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북진여각 넓은 마당에는 차일이 쳐지고, 바깥마당은 물론 한길까지도 멍석 닢이 깔려 사또 행차 날보다도 더 북적거렸다. 바깥마당 한 쪽에는 무쇠 솥이 줄줄이 걸리고 장작불이 지펴졌다. 장작불이 활활 타오르는 무쇠 솥에서는 돼지를 틔워낼 물이 펄펄 끓고 그 옆에서는 열댓 마리의 돼지가 네 다리를 하늘로 쳐든 채 꽁꽁 묶여 있었다. 집 안팎은 돼지 멱따는 소리로 귀청이 찢어졌다. 동네에서 이런 구경거리는 실로 오랜만이었다. 오랜만에 구경거리와 먹을거리가 생긴 마을사람들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고, 아이들은 귀를 틀어막은 채 이리 뛰고 저리 뛰며 몰려다녔다.

“요놈의 자식들! 냉큼 저리들 못 가니!”

부침질을 하는 소댕 곁에는 한 조각이라도 집어먹으려고 널름대는 아이들을 막느라 아낙들이 주걱을 내저으며 아이들을 쫓고, 아이들은 요리조리 피하며 채반에 담긴 부침개에 눈독을 들였다. 그야말로 북진여각 안팎은 잔칫집 분위기로 시끌벅적했다.

혼삿날이 되자 청풍 인근 객주들과 북진여각의 그늘 아래 목을 매고 있는 사람들이 형편이 되는대로 부조를 가지고 몰려들었다. 객사 안마당 곳간 앞에서는 수천이가 줄나래비를 이루며 밀려드는 사람들의 물목을 적느라 정신이 없었다. 김이 설설 나는 떡시루를 지고 오는 사람, 술을 걸러 술동이를 가져오는 사람, 두부 모판을 들고 오는 사람, 콩나물 시루를 이고 오는 아낙, 닭을 들고 오는 노파, 장작을 잔뜩 지고 오는 사람…… 등등, 이도저도 없는 사람들은 직접 북진여각으로 와 잔치준비를 거들었다. 저마다들 먹고 사느라 제 앞길 다스리기도 급급했지만 북진여각 최풍원 행수의 외동딸 혼사인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북진여각의 대문간은 혼례소식을 듣고 몰려든 사람들로 문턱이 닳아지도록 번잡스러웠다.

북진여각의 큰마당에 초례청이 차려졌다. 혼례를 올릴 준비가 모두 끝난 초례청 주변에는 구경꾼들이 신랑 신부가 들기만을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신랑은 동문에 서 입자하시오-.”

드디어 혼례가 시작되었다. 집사가 길게 목소리를 빼며 목청을 돋우었다.

기럭아비를 따라 사모관대를 차려입은 봉화수가 동쪽 문에 나타났다.

“차암, 신랑 미끈하게 잘 생겼구먼.”

“저 이목구비 좀 봐!”

“풍채는 어떻고.”

“저런 신랑하고 하루만이라도 살아봤으면.”

“난, 쳐다만 봐도 온 몸이 녹작녹작해지는디…….”

동문 처마에 닿을 듯 훤칠한 봉화수를 보며 동네 아낙들이 군침을 흘렸다.

“매친 것들! 이 년들아, 초례청에서 그게 할 소리여?”

동네 시어머니 음전 할매였다.

음전 할매는 낫처럼 휜 허리와 짚고 다니는 지팡이만 아니면 여든을 넘긴 노인이라고는 느껴지지도 않을 만큼 걸음걸이가 약빨랐다. 그 정정한 기운으로 동네 큰일에는 빠지는 법이 없었다. 그리고는 음식 하는 아낙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며 참견했다. 그래도 헛된 말은 하나도 없었다.

“신랑은 기러기를 받아 신부 어머니께 전하시오.”

봉화수가 기럭아범에게서 목기러기를 건네받아 대청마루에 놓여있는 팔각소반 위에 올려놓고 신부 어머니에게 두 번 절을 했다. 신부 어머니가 기러기를 치마폭에 싸가지고 방으로 가지고 들어갔다. 봉화수가 봉당을 내려와 차양이 쳐진 초례청 동쪽에 먼저 섰다.

“신부는 나와 서편에 서시오-.”

숙영 낭자가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항아의 도움을 받으며 방에서 나와 댓돌 위에 놓여진 꽃신을 신고 초례청으로 내려왔다. 대반들이 신랑 신부에게 자리를 펴주고 두 사람을 마주 세웠다.

“교배례-.”

봉화수가 무릎을 꿇고 앉아서 숙영 낭자가 올리는 절을 받았다. 신부의 재배가 끝나자 신랑이 신부에게 단배를 했다.

“여자한테는 평생 제일 좋은 날이여. 신랑 절을 받으니.”

“여보게 신부, 오늘 절이 첨이자 마지막이여. 그러니까 신랑 절 잘 받어.”

“맞어. 오늘만 절을 하지, 앞으로는 올라타려고만 할걸.”

“우리 집 이는 이젠 올라 올라오려고도 않어.”

아낙들의 속닥거림을 듣던 구경꾼들이 와르르 웃었다. 신랑과 신부 얼굴이 빨개졌다.

“합근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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