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화수야, 우리 논을 경작하고 있는 소작인들을 모두 모이라고 하거라!”

추수가 가까워오자 최풍원이 봉화수에게 명을 내렸다.

최풍원의 명에 따라 읍내 소작인들이 북진여각으로 모여들었다.

“여러분들, 곧 타작을 할 때가 되었소이다. 지난번 약조를 했다시피 이태 동안은 소작료를 받지 않을 것이오! 그러니 소출이 많이 나면 날수록 이득이 될 테니 마지막 갈무리를 잘해서 김주태 논보다 훨썩 낫게 나락을 가꿔주시오.”

최풍원이 소작인들에게 자신의 뜻을 한 번 더 되새겼다. 그리고는 나락이 알차지도록 마지막 갈무리를 잘하도록 독려했다.

“정말 타작한 벼를 몽땅 우리 집으로 가져가도 된단 말씀이우?”

“내 여적지 남의 도지를 부치며 살아왔지만, 살다 살다 이런 일은 처음이우!”

“내 땅도 아닌데 농사 지서 내가 다 가져가도 된다니 내 땅이나 마찬가지네!”

소작인들은 자신들의 귀로 직접 들으면서도 도무지 믿기지 않는 표정들이었다.

“대신, 여러분들도 나와 약조했듯이 청풍도가 김주태의 추수 일을 절대로 해줘서는 안 될 것이오! 만약 그 약조를 어기면 곧바로 땅을 다른 사람에게로 넘길 것이오!”

최풍원은 김주태를 서서히 말려죽일 작정이었다. 김주태는 소작인들이 아니면 그 많은 땅덩어리를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었다. 김주태에게서 소작인들을 떨어뜨려 놓는다면 김주태 땅은 개밥에 도토리 신세였다. 아무리 문전옥답이라 해도 농사를 지어줄 사람이 없어 묵논이 되면 깜깜한 그믐밤에 비단옷 입기나 마찬가지였다. 김주태는 지금까지 소작인들을 짐승 부리듯 하며 잘도 해먹어왔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었다. 최풍원은 김주태 코앞에서 농사를 지으며 그의 심기를 마구 건드려 미쳐서 팔딱팔딱 뛰게 만들 참이었다. 최풍원은 자신의 계획대로 하나둘 일을 만들어나가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 일이 추수였다.

청풍읍성 안 들판에서 추수가 시작되었다. 김주태 논에 비하면 최풍원의 쉰 마지기는 한 쪽 귀퉁이에 불과했지만 결실은 완연히 달랐다. 벌써 벼 때깔만 봐도 어느 논이 김주태 논이고 최풍원 논인지 금방 알 수 있었다. 한쪽 논은 기름을 바른 듯 반질반질 윤기가 흘렀고, 다른 한쪽 논은 푸석푸석 북데기가 서 있는 것 같았다. 김주태는 그걸 보기만 해도 울화통이 치밀었다. 똑같은 논인데 동자가 봐도 차이가 나니 미치고 팔딱 뛸 일이었다. 자신이 부리는 소작인들을 쥐 잡듯 해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농사도 정성이 들어가야 했다. 한 번 더 손길이 간 것과 덜 손길이 닿은 것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최풍원의 소작인들은 한 톨이라도 더 잘 영글면 제 것이 되는 것이니 틈만 나면 논에 와 살았지만, 소출이 더 나와도 자기들에게 돌아오는 것이 뻔한 김주태 소작인들은 시키는 일만 할 뿐이었다. 게다가 최풍원의 땅을 부치는 소작인들은 두 해나 소작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그러니 김주태네 소작인들은 이래저래 힘이 나지 않았다. 추수가 끝나고 도지와 장리를 제하고 나니 집으로 가져갈 게 없어 또 장리를 빌려먹어야 하는 김주태네 소작인들은 바리바리 벼 섬을 지고 집으로 들어가는 최풍원네 소작인들을 보니 더욱 울화통이 터졌다.

“김주태네 땅 둬 마지기 농사 지어봐야 자들 한 마지기 짓는 것보다 훨씬 못 혀!”

“한 마지기? 반 마지기만도 못 혀!”

“맞어! 몇 마지기가 뭐 중혀. 실속이 중하지. 우린 이렇게 농사 져두 다 같다 바치고 곧바로 장리쌀 먹어야 하는데, 자들은 올해부터 빚은 안 늘어나잖여?”

“벼 벨 맛도 안 나! 개뿔 해봐야 먹을 게 없으니 신이 나야지.”

김주태네 소작인들은 들판에서 일을 하면서도 불만만 쌓였다. 그러니 수확도 제대로 될 리 없었다. 벼 베는 것도 대충대충, 볏단 묶는 것도 대충대충, 논바닥에 이삭들이 줄줄이 떨어져 있어도 알뜰히 줍는 사람이 없었다.

“야 이놈들아! 눈깔이는 뒀다 뭐 하는데 쓰는 겨! 바닥에 나락이 숫하게 떨어졌는데 밟지 말고 주어야지! 제대로 안 하면 니놈들 도지에서 다 까버린다!”

김주태가 이리저리 돌아치며 잔소리를 해도 소작인들은 들어먹지 않았다. 김주태 혼자만 바쁠 뿐이었다.

“깔라면 까라지. 까거나 말거나 어차피 가져 갈 것도 없는 걸 까봤자지!”

“나두 북진여각에 가서 땅 좀 부치게 해달라고 떼를 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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