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장사꾼에게 약속도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신의 못지않게 장사꾼은 이득도 챙길 줄 알아야 한다.”

윤 객주가 풍원이 속내를 간파하고 일침을 놓았다. 장사꾼은 신의와 이득 중 어느 하나에도 치우쳐서는 안 된다는 뜻이었다.

“어르신 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올라가겠습니다!”

풍원이가 결심을 하고 윤 객주의 세곡을 옮기기로 결심했다. 일손을 서두른다면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영춘의 벌채권까지 따주겠다니, 최악의 경우 한해 겨울 벌목을 못한다 하더라도 심봉수에게 결코 손해날 일은 아니었다. 풍원이는 일행들과 함께 발구를 끌고 얼어붙은 강물을 따라 서둘러 목도로 올라갔다.

목도는 남한강의 지류인 달래강 상류에 있는 산중마을이었다. 바다도 없는 목도가 내륙 깊숙이 자리하고 있으면서도 해물을 구경할 수 있는 것은 순전히 달래강을 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장마가 지는 여름철에 배가 들어오면 관아가 있는 청안보다도 장이 더 번성했다. 법주사가 있는 속리산에서 발원하는 달래강은 조선에서는 제일로 물맛이 달다고 해서 달천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도 불리기도 했다. 달래강은 수량이 풍부하지 않아 큰물이 지거나 늦장마가 져야만 배의 왕래가 가능했다. 달래강 또한 지난해 늦 가뭄이 심해 윤 객주는 지토선을 띄우지 못했다. 나라에서 거둬들이는 괴산 지역의 세곡은 사월까지 한양의 용산창으로 옮겨야만 했다. 만약 시일을 어기게 되면 위약금은 물론 곤장까지 맞아야 했다. 그것보다도 더 치명적인 것은 약속을 어기게 되면 다시는 세곡 운송권을 불하받지 못하는 데 있었다. 장사꾼에게 세곡 운송권은 황금알을 낳는 아주 큰 사업이었다. 윤 객주는 온갖 고생 끝에 괴산 지역의 세곡 운송권을 충주 관찰사로부터 불하받았다. 그런데 지난 가을까지 계속된 늦 가뭄으로 강물이 군데군데 바닥을 드러내자 배를 띄우지 못해 지금까지 세곡을 옮기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던 참이었다. 장사꾼에게 신용은 곧 재산과 직결되는 문제였다.

풍원이는 세 명씩 타던 발구꾼을 한 명씩 빼내 두 사람이 몰게 하고 나머지는 목도나루에 남아 미곡 섬을 정리하도록 했다. 짐 실은 발구를 밤에 모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었지만 횃불을 밝히며 빈 발구를 끌고 올라오는 것은 가능했다. 그러면 나루에 기다리고 있던 품꾼들이 밤을 다퉈 짐을 실어놓았고 발구꾼들은 날이 채 들기도 전에 출발을 했다. 새벽에 목도를 떠나면 새참 전에 충주 유즈막에 도착했고 서두르면 하루에 두 번의 운송도 가능했다. 풍원이는 이틀 만에 윤 객주가 불하받은 세곡 오백 섬을 모두 충주까지 옮겼다. 소나 등짐에만 의존하던 겨울철 물산 운반이 발구를 만들어 얼음 위로 다니게 되자 많은 양을 한꺼번에 옮길 수 있었고 시간은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빨랐다.

“정말 대단하이!”

윤 객주가 놀라면서도 한편 흡족해했다.

풍원이는 윤 객주의 세곡을 무사히 옮겨주고 동몽회 회원들과 벌목꾼들을 데리고 곧바로 영춘으로 올라갔다.

“정말 고맙소! 난 당신 표정을 보고 약속을 지킬 사람이라는 것을 확신하면서도 시간이 다가올수록 반신반의했다오.”

심봉수가 풍원이의 손을 다정하게 잡았다.

“무슨 소리요? 난 가장 큰 밑천이 신의라고 생각하오!”

“어디 세상 사람들이 그렇소? 제 이속만 차리고 나면 모르는 척 뒤돌아서는 것이 다반사 아니겠소?”

“심형, 우리 앞으로 힘을 합쳐 좋은 관계를 맺어봅시다.”

“좋소! 나도 바라는 바요. 우리 서로 나이도 비슷하니 이제부터 호형호제합시다.”

“그렇게 합시다. 심형!”

“나도 자넬 도울 일이 있다면 뭐든 하겠네!”

“나도 죽을 때까지 형제처럼 자넬 대하겠네!”

두 사람은 손을 마주 잡고 형제의 의리를 맹세했다.

“자네 내일 우리 산제 지내는 것 좀 보고 가게나.”

“그렇잖아도 그럴 참이네. 그리고 이번 기회에 자주 벌목장에 들려 목상 일도 배워볼 작정이네.”

“괜히 남의 밥줄 끊지 말고 자네 장사나 하게!”

“예끼 이 사람아! 아무려면 내가 만나자마자 친구 밥줄부터 끊겠는가?”

두 사람이 박장대소를 했다.

한강은 물줄기가 남북으로 갈라져 백두대간 깊은 산중까지 뻗쳐져 있어서 물길을 통해 각지에서 생산되는 물산들을 한양까지 손쉽게 운반할 수 있었다. 무거운 목재 또한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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