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농사는 경험이었다. 아무거나 심는다고 다 자라는 것이 아니었다. 다른 고장에서는 잘 자라는 데도, 우리 고을에서 심지 않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다 있었다. 그러니 고을마다 특산물이 있는 것이었다.

“벼를 베 내고 갈보리를 뿌리면 지금보다 두 배의 소작인들에게 땅을 빌려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요? 그러면 김주태 땅을 부치는 소작인 반은 우리 쪽으로 끌어들일 수 있지 않겠어요?”

봉화수는 땅을 부치게 해달라며 매일처럼 찾아오는 소작인들을 생각했다. 그리고 더 많은 소작인들이 북진여각 땅을 부치게 되면 청풍도가 김주태의 소작농들이 줄어들어 그만큼 그에게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계산까지 하고 있었다.

“좋은 생각이긴 하지만 여기서 논에다 보리를 뿌리면 그냥 건천에 내버리는 거나 마찬가지여. 그런 쓸 데 없는 일을 왜 하겠느냐?”

불가하다는 일을 자꾸 이야기하는 봉화수가 최풍원은 거슬렸다.

최풍원이 농사를 지어본 것은 예전 연풍에서 청풍으로 와 김주태 선친 김 참봉네 집 애기머슴으로 있을 때 몇 년 뿐이었다. 그것도 본격적인 농사일이라기보다는 집안의 허드렛일을 거드는 정도였다. 그리고 이후는 장사만 해왔다. 그런 최풍원이 농사일을 제대로 알 리 없었다. 그렇지만 보고들은 농사 이야기는 쌓여있었다. 청풍에서 보리를 논에 갈지 않는 것은 겨우내 강에서 불어오는 칼바람과 살을 에는 한파 때문이었다. 그런 추위 때문에 한겨울이 되면 쾅쾅 얼어붙는 논에 보리를 뿌려봐야 얼어 죽어버려 봄이 되어도 싹을 틔울 수 없었다. 아주 오랜 이전부터 청풍에 농군들도 겨울에 놀리는 논이 아까워 무엇은 해보지 않았을가. 그렇지만 아무리 해도 농사가 되지 않으니 하지 않는 것이었다.

“골몰해보면 무슨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요?”

“아니! 농사야 하늘이 하는 일인데 생각한다고 무슨 수가 있단 말이냐?”

최풍원이 대놓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아무리 하늘이 한다 해도 사람이 하는 일인데 무슨 방도가…….”

“시끄럽다! 그만 하고 나가 일이나 보거라!”

최풍원의 역정에 봉화수는 하던 말을 멈추었다.

북진난장이 철시를 하고난 후에도 장거리는 여전히 사람들 발걸음이 이어졌다. 장날이 되면 청풍읍장보다도 북진장이 더 붐볐다. 예년과 비교하면 청풍읍장은 장이라 할 수도 없을 정도로 쪼그러들기 시작했다. 읍장을 드나들던 장사꾼들과 읍장에 나오던 고을민들도 북진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사람들 발길이 줄어들며 장터가 썰렁해지자 물건들도 빈약해졌다. 그럴수록 사람들 발길은 점점 멀어졌다. 그럴수록 청풍도가의 명성도 점점 시들어져만 갔다. 북진여각 최풍원은 더더욱 고삐를 죄었다. 상전객주들과 각 임방객주들까지 똘똘 뭉쳐 청풍도가로 들어가는 물산을 막아버렸다. 가뭄에 웅덩이 물 줄어들 듯 청풍도가는 하루가 다르게 말라갔다.

그러는 사이 영월 성두봉 객주와 영춘 심봉수 객주에게 일임했던 한양으로 올라가는 뗏목일도 무사히 끝맺음 되었다. 그 일로 한양에서도 북진여각의 신뢰가 한층 더 높아졌다. 반대로 청풍도가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 탄호대감으로부터 미움을 사고 청풍부사로부터도 눈 밖에 나고 말았다. 최풍원은 이번 나무장사로 엄청 많은 이득도 챙겼다. 그 이득금으로 영월 동강 뗏꾼들 영춘 용진나루 뗏꾼들에게도 흡족한 공가를 주었다. 뗏꾼들은 북진여각 일이라면 거저라도 떼를 타겠다며 최풍원에 대한 칭송이 자자했다. 최풍원은 나무를 팔아 챙긴 돈으로 이포나루 곡물상들을 통해 양식을 사들였다. 양지가 있으면 음지도 있는 법이었다. 북진여각 최풍원이 흥할수록 청풍도가 김주태는 기울기 시작했다.

김주태가 마지막으로 기대를 걸고 있는 희망은 가을걷이였다. 읍성 내 논에서 나오는 소출에 잔뜩 기대를 걸고 있었다. 북진여각 최풍원에게 쉰 마지기의 땅을 빼앗기기는 했지만 아직도 이백 쉰 마지기의 논이 남아있었다. 거기에서 마지기당 두 섬을 거둬들인다 해도 오백섬이었다. 거기에다 청풍관내 사방에서 거둬들이는 논밭 도지를 합치면 적지 않은 물량이었다. 김주태가 기대를 걸고 있는 유일한 희망은 추수였다. 김주태는 그것을 언덕 삼아 발길을 돌린 장사꾼과 고을민들을 다시 청풍읍장으로 오게 만들 작정이었다.

가을 추수철이 되자 청풍읍성 들판도 풍성함으로 넘쳐났다. 알곡이야 누구네 창고로 들어갈지 모르지만 토실토실한 벼를 바라보고만 있어도 배가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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