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가 바깥의 인기척에 눈짓을 하며 속삭였다. 그제야 눈치를 챈 신랑이 촛불을 껐다. 갑자기 방안이 깜깜해졌다. 밖에서 방안을 엿보던 구경꾼들의 탄식이 쏟아졌다. 어둠 속에서도 사그락사그락 옷 벗는 소리가 계속에서 들려왔다. 방문 밖에서는 방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훔쳐보려고 눈에 불을 켰다. 그렇게 밤이 늦도록 방문을 사이로 안과 밖이 서로 조바심을 내며 몸살을 앓았다.

② 가흥창의 세곡 운반권을 따내다

난장도 혼례도 모두 끝나고 나자 북진여각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이젠 예전의 방식대로 바꿈이 장사나 도거리 방법으로는 더 이상 북진여각을 운영해 나갈 수가 없었다. 이번 난장에서 최풍원은 예전과는 달라진 경강상인들의 상술에 말려 북진여각이 뿌리 채 흔들리는 어려움을 당해야 했다. 무언가 새로움이 필요했다. 그러지 않고는 새로운 변화에 적응할 수가 없었다. 새로운 변화에 적응을 못한다는 것은 곧 도태를 의미했다. 변화에 적응하려면 남보다 반 발짝이라도 앞서 세상의 흐름을 읽어내는 혜안이 필요했다. 이제까지 해왔던 장사 방법으로는 북진여각의 존립 자체에도 문제가 생길 것이 분명했다. 지금 세상은 열심히 일만 한다고 모든 게 이뤄졌던 과거와는 전혀 다른 세상으로 변하고 있었다. 세상 돌아가는 판세를 읽어야 급변하는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 시대 흐름의 한가운데에 권력이 있었다. 이제는 북진여각도 과거의 북진여각이 아니었다. 청풍관아의 비호로도 충분하던 이전의 북진여각 규모가 아니었다. 북진여각의 존폐에 따라 인근 이백여 리 안팎의 상권이 흔들릴 정도로 거대한 몸집으로 불어나 있었다. 북진여각의 상권을 유지하고 많은 식구들을 건사하기 위해서는 청풍관아의 이현로 부사보다 더 큰 권력과 손을 잡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최풍원은 이번 난장을 통해 뼈저리게 느꼈다. 북진에서는 청풍부사의 권력이 최고의 정점이었지만 조금만 그 영역을 벗어나면 그 권력은 이미 권력이 아니었다. 상권이 넓어질수록 권력도 그에 상응해야함을 알았다. 북진여각이 상권을 지키는 동시에 더 넓은 상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권력이 필요했다.

최풍원은 북진여각의 세곡 운반권부터 확대할 생각이었다. 지금 북진여각에서 맡아 세곡을 운반하고 있는 지역은 청풍관아의 관내뿐이었다. 나라의 세곡을 운반하는 공무이기는 했지만 시늉에 불과한 운반권이었다. 관내 각 마을에서 수거된 세곡을 강가에 마련된 창으로 옮기는 일에 불과했다. 물량도 적고 거리도 짧아 청풍관아로부터 받는 대가도 미미했다. 최풍원은 청풍 관내의 세곡을 옮겨주는 운반비 대신 청풍부사로부터 공물권을 부여받고 있었다. 처음 장사를 시작했을 때는 이것이 북진여각의 큰 힘이 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북진여각의 규모에 비해 세액이 많지 않은 공물권 또한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지금 나라에서 백성들에게 부과하는 세금에는 조(租)·용(庸)·조(調)가 있었다. 조(租)는 양반이 나라로부터 받은 땅을 농민들에게 경작케 하고 거두는 소작료이며, 용(庸)은 농민들이 나라에 바치는 노동력이며, 조(調)는 각지의 특산물을 바치는 일이었다. 이 가운데 공물은 특산물인 조(調)에 해당하는 세제로, 대궐과 중앙 관서에서 필요한 물품을 충당하기 위하여 전국 팔도의 군현에 부과하여 상납하게 하는 세금이었다. 모시·베·명주 외에도 약초·모피·지물(紙物) 따위의 그 고장에서만 나는 온갖 특산물을 구해 나라에서 관리하는 한양의 경창으로 올려 보내는 것이었다. 나라에서는 공물을 원활하게 거둬들이기 위해 하급 관리나 상인들에게 농민을 대신하여 조정에 특산품을 먼저 바치게 하고 나중에 농민들에게 받도록 했다. 그러나 이 제도는 공물 주인들이 공물방을 차려놓고 자기들 마음대로 공납한 물품의 비용과 이자까지 정해 높은 대가를 징수하니 농민들의 고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것이 ‘방납의 폐’였다. 그러자 조정에서는 공물로 바치던 특산물을 쌀로 통일시켜 바치게 했다. 이것이 ‘대동법’이었다. 그러나 이 세제가 무조건 쌀만 거둔 것이 아니라 각 고을의 특성에 따라 쌀 대신 베나 특산물을 부과하기도 했다. 이런 나라의 세곡을 쌓아놓는 창으로 가장 큰 것이 충주에 있는 가흥창이었다. 가흥창은 남한강 최대의 세곡창고였다. 가흥창의 세곡량이 엄청나 거기에서 나오는 운반비뿐만 아니라 그곳의 운반권만 따낸다면 한양의 권력가들과도 쉽게 손을 잡을 수 있는 연결고리가 될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북진여각은 지금보다 훨씬 더 규모가 커질 것이고 권력을 뒷배로 가지고 있으면 웬만한 벼슬아치들은 집적대지도 못할 테니 그만큼 장사하기가 수월해질 터였다. 지금까지 가흥창의 세곡 운반권은 대부분 경강상인들이 독점하고 있었으며, 부스러기 일만 간간이 지역의 객주들이 주워 먹고 있었다.

최풍원은 어떻게 하든 가흥창의 세곡 운반권을 북진여각의 수중으로 끌어들이기로 작정했다. 천석꾼의 집에는 천석을 넣을 수 있는 곳간이 만석꾼의 집에는 만석을 넣을 수 있는 곳간이 필요한 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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