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우리 청풍에서 논보리 농사는 처음으로 시도하는 것이오. 농사일은 평생 이곳에서 지어온 여러 농군들이 더 잘 알 테니 좋은 방법이 있으면 서로 얘기들을 해주시오!”

봉화수가 소작인들을 모아놓고 파종할 보리씨앗이 얼어 죽지 않고 겨울을 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했다.

“농사야 날씨가 하는 일인데, 그걸 어찌 우리가 이리저리 할 수 있단 말이유?”

“논바닥에 보리를 뿌려놓는 것은 한겨울에 빨가벗고 얼음판 위에 서있는 것이나 다름  없을 텐데 그 보리가 성할 리 있겠소이까? 다 얼어 죽고 말지!”

“논바닥에 구들장이나 놓으면 모를까 겨우내 꽝꽝 얼어버릴 얼음판 위에서 무슨 뿌리를 내릴 수 있겠시유?”

이태 동안은 거저 땅을 부치도록 해주겠다는 말에 헛일 하는 셈 치고 달려들기는 했지만 한 번도 겨울 논보리를 뿌려본 적 없는 소작인들도 막막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런대도 봉화수는 소작인들에게 기대어 논보리 살릴 방법을 찾아보라며 매달렸다.

“씨앗도 여각에서 모두 댈 터이니 여러 농군 네들은 농사만 성공시키면 되오!”

“땅 부치는 것도 공짜, 씨앗도 공짜니 우리는 완전 날로 농사를 짓는 것이내.”

“날로 농사를 지으면 뭘 허냐? 보리가 다 얼어 죽어 소출이 없으면 그게 그거지. 어차피 다 죽을 보리니 반만 뿌리고 냉거지는 우리가 그냥 먹어 버릴까나.”

약빠른 소작인 중에는 벌써부터 씨앗으로 쓸 보리를 떼어먹을 생각부터 먼저 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따, 그놈! 병아리도 까기 전에 알부터 먹을 생각허는 놈 일세 그려!”

“남 호의를 그래하면 죄 받어!”

“죄나마나 이래저래 씨앗만 날릴 일인데 배라도 채우는 게 상책 아니우?”

“그래도 해보는데 까지는 해봐야지!”

그래도 대부분 소작인들은 자신은 없지만 어떻게라도 논보리 농사를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논보리가 안 되는 것은 밭보다 논이 물이 많아 얼어 그런 것이니 논에 물기를 빼서 말리면 어떨까 하우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리! 그 너른 논에 물기를 무슨 수로 말린단 말이냐?”

“그야 쟁기로 논바닥 곳곳에 골을 깊이 파면 그리로 물이 빠질 것이니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닐 듯싶소.”

“물기만 빼면 뭘 하겠는가. 논바닥 위 건천에 뿌린 보리 알갱이가 혹한을 전디겠야?”

“그거야 짚이나 검불을 해다 덮으면 되지 않을까유?”

“그거 좋은 생각일세! 마늘농사를 하듯 그리 말이지?”

“야아!”

소작인들은 서로 이야기를 하며 의견을 내고 반대를 하고 또 해답을 내며 논보리 농사를 어떻게 할까 궁리를 거듭했다. 그리고는 마침내 소작인들은 논보리농사를 시작해보기로 생각을 모았다.

“밭보리도 상강 전에는 뿌리는데, 논보리는 밭보다 더 일찍 서둘러야겠네! 당장 내일부터라도 시작해야 하지 않겠는가들!”

이튿날부터 청풍읍성 최풍원 네 논에는 소작인들로 북적거렸다. 봄도 아니고 추수가 다 끝난 허허들판에서 농부들이 부산하게 움직이자 무슨 일인가 싶어 사람들이 구경을 하느라 모여들었다. 소작인들은 논에 소를 들이밀어 넣어 고랑을 타고 두둑에다 보리를 뿌리고 발고무래로 흙을 덮었다. 그리고는 벼 타작을 하고 쌓아놓은 짚가리를 헐어 두둑 위를 덮었다. 어떤 부지런한 소작인은 마른 검불을 산더미처럼 지고와 겹겹이 덮기도 했다. 어쨌든 자기가 농사짓는 논에서 나오는 소출은 자기가 모두 먹을 수 있으니 갖은 정성을 쏟았다. 그러는 사이 서리가 내리고 날이 추워지며 금시 겨울이 왔다. 내륙 깊숙한 산골에 깊은 강까지 흐르고 있는 청풍의 겨울 날씨는 혹독했다. 강이 얼어 터지며 나는 쩡쩡 소리가 한낮에도 끊이지 않았다.

그러던 중 영춘 지방에 메밀이 지천이어서 값이 폭락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올 초부터 강 상류의 단양·영춘 지역에 가뭄이 들어 모든 곡식이 타죽자 골골마다 구황 작물인 메밀을 대파했다. 여름이 깊어지자 영춘 지역은 발길 닿는 곳마다 천지 사방이 눈밭으로 변했다. 산간지역인 영춘현 전체가 메밀밭이었다. 가을 들어 수확철이 되자 당연히 소출은 넘쳐났고 일용할 양식을 남겨두고도 가가호호 내놓은 메밀이 지천이었다. 소금 한 섬이면 능히 메밀 열 섬을 만들 수 있었다. 풍원이는 여러 바리의 소에 소금과 잡화를 싣고 동몽회원들과 함께 영춘으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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