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그리고 벌목꾼들은 절대로 자신들이 벤 나무의 그루터기에 엉덩이를 대고 앉지 않았다. 한번은 용강이가 그루터기에 앉았다가 벌목장 김광출에게 쓴소리를 들었다.

“이봐! 거기서 당장 일어나!”

용강이가 방금 베어진 소나무 밑동에 엉덩이를 대고 앉자 김광출이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왜그러슈?”

“나무도 혼령이 있어. 금방 벤 나무 밑동에서는 독기가 뿜어 나오니 절대 앉지 말거라!”

“나무에 뭔 혼령이 있단 말이우? ”

용강이가 픽픽 웃으며 김광출의 말을 귓등으로 들었다.

“오래된 나무에선 서기가 돌아 기 약한 사람들은 그런 나무를 자르고 나면 며칠씩 몸살을 앓어. 네가 큰코를 한번 당해봐야 내 말을 믿지.”

김광출은 진지하게 말했지만 용강이는 믿으려 들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후 용강이는 벌목꾼이 베어 쓰러지는 나무를 보지 못하고 그 밑에 깔려 크게 몸이 상했다. 사람들은 금기를 어겨 벌을 받은 것이라고 했지만 그것은 알 수없는 일이었다. 산판꾼들은 비린내 나는 음식도 입에 대지 않았다. 풍원이가 겨우내 벌목장 인부들이 먹을 양식을 보태주기 위해 영춘으로 올라오며 쌀 닷 섬과 새우젓 열 근을 발구에 싣고 와 심봉수에게 주었다. 그러나 심봉수는 산판일을 하는 중에는 비린내 나는 어물은 먹지 않는다며 새우젓을 받지 않았다. 산에서는 지켜야 할 금기가 한둘이 아니었다. 험한 일을 하며 마음에 꺼려지는 일이 있으면 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었다. 좋은 것이 좋은 것이었다.

벌목은 산 아래 기슭에서부터 시작해 골을 따라 벌채된 나무로 통로를 만들며 산을 타고 올라갔다. 벌채된 아름드리는 나무길이라 부르는 통로를 통해 미끄러져 산 아래 수집장에 모아졌다. 그러면 목도꾼들에 의해 물가로 옮겨졌고 이를 동발꾼들이 떼로 엮었다.

평창의 서강과 영월 동강은 깊은 산중의 협곡을 흐르고 있었기 때문에 강폭이 좁고 여울이 많아 한꺼번에 큰 뗏목으로 엮어져 내려올 수가 없었다. 여기에서는 우선 작은 동가리 뗏목으로 엮어져 영춘 용진나루로 옮겨졌다. 용진나루에서는 작은 동가리들을 네다섯 개씩 다시 엮어 한바닥으로 만들어 한양으로 떠났다. 심봉수가 하는 일은 벌채를 해서 뗏목을 엮어 한양까지 나무를 운반하는 목상이었다. 뗏목은 궁궐에 쓰이는 궁궐떼를 비롯해서 일반 여염집에서 쓰이는 가재목떼, 그리고 장작으로 쓰이는 화목떼에 이르기까지 용도에 따라 다양했다. 목상은 한양을 자주 왕래할 수 있어 언제나 새로운 물품들을 직접 접할 수 있었다. 풍원이는 이번 기회에 심봉수를 통해 목상 일도 배워볼 작정이었다. 그러려면 목상의 기본인 산판일을 알아두는 것이 기본이었다. 무슨 일이든 배워두면 언젠가는 한번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래할 물산이 거의 없는 겨울 동안 풍원이는 산판일을 익힐 참이었다.

그러나 풍원이는 벌목장에 붙어있지 못했다. 영춘 관아에서 강원도 일대와 충청좌도 북부지역에서 거둬두었던 세곡을 충주 가흥창까지 옮겨달라는 기별이 산판으로 왔다. 충주 윤왕구 객주의 세곡 오백 섬을 발구를 이용해 단 이틀 만에 모두 옮겼다는 소문이 남한강 인근에 파다하게 퍼지자, 관아와 객주들로부터 세곡과 물산들을 운송해달라는 청이 줄지어 들어왔다. 관아의 세곡들은 대부분 남한강 물길을 따라 충주 가흥창으로 내려가는 것들이었고, 오는 길에는 장사꾼들이 필요로 하는 물건들을 실어다 주었다. 겨우내 풍원이는 발구꾼들과 함께 얼어붙은 강물의 얼음판 위에서 살다시피 했다. 메밀을 옮기려고 만든 발구가 뜻하지 않게 떼돈을 벌어들여 풍원이가 장사 기반을 잡는 데 일등공신이 되었다.

그렇게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겨우내 하얗게 눈이 쌓여있던 읍내 들판도 맨땅이 드러났다. 논보리를 뿌려놓았던 최풍원의 쉰 마지기 논에만 짚과 검불이 두둑하게 덥혀있었다. 다른 논은 아직도 땅이 공공 얼어있었지만, 햇살이 비취면 최풍원의 논에서는 김이 아지랑이처럼 올라왔다. 논보리를 덮어놓았던 짚과 검불에서 솟아오르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밑에서는 파란 보리새싹이 촘촘하게 올라오고 있었다. 워낙에 짚을 두텁게 덮은 터라 씨앗이 얼어 죽지 않고 청풍의 모진 혹한을 견디고 논보리가 뿌리를 내린 것이었다. 물론 농사가 하늘 뜻에 달린 것이기는 하지만 겨우내 소작인들의 살뜰한 보살핌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늘이 도와줘야 되는 일이었지만 사람 정성도 그 못지않은 것이 농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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