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죽어서 끝장나지 않으면 모를까 살아서는 무슨 수로 그걸 해결한단 말이유?”

“그건 그려유. 농사 소출보다 이자가 더 빨리 불어나는데 워떻게 그 빚을 따라 잡을 수 있 말이유?”

동만이와 만택이가 여드레 삶은 호박에 이도 안 들어갈 소리라며 최풍원의 이야기를 귓등으로 흘렸다.

“그걸 상의하려고 이렇게 부른 것이오.”

“제 식구 입도 하나 끄슬리지 못해 굶기는 우리거튼 농사꾼하고 상의해봐야 뭐가 나올게 있겠슈?”

“그러게 가진 거라곤 거시기 두 쪽 밖에 없는데 무슨 수로 김주태 손아귀에서 헤어날 수 있단 말이유? 어림 반 푼어치도 없지!”

“김주태 빚에서만 헤어날 수 있다면 남의 집 담 넘는 일만 아니라면 무슨 일이고 다 할 수 있겠네유!”

아예, 세 사람은 빚을 갚을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세 사람이라고 남의 것을 빌려먹고 갚지 않겠다는 도둑놈 심보는 아니었다. 그리고 처음부터 그런 마음을 품은 것도 아니었다. 형편이 그들을 그렇게 만든 것이었다. 형편도 그들이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한 것은 열심히 일 것 밖에는 없었다. 큰 욕심도 없었다. 몸 놀리지 않고 그저 부지런히 일을 하면 식구들 배는 굶기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었다. 그들 말처럼 거시기 두 쪽 밖에 없으니 그들이 믿는 구석은 몸뚱이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그들의 순진한 생각일 뿐이었다. 열심히 부지런히 몸이 녹아나도록 일만 한다고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아니었다. 제 땅 한 뼘도 없는 소작농은 있는 놈 궂은 일만 해주고도 배불리 밥을 먹기는커녕 평생 빚에 시달리며 종살이를 하다 골병이 들어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소작농들의 운명이자 타고난 천형이었다. 땅 가진 부자들이 후해지지 않으면 소작인들은 천지개벽을 해도 지금의 형편에서 절대로 벗어날 수 없었다.

“내가 김주태 빚에서 벗어나게 해주겠소!”

최풍원이 세 사람에게 빚을 갚아주겠다고 했다.

“워떻게 우리 빚을 갚아준단 말이유?”

그렇게 물어보고는 있었지만 동만이는 최풍원의 말을 그다지 믿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일단 내 땅을 부치는 소작농들에게는 이태 동안은 도지를 한 푼도 받지 않겠소이다!”

최풍원이 세 사람에게 두 해 동안은 소작료를 전혀 받지 않겠다고 말했다.

“한 푼도유?”

“그렇소! 한 푼도!”

“왜 우리 같은 것들에게 그리 하는 거유?”

“그러다 이태 뒤에 한꺼번에 왕창 씌우는 거 아니유?”

두 형제는 잔뜩 의심스러운 눈치였다. 이제껏 남의 땅을 얻어 부치면서도 제 땅을 거저 빌려주는 지주는 한 사람도 본 적이 없었다. 지주가 소작인들 사정을 봐줄 때는 반드시 그에 대한 요구조건이 있었다. 그 조건이라는 것이 몸으로라도 때울 수 있는 것이라면 몸이 부서지라 일을 해서라도 들어줄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 조건은 몸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라 돈이 앞장 서야 될 일이었다. 우선 당장 달콤한 말에 넘어가 덥석 물었다가 나중에 곤욕을 치렀던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니 황당하기조차 한 최풍원의 호조건이 세 사람은 선뜻 내키지 않았다.

“그런 일은 없소! 다시 말하지만 두 해 동안 소작료를 면제하고, 그 이후에도 그것에 대한 댓가는 요구하지 않을 것이오. 두 해 동안 나오는 소출은 몽땅 땅을 부치는 농군들에게 줄 것이오! 단…….”

최풍원이 어떤 말을 하려다 잠시 멈추더니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단?”

세 사람이 일시에 최풍원의 입을 쳐다보며 무슨 말이 나오려는지 기다렸다.

“단, 내 논을 부치는 사람은 내 논만 농사를 지어야 하오!”

“내 논만 지어야 한다니 그게 무슨 말이유?”

“내 논을 농사 짓는 대신 김주태 일은 절대 하면 안 된다는 말이요!”

최풍원이 자신의 논을 무상으로 농사 짓는 대신 김주태 땅은 부치지 말 것을 요구했다.

“도가하고 여기 여각하고 어떤 사이인지 잘 알고 있는데, 우리가 여기 땅을 부친다고 하면 김주태가 우리에게 땅을 줄 리 만무하잖유. 그리고 우리가 아무리 남의 땅을 부쳐먹는 농사꾼이지만 그래도 염치가 있지, 어떻게 이쪽저쪽을 오가며 그 땅을 부칠 수 있겠슈. 그건 사람 도리가 아니지 않어유?”

동만이가 염치를 운운하며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 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