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승 대하소설 북진나루]제10부 북진여각에도 새바람이 불다(923)
[정연승 대하소설 북진나루]제10부 북진여각에도 새바람이 불다(923)
  • 충청매일
  • 승인 2020.10.28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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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매일] 지금까지 북진여각의 최풍원은 도중회를 결성하고 청풍의 지리적 특성을 이용하여 각 지역마다 곳곳에 객주들을 두어 경강상인들보다 먼저 특산품들을 도거리 함으로써 목계와는 달리 경상들이 선매를 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리고 벌써부터 나라에서는 육의전과 일부 시전을 제외한 모든 향시에서 누구나 자유롭게 장마당에 나와 장사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장꾼들 사이에 자유로운 거래가 이루어져 도중회의 객주들이나 보부상들의 수입이 줄어드는 것은 분명했다. 장사의 기본은 매매 차익을 노리는 것이었다. 모든 물산들은 산지에 따라 시세 차익이 존재했다. 객주들이나 보부상들이 거리가 먼 다른 지역이나 깊은 오지의 산중마을까지 발품을 팔아가며 장사를 하는 것은 한 푼이라도 더 많은 시세 차익을 얻기 위해서였다. 특히 배를 가지고 다니며 기동력이 좋은 경강상인들은 뱃길을 따라 대량의 대동미와 특산물을 싣고 다니며 지역에서 값싸게 도거리한 물산들을 값비싼 지역으로 싣고 가 판매를 함으로써 막대한 시세 차익을 남기고 있었다. 특히 경강상인들은 선단까지 이뤄 대량의 물산을 일시에 한 지역에 풀어놓음으로써 시세를 조작하기도 했다. 그렇게 되면 지역의 객주들이나 보부상들은 꼼짝없이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되기도 했다. 나라에서 금난전권을 폐지하여 누구나 장마당에서의 자유로운 장사를 허용했다고는 하지만 그것만으로 모든 장시가 문제없이 열릴 수는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장시를 열기 위해서는 여러 규제들을 쥐고 있는 관아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최풍원은 이런 규제를 북진여각에서 행사하기 위해 수시로 청풍부사에게 약채를 씀으로써 장마당을 통제해 왔었다. 그리고 그 힘이 바탕이 되어 오늘날의 북진여각을 일으킨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 난장에서 김판규 대감의 세도를 등에 업은 강장근 같은 거상 앞에서 청풍부사 정도의 권력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더 큰 도약을 위해 장사를 키우려면 지금보다 더 큰 권력과의 결탁이 최풍원으로서는 절실했다. 닭 잡는 데는 식칼이면 충분했지만 황소를 잡으려면 도끼가 필요했다. 북진여각을 유지하려면 이젠 황소를 잡아야 했다.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최풍원은 이번 난장에서 구해 놓은 진귀한 물산들을 바리바리 싣고 충주로 내려갔다. 충주목사 민강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목사라면 충청도에서는 으뜸인 공주 관찰사 다음으로 버금인 벼슬이었다. 목사는 지방의 큰 고을을 다스리는 정삼품의 외직문관으로 병권까지 쥐고 있어 그 권력은 대단했다. 가흥창 또한 충주목사의 관할 아래 있었다.

“윤 객주, 오래간만이외다.”

동헌에서 집무중이던 민강 목사가 윤왕구 객주를 반갑게 맞이했다.

“목사 영감, 자주 찾아 뵙지 못해 송구하옵니다!”

윤왕구 객주가 머리를 조아렸다.

“그래 무슨 일로?”

“객지에서 어찌 지내시는가 겸사겸사해서…….”

“내 타관살이야 스무 해가 넘는 일인걸, 뭘 새삼스러울 게 있겠는가?”

“그래도…….”

“동행한 사람은 누군가?”

그제야 민강 목사가 최풍원을 가리키며 물었다.

“아이고, 내 정신 좀 보게. 여보게 뭐 하는가? 인사 여쭙지 않고.”

윤왕구 객주가 너스레를 떨며 목사에게 인사를 시켰다.

“지는 청풍 북진여각 최풍원이라 하옵니다요”

최풍원이 읍을 올렸다. 민강 목사가 최풍원의 읍을 받으며 가볍게 답례를 했다.

“그래, 무슨 일로 나를 찾아왔는가?”

“그저 목사 영감께 문안이나 드릴까 하고 인사차 윤 객주 어른을 따라 왔습니다요.”

“목사 영감, 최 행수는 충주는 물론 남한강 상류 지역에 이르기까지 이 일대에서 저 사람을 능가할 거상은 없답니다. 앞으로 목사 영감께서 잘 좀 눈여겨 봐주셨으면 합니다요.”

“내가 봐줄게 뭐 있겠는가. 어험!”

민강 목사가 짐짓 거드름을 피웠다.

“언제든 관행 길에 저희 누옥에 들려주시면 정성을 다해 극진히 모시겠사옵니다요.”

“내 그렇잖아도 누가 오티 물이 좋다기에 유두에 물이나 한번 맞으러 갈까 한다네.”

민강 충주목사가 말하는 오티는 청풍관아에 속하는 작은 마을이었다. 청풍과 수산의 중간쯤에 위치한 마을로 죽령을 넘어 충주로 통하는 육로인 경심로가 지나고 있었다. 그리고 마을 뒤로 봉우재에는 단양의 소이산 봉수와 충주 마지막재가 있는 계명산 봉수를 연결해 주는 봉화대가 있어 중요한 지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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