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흥구의 세상 엿보기]설거지
[강흥구의 세상 엿보기]설거지
  • 충청매일
  • 승인 2020.09.15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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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충청매일] 식사를 마치고 아내가 설거지를 한다. 수세미에 주방 세제를 묻혀 뽀드득 소리가 나도록 닦고 헹군다. 선반 위에 올려 정돈된 식기들이 반짝반짝 윤기가 흐른다. 아마 우리 사는 인생도 저 식기들과 같이 설거지를 하여 선반 위에 정돈되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목에 인삼밭이 있었다. 할아버지께서 반겨 주시며 곧 비가 내릴 것 같으니 어서 집에 가서 비설거지를 하라고 하셨다. 급히 달려 집에 도착하니 이미 비가 한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가방을 마루에 던지고 먼저 빨랫줄에 널려있는 빨래부터 걷어다 마루에 올려놓았다. 양철 지붕 위에 널려있는 고추도 긴 장대를 이용해 쓸어내려 자루에 담아 사랑방에 들여놓았다. 그 외에도 눈에 보이는 것들을 대충 치우고 나니 비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어수선한 집을 정리하는 것도 설거지다. 늘어놓기만 하고 치우지를 않아 어지럽다. 제 자리를 찾아 있어야 할 곳에 정리하여 걸어두면 집안이 깔끔해진다. 농기구는 농기구끼리 정리하고 운반 도구는 운반도구끼리 정돈한다. 이후 사용할 때 찾아 쓰기 편리하고 질서정연하여 보기도 좋다.

아침을 먹고 나면 설거지를 마치고 점심을 맞이한다. 점심, 저녁 설거지를 마치면 하루가 흘러간다. 새 빛, 새아침을 맞이하려면 어제의 흔적들을 설거지 하고나서 만나야한다. 지저분한 흔적들을 방치하고 계속 누적되어 쌓아둔다면 내일은 열리지 않을 것이다. 귀찮고 힘들어도 닦고 치울 건 치워야 한다. 우리 인생도 소년기를 지나면 소년기를 설거지하고 청년기를 만나고, 청년기를 설거지 하고나서 장년기를 맞이해야 한다. 그래야만 노년기에 지난 흔적들로 인한 불편함 없이 깨끗한 노후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자연은 자연이 알아서 설거지한다. 벌레들의 울음소리, 비 내리는 소리, 바람 소리, 한 해를 마치고 낙엽 되어 뒹구는 나뭇잎 등을 스스로가 알아서 깨끗이 설거지 한다. 뱉어 놓은 소리마저 거둬들이는, 그리고 다시 연속적으로 사용하는 자연의 법칙을 따라서 살아야 하겠다. 우리도 자연의 이러한 정신을 본받고 살아간다면 큰 어려움 없이 인생을 즐기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맛있는 것들을 먹고, 풍요로운 수확물을 거두어들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마무리가 더 중요하다. 즉 설거지가 꼭 필요한 것이다. 나는 그동안 먹을 줄만 알았지 먹은 식기들을 닦을 줄은 몰랐다. 인생을 살아온 과정이 지저분하기만 했다. 무엇하나 제대로 정리된 것들이 없다. 그래도 그것이 잘못된 것인지 조차 모르고 살아왔다. 그런 사고방식에 젖어 있었다. 이제 인생 설거지를 할 때가 온 것 같다. 그동안 많은 곳과, 것들을 어지럽혀 왔다. 차례대로 하나씩 정리하여 깔끔하게 선반 위에서 광택이 흐르는 식기들처럼, 깔끔하게 정리 정돈해야겠다.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있었던 어리석었던 일들이나 잘못된 것들을 설거지하듯 씻어내고, 선반 위에 올려져 다음을 준비하는 식기들처럼 살아가겠다. 아무렇게나가 아닌 언제 어느 때나 사용 가능한 준비된 인생이 되어야 한다. 우리 모두 화려하되 넘치지 않는, 앞으로 남은 생을 위하여, 열심히 닦고 정돈하는 삶을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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