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최풍원의 말은 배를 건조하며 쇠못을 사용하겠다는 것과 새 배를 짓는 것이 아니라 이미 사용했던 배를 뜯어 조립하겠다는 이야기였다. 나라에서는 배를 건조할 때 쇠못을 사용할 것을 적극 권장했다. 나무못을 사용한 배보다 암초나 풍랑에 훨씬 강하기도 하거니와 제작 시간을 절반은 단축할 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선주들은 선창에 배를 주문하며 개삭을 감안해서 나무못 쓰기를 선호했다. 쇠못보다는 나무못이 나무에 손상을 덜 주었으므로 개삭할 때 용이했기 때문이었다.

“배에 쇠못을 쓴 지가 언젠데 아직도 나무못을 사용하는가?”

“그러면 개삭할 때 불편합니다.”

“어차피 지금 짓는 군선은 다시 개삭하지 않을 것이네. 그리고 시일이 촉박하다네. 그러니 쇠못을 박게!”

민강 목사가 최풍원에게 쇠못을 박아 개삭할 것을 허락했다.

목사로서도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결정이었다. 충주관아가 훈련도감으로부터 받은 수주는 신조선 다섯 척이었다. 보통 전선 한 척을 건조하는 데는 쌀 이백오십 석에서 삼백 석에 맞먹는 비용이 들었다. 대곡전석으로 치면 척당 최고 일천이백 냥, 소곡평석으로 쳐도 구백 냥이 소요되었다. 다섯 척이면 사천오백 냥에서 육천 냥의 돈이 필요했다. 개삭을 한다 해도 삼사천 냥의 돈이 있어야 했다. 그러나 여러 해당 관청을 돌며 다들 조금씩 떼어먹은 후 실제 제조 관청인 충주관아에 내려온 돈은 이미 퇴역한 헌 배를 뜯어짓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돈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 지역을 관할하는 목사라 하더라도 무조건 신조선을 요구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이득을 남기는 장사꾼에게 사탕도 없이 무리하게 자신의 요구를 관찰시키는 것도 염치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허술하게 건조를 했다가 문제가 생기면 자신에게도 문책이 돌아올 수 있었으므로 아무렇게나 배를 건조하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최 행수, 이번 일만 잘 처리해주면 그 공을 내 잊지 않음세!”

충주목사 민강이 최풍원에게 무언의 약속을 했다.

최풍원은 충주목사 민강을 만나고 북진여각으로 돌아온 이후 총력을 다해 군선 개삭에 매달렸다. 목사의 청풍관아 나드리에 맞춰 군선도 같이 진수를 할 계획이었다. 최풍원이 손해를 보면서도 군선을 개삭하는 것이나 목사의 행차날에 맞춰 진수식을 하려는 것도 최풍원으로서는 다른 꿍꿍이가 있었다. 최풍원은 목사에게 신임을 얻어 그의 권력을 뒷배로 북진여각의 상권을 넓히겠다는 야심이었다.

유두가 가까워지자 하늬바람이 불며 강바람에서도 제법 여름 기운이 느껴졌다. 북진나루 건너 청풍의 진산 비봉산도 푸른 봉황으로 변해갔다. 산마다 골마다 신록이 짙어졌다. 이윽고 유두날이 되자 충주목사의 관행 행렬이 팔영루를 통해 청풍에 나타났다. 팔영루 안 읍성에는 목사의 행차를 보려는 구경꾼들이 백지알처럼 몰려들었다. 행렬의 맨 앞에서는 길라잡이가 목사의 행차가 지나가도록 구경꾼들을 물리며 길을 틔우고, 나팔수는 목통에 핏대를 세우며 날라리를 불어댔다. 화려한 복장을 갖춘 수십 명의 나졸들이 목사의 앞뒤를 호위하고, 목사는 머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잔뜩 위엄을 갖춘 채 말을 타고 있었다. 북쟁이가 북을 점잖게 느릿느릿 쳤다. 청풍부사 이현로가 관속들과 함께 나와 영접을 하며 관아정문인 금남루 안으로 안내를 했다. 충주목사는 청풍관아에서 잠시 쉬었다가 오티 물탕에서 물을 맞고 저녁에는 북진여각의 별채에서 하룻밤을 묵을 예정이었다. 최풍원은 이미 오티 물탕에도 목사의 물맞이 수발을 들 기녀들을 보내 단단히 준비를 시켜놓았다.

최풍원의 북진여각에서도 오늘 밤 충주목사 민강을 모시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북진나루에 어스름이 밀려오기 시작하자 사동들이 목사의 배가 닿을 나루터에 화톳불을 밝혔다. 최풍원은 진작부터 나와 목사의 배가 나루에 닿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보름이기는 해도 미처 달이 뜨기 전이라 날이 저물자 사방이 어둠속에 묻혀버렸다.

“얘들아! 나루에 횃불을 더 피우거라!”

최풍원이 조바심을 냈다. 그때, 강 하류 쪽에서 한 무리의 횃불을 밝힌 배들이 나타났다. 그 불빛들이 나루를 향해 점점 가까워지더니 닻을 내리고 기다리던 목사 일행이 드디어 배에서 내렸다.

“목사 영감, 원로에 노고가 많으셨읍니다요!”

최풍원이 정중하게 예를 올렸다.

“아니요, 최 행수가 워낙에 세심한 곳까지 배려를 해 놓아 조금도 불편함이 없었소이다. 고맙소!”

민강 목사의 들뜬 목소리로 보아 그 말이 인사치레만은 아닌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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