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청풍에서는 처음으로 시도해본 논보리 농사는 대풍은 아니었지만 평년작은 이루었다. 겨우내 놀리던 땅에서 나온 수확이니 평작이라도 소작인들에게는 자다가 떡이 생긴 격이었다. 게다가 땅주인에게 소작료를 바칠 것도 없이 소출을 몽땅 자기가 먹을 수 있으니 횡재나 다름  없었다. 김주태의 땅을 부치던 소작인들은 최풍원네 논을 부치는 소작인들이 너무나 부러웠다. 모심기 때가 되자 김주태네 집에서는 난리가 났다. 김주태네 땅을 부치던 소작인들이 굶어죽더라도 김주태 땅은 부치지 않겠다며 한꺼번에 들고 일어났다. 모내기가 목전인데 농사를 짓지 않겠다며 모두들 뒤로 벌러덩 누워버리니 김주태로서는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농사는 다 때가 있는 법이었다. 일 년 농사가 막 시작되는 턱 밑인데 소작인들이 농사를 안 짓겠다며 파업을 했으니 김주태는 농사를 망칠 수밖에 없었다. 김주태의 논은 부칠 사람이 없게 되자 묵논이 되고 종당에는 풀밭이 되고 말았다. 청풍도가의 근간인 농사를 망치자 김주태의 위세도 크게 꺾였다. 게다가 장사마저 사방에서 물산의 흐름을 막아버리자 숨통이 막혀 비들비들 시들기 시작했다. 부자가 망해도 삼 년은 간다더니 그래도 김주태는 쉽사리 포기하지 않았다. 소작인들이 모두 떠나 농사를 망치고 장사마저 기울어 청풍도가의 장사꾼들이 태반이나 빠져나갔는데도 김주태는 도가를 움켜쥐고 내놓지 않았다.

최풍원은 김주태를 직접 압박하기 시작했다. 최풍원은 마지막으로 김주태에게 사람을 넣어 강상죄로 관아에 고변하겠다고 위협했다. 보연이가 아버지 김 참봉의 동첩이기는 했지만 엄연히 김주태에게는 어머니였다. 그럼에도 김주태는 아버지가 죽자 어머니인 보연에게 자식으로서는 차마 해서는 안 될 몹쓸 짓을 했다. 나라에서도 삼강오륜을 심하게 훼손한 자는 강상죄로 엄하게 다스렸다. 김주태가 청풍관아와 결탁하여 아무리 무소불위로 권세를 부리고 있다 하여도 모반죄에 버금가는 강상죄를 지은 것이 밝혀지면 목이 서너 벌이라도 살아남기 힘든 일이었다. 결국 김주태는 청풍관아에 입고할 특산품도 공납하지 못하게 되고, 청풍도가 창고는 텅텅 비어 허깨비만 남고, 가세를 지탱해주던 소작인들도 모두 떠나게 되자 힘을 쓰지 못하게 되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강상죄까지 저질러 모가지가 날아갈 지경이 되자 강을 건너 북진임방으로 최풍원을 찾아올 수밖에 없었다.

“서방님, 어려운 행보를 하셨소이다.”

최풍원이 머리를 숙여 김주태를 맞이했다.

“어-허엄, 어험!”

김주태가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거드름을 피우며 헛기침만 되풀이했다. 최풍원의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모가지를 내놓겠소? 아니면 청풍도가와 전답을 모두 내게 넘기겠소?”

“아니 이놈이! 어디다 대고 감히 하라 마라더냐?”

“왜, 예전에 부리던 머슴놈이 이래라저래라 하니 오장육부가 뒤틀리는가?”

최풍원이 갑자기 하대를 했다.

“날 이렇게도 능멸하고 네놈이 무사하길 바라느냐?”

김주태의 이마에 핏줄이 섰다.

“개만도 못한 짓을 한 놈을 어찌 사람으로 대접하겠느냐! 사람대접을 받고 싶으면 사람 노릇을 했어야지. 사람이 개와 다른 것은 인륜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너는 인륜을 저버렸으니 개와 다를 것이 뭐 있겠느냐!”

“뭐라고 개?”

“그럼, 네놈이 개지 인간이더냐? 너 같은 잡놈과는 마주 앉아있는 것도 욕이다. 얘들아, 주태 놈을 당장 봉당 아래 땅바닥에 꿇리거라!”

최풍원이 마주앉아있던 주태를 끌어내 임방 앞마당으로 끌어낼 것을 명했다. 동몽회원들이 마루로 올라와 김주태를 마당으로 끌어내렸다. 김주태가 분을 참지 못해 말도 못하고 부들부들 떨기만 했다.

“왜 분하시오? 억울하게 죽은 보연이를 생각하면 당신을 갈기갈기 찢어서 개먹이로 던져도 분이 풀리지 않소!”

“뭐? 개먹이!”

“당신이 한 짓을 생각하면 개먹이도 아깝소! 당신이 개보다 낫다고 생각하시오?”

“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고!”

김주태가 탄식을 했다.

“내가 당신을 살려놓는 것은 그래도 한때 우리 남매를 거둬준 정 때문이오. 그러니 모든 것을 내게 넘기시오!”

“끄응-.”

김주태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청풍관아에서도 더 이상 당신을 보호해 주지 않을 것이오. 모가지라도 보존해 구차한 삶이라도 살려면 내 말에 따르시오. 당신 목숨도 이젠 내 손에 달렸소! 어쩌시겠소?”

최풍원이 김주태를 몰아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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