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범의 시시콜콜한 이야기]광화문
[김영범의 시시콜콜한 이야기]광화문
  • 충청매일
  • 승인 2020.09.15 16: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인
청주민예총 사무국장

[충청매일] 죽창은 들지 마라. 정치깡패들이 들었던 몽둥이나 개발이라는 명분 아래 강제철거민 두들겨 패던 야구방망이나 근로환경개선을 위해 투쟁하던 노동자로 향하던 쇠파이프는 언제든 들어도 좋다. 그건 너의 들 것이니. 그러나 썩어빠진 봉건 지배층과 맞선 농민들의 죽창은, 외세의 침입에 나라를 지키고자 죽음과 맞바꾼 민중의 죽창은 들지 마라. 지하에 잠들어 있는 녹두장군 분노하시니.

나는 광화문에 가본 적이 없다. 월드컵 응원전에도, 고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 촛불집회 때도, 전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위한 촛불집회 때도, 예술인 블랙리스트 책임자 처벌을 위해 모였을 때도 난 광화문에 가지 않았다. 나는 한국전쟁 세대도 아니고, 새마을운동 세대도, 민주화운동 세대도 아니다. 나의 인생은 격동의 파도가 잠잠해진 망망대해를 떠도는 배와 같다. 표류하는 배에 올라 흘러가는 대로 살아간다. 그러니 내가 세상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는 셈이다. 그러나 저마다의 열정과 상처를 간직한 사람들은 열정의 부흥과 상처의 보상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함께 행동한다.

2020년 8월 15일, 코로나19로 인해 전 국민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도 전광훈 추종자들은 광화문에 모여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이로 인해 잠잠했던 코로나19가 전국적으로 확산하였고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로 서민의 시름은 날로 깊어졌다. 전광훈 씨가 재수감되자 사랑제일교회 변호인단은 문재인 정부에 대해 국민소송을 하겠다고 한다. 이들은 문재인 정권의 정치 탄압이라 말한다.

어쩌다 한국의 교회가 국민을 대변하는 집단이 되었을까. 이들은 여의도에 가고 싶은 것일까, 청와대에 가고 싶은 것일까.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바이러스보다 정치적 행보와 지지층 확보를 위한 쇼가 더 중요한 이유가 무엇일까. 말도 안 되는 구호 속으로 뛰어드는 많은 이들은 무엇을 위해 광화문에 모인 것일까. 단 한 번이라도 정의를 위해, 진보를 위해, 진실을 위해 거리에 나선 적 있는가. 태극기와 성조기를 손에 든 일명 태극기부대를 보며, 저들의 열정과 상처는 어디에서 왔을까 생각한다. 전쟁일까. 새마을운동일까. 맥아더 장군일까. 고 박정희 대통령일까.

하늘 맑고 바람 선선한 가을 오후, 신채호 동상 주변에 흩날리는 태극기를 보며, 태극기의 존엄과 위상은 저런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터 태극기가 일명 보수단체의 전유물이 되었을까 개탄스럽다. 나는 진보의 거리, 촛불의 거리를 흉내 내는 무리가 꼴 보기 싫을 뿐, 일명 노사모도 아니었고, 일명 문빠도 아니다.

세상에 어떤 누구도 신이 될 수는 없다. 우리는 그의 올바른 생각을 존중할 뿐이지 그 이상을 바라는 단체 행동은 이기주의일 뿐이며, 이것이 지속한다면 예전의 사태와 다를 바 없다. 우리는 이미 신격화된 인간이 얼마나 위험한지 경험했다. 아직도 유효하기에 더 위험하다. 국민의 손으로 선택한 권력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니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제 세상인 양 폼 잡는 인간은 더 경계해야 한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권력과 자본이 오가는 것이 아니길 바란다. 혹, 본전 생각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진다면 우리 사회는 희망이 없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