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맞어유, 그건 간신배나 허는 짓거리지! 아무리 궁해도 저 살겠다고 남한테 해롭게 하거나 염치없는 짓을 한다면 그건 사람이 아니지유?”

“만출이도 동만이 생각에 동조했다.

“배를 덜 곯아봐서 그러지, 그깟 염치 개나 물어가라 해라! 내 식구 밥 굶기지 않는다면 무슨 일인들 못하겄냐?”

형 만택이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못마땅했다.

“그런데 김주태 집 일을 하지 말라는 연유가 있는가유?”

동만이가 물었다.

“이태 뒤에는 내가 김주태 땅을 몽땅 사들일 것이오! 그리고 그 땅은 모두 여러분들에게 경작을 맡길 것이오. 그러려면 여러 소작인들의 도움이 필요하오.”

최풍원이 세 사람에게 자신의 뜻을 밝혔다.

“우리는 김주태 일만 안 하면 되는거유?”

“아니요. 또 해줄 일이 있소이다.”

“또 할 일이 뭐유?”

“우리 땅을 부치는 소작인들은 당연하고 김주태 땅을 부치는 다른 소작인들한테도 이 같은 얘기를 소문내 주시오! 그게 당신들이 또 할 일이오.”

“알았구먼유! 그깟 거야 누워서 콩 줘먹기보다 쉬운 일이지유.”

“그리고 또 할 일이 있소이다!”

“또요?”

또 할 일이 있다는 최풍원의 말에 세 사람이 동시에 물었다.

“이번 추수부터 이태 동안은 아무것도 받지 않을 테니 그동안 김주태에게 빌린 장리빚을 모두 갚아야 할 것이오! 만약 이태 뒤까지도 장리 빚이 남아있는 소작인은 땅을 빌려주지 않을 것이오! 그 얘기도 우리 땅을 부치는 모든 소작농들한테 반드시 알려주시오!”

“여부가 있겠습니까유. 여적지 김주태가 워낙에 소작료를 혹독하게 받아가니 갚고 싶어도 갚을 형편이 못 되 그런 것인데, 이태 식이나 거저 농토를 빌려주시는데 당연히 그 빚부터 갚아야지유!”

“빚이라면 우리도 아주 지긋지긋 혀유. 이젠 비빌 언덕두 생겼으니 이참에 몽땅 갚아 버리야지유.”

“이렇게 은혜를 받았으니 우리도 갚아야지유. 무슨 일이라도 시켜주기만 하면 할 테니 언제라도 불러 주시유!”

세 사람은 최풍원이 너무나 고마워 목숨이라도 내놓으라면 내놓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이제껏 평생을 살아오면서 남에게 빼앗겨만 봤지, 누구로부터 무엇 한 번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니 더욱 그랬다.

이튿날부터 북진여각에는 청풍읍내에서 강을 건너온 소작인들로 북적였다. 세 사람이 퍼뜨린 소문의 진위를 알아보러 오는 사람도 있었고, 어떤 소작인들은 땅주인인 최풍원에게 고마운 인사를 하러 온 사람도 있었다. 소문은 삽시간에 읍내에 파다하게 퍼졌고, 김주태 땅을 부치는 소작인들은 그 소문을 듣고 부러워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배를 아파하는 사람도 많았다. 어떤 소작인들은 이번 추수가 끝나면 자기도 땅을 부칠 수 있게 해달라고 매달리며 떼를 쓰는 사람도 있었다. 최풍원으로서도 난감하기 이를 데 없었다. 땅은 쉰 마지기 밖에 없는데 연일 땅 좀 부치게 해달라며 문턱이 닳도록 찾아오니 그들을 달래서 보내는 일도 마음 편한 일이 아니었다.

“대행수 어른, 이모작을 하면 어떨까요?”

장사꾼들보다도 연일 북진여각을 찾아오는 소작인들이 더 붐비자 봉화수가 최풍원에게 물었다.

“이모작이라니, 뭘 이모작 한다는 말이냐?”

“가을걷이를 끝내고 그 논에 논보리를 심어보면 어떨가 해서요.”

“날이 따뜻한 겨울에도, 그것도 밭보리도 태반은 얼어 죽는 데 논보리가 살아남겠느냐? 괜히 아까운 나락만 없애지.”

“경상도 가면 밭에는 맨 보리고 논에도 보리들이 많이 자라고 있던 데요?”

“경상도는 여보다 날이 푹하니 보리농사를 지을 수 있는 것 아니냐?”

최풍원은 봉화수 이야기가 가당찮다며 귀담아 듣지 않았다.

청풍에서도 갈보리농사를 짓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겨우내 아주 볕이 잘 드는 양지쪽 밭에는 보리를 심기도 했다. 그래도 태반이 넘게 죽고 어떤 해는 몽땅 죽어 겨울이 지나고 나면 가뭄에 콩 나듯 밭에 보리 싹을 셀 정도로 드문드문했다. 청풍은 경상도보다 훨씬 북쪽이고 죽령을 경계로 날씨도 완연하게 달랐다. 더구나 청풍은 내륙 깊숙한 산간지방인데다 남한강 큰물이 흐르고 있어 겨울추위가 매서웠다. 그러니 보리가 싹을 틔우기 어려웠다. 게다가 밭보리도 아니고 논보리를 심자고 하니 최풍원이 귓등으로 흘리는 것도 당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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