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나도 김주태 얘기는 들어서 대충 짐작이야 하고 있지만, 본래 사 할이 땅주인 몫이고 육 할이 소작인 몫 아니오?”

“그야 국법 얘기고, 보통 반반은 하지유.”

“그럼 김주태는 그보다 더한다는 말이오?”

“이르단 말씀이오! 김주태 땅을 부치려면 기본이 육 할이고 거기에 닷 푼을 더 달라고 할 때도 허다하구먼유.”

“그러면 어찌 된 것이오?”

최풍원이 언뜻 계산이 서지 않아 물었다.

“지가 닷 마지기를 부치는데 마지기당 두 섬 소출을 본다면 모두 열 섬 아니유. 그럼 열 섬 중 여섯 섬이나 여섯 섬 닷 말을 도지로 내는 셈이지유.”

동만이가 손가락으로 셈을 해가며 답했다.

“그건 김주태, 지가 정한 도지가 그렇다는 것이고, 이런 것 저런 것 치면 그보다 더하지유.”

만출이가 그게 다가 아니라며 동만이 이야기에 살을 보탰다.

“이런 것 저런 것이라면 다른 뭐가 또 있단 말인가?”

“청풍도가에서 빌려다 먹은 장리벼와 보리 장리에 대한 원전과 이자를 또 갚아야 하잖어유. 청풍도가가 누구 꺼것슈? 그러니 그건 또 누구한테 가겄시유?”

“죄라면 내 땅 없어 남 도지 부치는 내 잘못이지만 김주태 그 양반 참 알뜰이도 고을민들을 빨아먹고 있지유!”

만출이 이야기를 듣던 만택이가 김주태 험담을 했다.

“양반은 무슨 놈의 양반! 아마 아귀도 김주태처럼 처먹었으면 벌써 배가 터져 죽었을거구먼!”

동만이는 만택이가 김주태를 그 양반이라 부르는 것이 몹시 못마땅하다는 투였다.

김주태 땅을 부치는 소작인치고 청풍도가에 장리 빚을 지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한 해 농사를 지어봐야 소작료와 빌려다먹은 양식을 갚기에도 간당간당했다. 그래도 간당간당한 소작인은 형편이 나은 편이었다. 대부분 소작인들은 가을걷이가 끝내고 이것저것 다 떼고 나면 오히려 적자였다. 그러니 추수가 끝나도 땟거리가 없었다.

“그러니 워쩌유. 당장 식구들 밥은 먹어야 허잖우? 가을에 추수하면 주기로 하고 지난 가을 빌려다 먹은 벼도 못 갚었는디 또 빚을 질 수밖에. 그것두 벌써 먹어치운 거 원금과 이자로 떼고 나면 두 섬 이상 더 주지도 않어유. 노모에 애새끼들까지 집안에 먹는 입은 숫한데 그깟 쌀 두 섬 마누라가 애껴 먹는다 해도 겨울도 나기 전에 동 나기 일쑤고, 그러니 워쩌유. 청풍에서 꿔줄 데라고는 도가 밖에는 없으니 또 김주태 한테 가 머리를 조아려야지유. 김주태의 온갖 후벼 파는 앰한 소리를 다 들은 다음에야 또 가을에 갚기로 하고 봄보리 몇 말 얻어다 주린 배를 채워야지유. 그 뿐이유. 소작 얻은 논에서 나는 나락으로는 도무지 계산이 서지 않으니 밭이라도 얻어 소소하게 뜯어먹을 요량으로 빌린 밭도지까지 내고나면 이게 뭐하는 것인지 허망하기만 혀유. 꾀부리지 않고 죽어라 일을 하는데도 입에 들어오는 것은 없이 빚은 계속 늘어가니 요지경 속 아니유? 이 모든 게 농사꾼으로 타고난 내 탓이려니 하고 팔자소관 탓을 해도 억울한 생각이 듭니다요.”

동만이가 신세타령을 하면서도 불쑥불쑥 화가 치미는 모양이었다.

“도지도 도지지만 장리에 죽어나자빠지는 게 우리 소작인들이유.”

“맞어! 농사 지어봤자 그놈의 장리에 다 맞아죽는구먼!”

동생 만춘이의 푸념에 형 만택이가 맞장구를 쳤다.

형 만택이 말마따나 김주태는 소작인들을 참으로 알뜰이도 벗겨먹었다. 그 방법도 가지가지였다. 장리는 곡식을 꾸어먹고 갚을 때는 한 해 이자로 빌려간 곡식의 절반을 내야하는 고리를 말하는 것이었다. 만약 봄에 한 섬을 빌려먹었다면 가을에 한 섬 닷 말을 갚아야 했다. 김주태가 청풍도가를 앞세워 소작인들을 착취하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본래 소작료라는 것이 그해 농사가 끝나고 수확한 소출물에 대한 분배가 원칙이었다. 일테면 그해 흉년이 들어 소출이 한 마지기에 한 섬이 나왔다면 소작인과 땅주인이 육 대 사로 나누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런데 김주태는 반대로 자신이 육을 먹고 소작인에게 사를 주었다. 그것도 모자라 김주태는 흉년이 들어 피농을 했어도 풍년든 해 소출을 기준으로 삼아놓고 그것을 기준으로 소작료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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