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 대풍이 들어 더 많은 소출을 거둔 해는 그만큼 더 소작인들에게 나눠주어야 도리였다. 그러나 그럴 때는 또 제멋대로 예년의 기준에 따랐다. 최풍원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법이고 소작인들은 그 말에 따라야 했다. 만약 그 말에 토를 달거나 못마땅한 표정이라도 보이면 금방 앙갚음을 했다.

“그래도 성님은 그래서 작년에 부친 다섯 마지기를 다시 받었잖우? 난 피농이라구 도지를 좀 감해 달라구 했다가 사지육신 그렇게 애꼈다가 뭐할라구 그러냐구 니가 그렇게 게으르니까 농사가 그 모양이라구 지랄발광을 떨더니 세 마지기나 줄쿤 거 아니유. 아니, 물난리에 도랑 터져 물 들어와 쭉정이 생긴 것두 내 탓이유?”

다시 생각해도 억울해 죽겠다는 듯 만춘이가 학학거리며 연거푸 화를 토해냈다.

“김주태, 그런 앰한 소리 하는 게 어디 한두 해더냐. 왜 대들어가지구 그런 화를 당한단 말이냐. 그래봐야 도지 줄구 새끼들 배곯는 일밖에 더 생기냐?”

“형님 같으면 타작마당에 와서 그 지랄 떠는 데 천불이 안 나우?”

“그래 억울하니 워쩌. 칼자루 쥔 놈이 그 놈인데 참아야지. 천불 난다구 승질대루 했다가 종당에 워떻게 됐냐? 도지 줄구 식구들 굶긴 일 밖에 더 있더냐. 동상두 그 승질머리 좀 죽여!”

그래도 형이라고 만택이가 동생을 타이르듯 일렀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만택이라고 마냥 속이 편할 리는 없었다. 만택이 역시 작년 가을걷이가 끝나고 속 문드러지는 일이 한둘이 아니었지만 꾹꾹 참아냈다.

나라든 고을이든 어쨌든 있는 놈이 곳간을 풀어야 세상 살기가 편한 법이었다. 아무리 일가친척이고 부모형제라 하더라도 손에 쥔 것이 없으면 눈앞에서 죽어나가도 도와줄 수 없는 것이 돈이었다.

김주태는 돈이 있었다. 살다보면 먹고 입는 것 말고도 돈 쓸 일이 많았다. 쓰지 않고 죽을 고생을 해서 겨우 넘어가는 일도 있었지만, 꼭 써야만 할 일도 많았다.

그럴 때 돈을 빌릴만한 곳이 김주태 밖에는 없었다. 그러니 아무리 억울해도 살려면 김주태에게 굽실거리고 시키면 죽는 시늉까지 해야 했다.

“두 마지기나 닷 마지기나 어차피 김주태에게 빚지기는 맹 한가지여! 소작인들 수중에 뭐 있는 것을 못 보는데 뭐가 남어 나겄어. 닷 마지기 부쳐 도지 내고 장리 갚고 나면 또 빚져야 혀!”

동만이가 푸념을 늘어놓으며 허망한 표정을 지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김주태 장리만 생각하면 속이 터지는구먼. 차라리 도둑을 맞았다면 그런가보다 할 텐데, 두 눈 번연히 뜨고 옴짝달싹 못하고 뺨 맞는 기분이여!”

만택이가 푸념을 늘어놓으며 쩝쩝해했다.

“남의 양식을 빌려 먹었으니 갚는 거야 당연지사 아니요?”

최풍원이 물었다.

“남의 빚 갚는 거야 당연하지유. 그런데 조건이 지랄 같으니 허는 말이지유. 글쎄 올 봄 보릿고개 때 가을에 벼로 주기로 하고 보리장리를 갖다먹었는데 이자 원금 합쳐서 가을 볏금으로 달라니 이게 말이 되느냔 말이유.”

만택이 사정을 들어보면 이런 이야기였다.

올 봄에 땟거리가 떨어져 가을에 주기로 하고 김주태에게 보리쌀을 빌려먹었는데 갚으려하니 볏금으로 달라는 이야기였다. 거기에다가 봄에 빌릴 때는 보리 시세에 맞췄는데 가을이 되니 이자 원금을 합쳐 가을 볏금 시세로 쳐서 달라는 이야기였다. 보리쌀 주고 쌀로 내놓으라는 말이나 마찬가지였다. 송아지 보여주고 어미소 주었으니 어미소 내놓으라고 억지 부리는 놈이 김주태였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밭도지를 빌려주고 밭곡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벼로 달라고 했다. 그러다보니 소작인들은 수확한 밭곡을 장에 나가 싸게 팔고 다시 벼를 살 때는 비싼 값을 치러야하니 농민들은 이중삼중으로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소작료에다 장리로 양식을 빌려먹다 보니, 해마다 연년마다 추수하여 꺼나가 보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자 족보를 따져보면 이자가 이자를 낳고, 그 이자가 원금에 합쳐져 또 이자가 붙으니 누가 아들이고 누가 손자이고 누가 증손자이고 누가 고손자인지 알 길이 없었다. 그런 지경이니 빚이 줄어들기는 커녕 늘어나지만 않아도 다행이었다.

“얘기는 잘 들었소이다. 그것을 어떻게 해결할 방법을 찾아보십시다!”

최풍원이가 세 사람을 향해 말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