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 온깍지활쏘기학교 교두

 

과유불급,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뜻입니다. 특히 예절에서 지나치면 젊은 세대에게 ‘꼰대’라는 욕을 듣습니다. ‘꼰’은 크다는 뜻, ‘대’는 사람을 뜻하는 아이누어. 활터는 저를 포함하여 머리 허연 늙은이들로 가득합니다. 젊은 사람들이 활터에 진입하기가 매우 어려운 까닭이기도 합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가지고 애들 군기 잡으려 드는 것 중에 가장 두드러진 것이 ‘정간배례’입니다. ‘조선의 궁술’(1929)에는 없는 것이고, ‘한국의 궁도’(1986)에서 최근에 나타난 것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옛날에는 활터에 올라가면 먼저 올라온 사람에게 ‘왔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먼저 온 사람들은 ‘오시오’라고 응수하죠. 이것을 등정례라고 합니다. 그나마 사람들이 설자리에서 활을 쏘는 중이면 생략하는 아주 간단한 예절입니다. 활터는 활 쏘는 것이 최우선인 곳입니다. 활터에 활을 쏘는 행위 그 이상의 것이 있으면 안 됩니다. 그건 운동이 아니라 종교가 됩니다. 그런데 바로 이 정간배례가 오늘날 활터에서 한량의 생사여탈권을 쥔 신으로 등극했습니다. 정간배례를 안 하면 활도 못 쏘고 쫓겨납니다. 실제로 청주에서 충주로 이사하면서 이적하려던 고영무 접장이 정간배례를 안 하겠다고 대답하여 거부당했습니다. 활 쏠 곳이 없는 고 접장은 결국 활을 접었습니다. 활량이 활이 아닌 다른 이유로 활을 못 쏜다는 것은 정말 황당무계한 일입니다.

저보다 먼저 배운 분들에게 정간배례를 왜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왜 하는지 그분들도 모릅니다. 그래서 집궁 연도를 점차 거슬러 올라가면서 정간에 관해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해방 전에 집궁한 분들의 대답은 한결같이 그런 거 없었고, 최근에 생긴 거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이렇게 조사한 결과 정간은 1977~1978년 무렵 전라도의 남원 관덕정, 구례 봉덕정, 곡성 반구정 같은 활터에서 거의 동시다발로 나타난 것이었음이 밝혀졌습니다.

이상한 점은, 해방 전에 집궁한 분들은 당시 정간이 없었다고 하는데, 오히려 해방 후에 집궁한 분들이 정간은 해방 전부터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자신이 경험 안 해본 시절의 사실인 것처럼 주장하는 것을 보고는 이분들이 무언가에 쫓기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그것은 버르장머리 없는 젊은것들을 훈육할 방법이었습니다. 시대가 바뀌고 젊은 사람들이 활터로 들어오자 젊은이들 특유의 경박성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던 구사들이 예절을 강제할 방법을 정간에서 찾은 것입니다. 결국, 활터 한가운데 벽에 ‘정간(正間)’이라는 글씨를 써 붙이고 거기에 대고 경례를 하라는 요구로 발전한 것이 정간배례의 본질입니다.

대한궁도협회의 공식교재인 ‘한국의 궁도’에도 정간은 최근에 나타난 일이라고 분명히 적었는데도, 편자인 임종남보다 한참 더 후배인 한량들이 해방 전부터 있었다고 주장하는 현실은 그들의 위기의식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국궁 1번지인 서울 황학정과, 민간사정인 전주 천양정에는 정간이 없습니다. 아울러 전국에 정간이 없는 활터가 40여 곳이 넘습니다. 그런 곳에서는 어떻게 정간배례를 할까요? 정간배례는 긁어 부스럼이고, 과유불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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