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내 어쩌다 네놈한테…….”

김주태가 탄식했다.

“아무리 용을 써야 소용없소. 목숨이라도 보존해 곡기라도 목구멍으로 넘기려면 내게 모든 땅과 도가를 넘기고 청풍을 떠나시오! 그게 당신이 살 길이오!”

“…….”

결국 김주태는 최풍원에게 항복했다. 그리고 김주태는 가솔들을 데리고 청풍 땅을 떠났다.

이제부터 청풍도가는 북진여각의 관할 아래 들어가게 되었다. 최풍원은 청풍도가의 행수로 장석이를 보냈다. 앞으로 청풍도가는 북진여각의 지시에 따라 관아에 공납하는 물품과 불하받는 물산들을 처리하게 될 것이었다. 청풍도가를 수중에 넣은 북진여각으로서는 천리마에 날개를 단 격이었다. 열심히 일하면 밥은 굶지 않는다 했다. 그러나 천석지기, 만석지기는 부지런히 혼자 일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다. 큰부자는 하늘이 낸다고 했다. 하늘이 큰부자를 낸다는 말은 주위에서 사람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될 수 없다는 말이었다. 사람들이 도와 이룰 수 있는 큰부자보다 더 큰 거부는 관과 손잡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미 한참 전부터 미향이를 통해 청풍부사 이현로에게 약채를 먹이고는 있었지만 워낙에 오랫동안 관아는 청풍도가와 결탁해 일을 몰아주고 있었으므로 북진여각에서도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 청풍도가 김주태가 꼴심을 부리며 권세를 부리던 시절은 갔다. 청풍도가를 장악한 최풍원은 북진임방의 대행수로서 입지도 굳히게 되었고 거상이 되기 위한 큰 관문을 통과한 셈이었다. 최풍원은 이번 일을 계기로 북진임방을 북진여각으로 규모를 확대했다. 그리고 각 지역의 객주를 임명하고 도원들을 뽑아 본격적인 북진여각의 서막을 알렸다.

제10부 북진여각에도 새바람이 불다    

① 봉화수, 최풍원의 무남독녀 숙영과 혼례를 올리다

두 달여가 넘게 지속되었던 난장이 폐장되고, 일상으로 돌아왔던 북진여각이 또다시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봉화수와 최풍원의 무남독녀 숙영 낭자의 혼롓날이 다가온 것이었다.

벌써 여러 날 째 북진여각의 안채에서는 아낙들이 절구질을 하고 부침개를 부치고 음식을 만드느라 종종걸음을 치고, 또 한 머리는 광에서 꺼낸 그릇들을 닦아 광주리에 쌓으며 수다들을 늘어놓고 있었다. 바깥마당에서는 사내들이 돼지를 잡느라 난리법석을 피웠다.

“돼지를 그렇게 잡는 놈이 어디 있냐!”

동네마다 잔치만 있으면 감초처럼 나타나는 상팔이었다. 상팔이는 일은 거들지도 않으면서 남의 하는 일마다 참견하며 타박만 늘어놓았다.

“좇도 모르는 년이 송이 따러가고, 거시기도 할 줄 모르는 년이 요분질만 친다더니 아저씨가 뭘 안다고 이래라 저래라요?”

돼지 목을 따 버래기에 선지를 받던 복삼이가 피 묻은 손으로 사래질을 치며 신경질을 냈다.

“아니 대가리에 쇠똥도 안 마른 놈이 어디다 대고 함부로 주둥이질인고?”

“쇠똥이구 개똥이구 시끄럽소! 거기 다리라도 잡아줄라면 있고 말라면 가시오!”

복삼이가 버드덩거리는 돼지 다리를 턱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상팔이는 마흔을 훌쩍 넘긴 초로기임에도 젊은 것들에게조차 대우를 받지 못했다.

워낙에 남의 일에 참견하기를 좋아하고 엉덩이가 가벼워 팔랑개비처럼 돌아다니며 군소리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복삼이 말이 맞어! 일도 안 하던 놈이 명절날 낫 가지고 어리대고, 판심도 못하는 원님이 주둥이만 깐다더니 그 짝이구먼. 네놈이 언제 이 빠진 칼이라도 한번 잡아봤냐?”

상팔이와 어려서부터 북진에서 함께 자라온 친구 승악이었다.

“칼만 잡으면 다 백정이냐? 괜히 엄한 돼지 바로 못 잡고 고생만 시키니까 하는 말이다, 이놈아!”

“지랄 떨지 말고 잠자코 구경이나 하고 있거라 이놈아! 쓸데없이 말만 많으니 네놈 양기가 다 주둥이로 쏟아져 나와 힘을 쓰지 못하는 게여!”

“아닌 밤중에 무신 힘 타령이여 이놈아!”

“네놈 요즘 밤일 시원찮다고 제수씨 볼이 주먹만큼 부었던데, 돼지 잡거든 부랄 꺼내 줄 테니 구워 처먹고 지수씨 입이나 환하게 벌어지게 하거라!”

승악이가 놀려먹자 돼지 잡는 구경을 하며 두리기로 모여 있던 마을사람들이 박장대소를 하며 웃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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