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청주민예총 사무국장

 

[충청매일] 10년 전인지, 13년 전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내 나이 서른 중반쯤이었다. 이제 와 생각해보니 얼마나 젊고 싱싱한 나이였던가. 충북에서 개최하는 전국작가대회, 한국작가회의 지회·지부가 모두 모이는 대규모 행사를 치렀던 생각이 난다. 뭣 모르는 새내기처럼 우왕좌왕, 좌충우돌하기만 했지 어떻게 큰 행사를 마쳤나 모르겠다.

기념 시집 발행 예산을 위해 도청에 간 적 있었다. 지금도 관에 출입하는 일이 썩 내키지 않는데, 그때는 오죽했겠는가. 책을 발행하겠다고 기획서를 들고 가니 담당자가 따지듯이 묻는다. 작가들이 와서 뭐 하는 거냐, 도민한테 뭔 도움이 되냐, 당시는 그럴 듯했다. 글쎄, 작가들이 와서 뭐 하지? 작가란 사람들이 뭘 할 수 있지? 글이나 쓸 줄 알지 세상에 뭔 도움이 되긴 하는 사람일까? 담당자의 말이 비수처럼 꽂혀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화끈거림은 수치심과 불쾌함으로 이어졌고 당장이라고 서류를 던져버리고 나오고 싶었다. 지금이라면 가능한 일이지만, 벙어리 삼룡이처럼 침묵하다 돌아왔다.

다시 찾아온 전국작가들의 만남, 강원작가회의, 경남작가회의, 경북작가회의, 광주전남작가회의, 대구작가회의, 대전작가회의, 부산작가회의, 울산작가회의, 전북작가회의, 제주작가회의, 충남작가회의 등 전국의 한국작가회의 회원 400여 명이 충북을 찾아오는 행사이다. 

글이나 쓰고 술이나 마실 줄 알지 어디 가서 아쉬운 소리를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10여 년 세월이 흘렀다고 달라질 리 만무하다. 손님을 초대해놓고 초라하게 대접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예산 확보가 발등에 불로 떨어졌다. 다행히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충청북도, 청주시, 괴산군의 지원을 받았다. 생각처럼 수월하게 진행되지 않았지만, 예산 확보는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예산 확보 과정은 예술적이기보다는 정치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누구도 작가들이 모여 자고 먹고 싸는 일에 관심이 없었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작가들의 위치는 제자리란 생각이 들었다.

지자체는 홍보를 위해 영화나 드라마 제작비에 투자를 한다. 청주시만 해도 영화나 드라마 촬영이 잦다. 심지어 수암골은 영화거리로 조성되었다. 한때 수암골은 드라마의 한류 영향으로 일본 등 외국 관광객이 찾아오는 명소가 되었었다. 낡은 집이 카페와 식당 건물로 상전벽해 하였지만, 지금은 예전처럼 찾는 이가 많지 않다.

충북을 찾은 작가가 충북을 배경으로 글을 쓰고, 글이 한류 바람을 타고 충북이 유명세를 치르는 일은 없을 것이다. 다만, 충북을 다녀간 많은 작가의 기억 속에 충북이 남아 있어 그의 글이 된다면 그 글은 영원히 남을 것이다. 제주와 광주를 다녀온 나는 제주의 사람들과 바람과 바다의 이미지로 충만했다. 제주 4·3을, 광주 5·18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다시, 충북에서 전국작가대회가 열리는 날, 나는 환갑을 맞을 것이다. 서른 중반을 거쳐 환갑이 될 때까지 나는 글을 쓰고 있을 것이고, 타 지역에서 열리는 작가대회에 가끔 참석할 것이고, 숙취에 변기를 부여잡는 날 있을 것이고, 시원찮은 밥벌이에 시름겨워할 것이다. 여전히 대접받지 못하는 시인으로 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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