찬하게 방안을 살폈다. 장사치 방답지 않게 사랑 살림살이가 정갈하게 치장되어 있었다. 쌍을 이룬 문갑 위에는 각종 붓을 걸어놓은 필가와 연륜이 켜켜이 묵은 매화 분재가 단아한 자태를 풍기며 낮은 받침대 위에 놓여 있고, 벽의 구석을 장식하고 있는 사방탁자에는 매화병 도자기와 서책들, 다기가 방의 품격을 더해주었다. 연상 위에는 문방사우와 연적, 서진, 먹이 튀는 것을 막기 위한 연병이 벼루 앞에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다. 그리고 객이 들면 마주앉아 담소를 나누며 피울 담뱃대와 담배합이 재떨이 같은 끽연구류가 앉은뱅이 귀책상 앞으로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양 옆의 벽에는 고비와 액자, 족자, 주련이 치자물을 들인 천장 굽도리 밑으로 걸렸다. 어느 사대부의 방 못지않게 최풍원의 사랑방은 탐나게 꾸며져 있었다. 목사는 최풍원의 사랑방을 살피며 그를 쉬이 대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동쪽으로 난 월창을 젖히자 별채에 꾸며진 정원이 한눈에 펼쳐지고 손을 내밀면 닿을 듯 커다란 보름달이 금수산 머리 위로 불쑥 솟아오르고 있었다. 아무리 청풍명월 풍광이 뛰어나다해도 지금 여기만은 못할 성 싶었다.

“목사 영감, 밖으로 납시지요!”

민강 목사가 한창 달빛 풍경에 취해 있을 때 밖에서 최풍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민강 목사가 만살창으로 된 사랑 여닫이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별채의 정원에는 화톳불이 조용하게 타고 있었다. 최풍원이 민강 목사를 안내하며 별채 앞마당에 있는 연못가 초당으로 갔다. 거기에는 산해진미를 풍성하게 차린 주안상을 사이에 두고 청풍부사 이현로가 수발을 들 해어화들과 함께 목사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같은 미천한 것이 두 영감님 같은 귀한 분들을 뫼시게 되어 더할 수 없는 광영의 날이옵니다요. 오늘 밤은 잠시 나랏일이랑 모두 내려놓으시고 맘껏 즐기시기를 바라옵니다.”

최풍원이 민강 목사와 이현로 부사를 번갈아 살피며 말했다.

“이 부사도 여기가 처음인가?”

민강 목사가 이현로에게 물었다.

“그렇습니다. 목사 영감 덕분에 제가 호사를 합니다.”

이현로가 아부를 했다.

“최 행수, 참으로 훌륭한 집이요!”

민강 목사가 이현로의 알랑거리는 소리를 귓등으로 흘리며 최풍원에게 말했다.

“누추한 곳을 그리 말씀해주시니 송구할 뿐입니다요.”

“군선 작업은 어찌 되어가고 있는가?”

“내일 아침 북진나루에서 사열을 하시고 조군들과 함께 그 배로 충주까지 가셔도 무방할 듯 하여이다.”

“그럼 다 되었단 말인가?”

민강 목사가 짐짓 놀라는 채 과장된 표정을 지으며 최풍원에게 물었다.

“어느 분의 명인데, 한 치라도 소홀히 하겠사옵니까?”

최풍원의 목소리에는 천부당만부당하다는 투가 역력했다.

“고맙소! 내 호방과 상의해서 이번 일로 최 행수가 입은 손실을 꼭 벌충하게 해주겠소! 그리고 부사도 최 행수에게 신경을 좀 써주시오!”

“그렇게 하겠사옵니다. 영감!”

청풍부사 이현로가 목사의 말에 군소리 없이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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