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그렇게 어거지를 쓴다고 될 일이오?”

“못 주오!”

이제 김주태는 아예 막무가내로 나왔다.

“그렇다면 내게도 생각이 있소이다!”

“맘대로 하시오! 타지 사람이 그 땅을 가져간다한들 무슨 수로 농사를 짓겠소?”

“땅이 있는데 왜 농사를 못 짓는단 말이오?”

“땅만 있으면 뭐하오? 사람이 있어야지!”

“사람이 왜 없소? 청풍 사방에 소작인 천진데.”

“그 사람들이 그 땅을 부친다 합디까?”

김주태가 우갑노인을 보며 빈정거렸다.

“땅이 있는데 부칠 사람이 없겠소이까?”

“그놈들 다 내 땅 부치는 놈들인데, 내 말 듣지 않으면 어찌 될 것을 뻔히 알고 있을 텐데 그 땅을 부치겠소?”

김주태가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라며 자신만만해했다. 김주태가 그리 자신 있어 하는 것은 이제껏 청풍에서 자신의 명을 거역하는 소작인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청풍에서 김주태의 눈 밖에 난다는 것은 멸문지화를 당하는 것만큼이나 끔찍한 일이었다. 목이 달아나 죽으나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으나 죽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김주태에게 밉보이면 도지를 얻는다는 것은 당연히 불가능했고, 급작스럽게 도움을 청할 일이 생겨도 이웃의 도움을 전혀 받을 수 없었다. 김주태에게 찍힌 사람을 도와주다 들통이라도 나면 똑같이 미움을 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청풍에서 김주태에게 찍히면 죽을 날을 받아놓은 역적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지경이니 땅이 넘어갔다 해도 부칠 사람이 없으니 한두 해도 지나지 않아 묵논이 되고 몇 해도 지나지 않아 체념한 타지사람은 결국 농사를 포기할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김주태는 그때 가서 헐값으로 주워 담기만 하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여기 최 행수에게 이 땅문서를 넘길 것이오!”

우갑노인이 땅문서를 최풍원에게 넘겼다.

“서방님, 이제 저 땅은 내 땅이 되었소이다!”

최풍원이 땅문서를 김주태 면전에 흔들며 담 너머로 펼쳐진 노릇노릇해지는 들판을 가리켰다.

“네 놈이 이렇게 나를 골탕 멕이려느냐! 그러고도 네놈이 무사할 성 싶더냐!”

김주태가 금방이라도 최풍원을 잡아먹을 듯 소리를 질러댔다.

최풍원에게 그 땅이 넘어간다면 사정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었다. 청풍읍에서 그 땅을 부칠 소작인을 구하지 못한다 해도 최풍원은 북진에서 얼마든지 그 땅을 부칠 사람을 구할 수 있었다. 북진에서는 강만 건너면 청풍읍내가 지척 거리였다. 게다가 청풍읍내에도 최풍원을 은근하게 따르는 사람들이 퍽 많았다. 무엇보다도 최풍원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 땅을 부칠만할 정도로 바지런하다는 것을 김주태는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을 잘 아는 김주태는 불안했다. 그래서 더 길길이 뛰는 것이었다.

“서방님, 고함은 나중에 질러도 되니 아직은 아껴두시오! 이제부터는 서방님이 핏대 세울 일이 매일처럼 벌어질 것이오!”

최풍원이 김주태 부아를 돋구었다.

“보자보자 하니 네놈이 점점 가관이로구나!”

“점점 더 좋은 구경을 보게 될 거외다.”

‘뭐가 어째고 어째!“

김주태의 얼굴이 점점 더 붉어졌다.

“집안에서고 밖에서도 당신이 눈만 뜨면 당신 앞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눈에 불을 켜고 보게 될 것이오!”

“참으로 네놈과는 악연이로구나!”

“그 악연을 누가 만들었소이까? 바로 당신이오!”

“무어라! 당신?”

아예 김주태는 말도 못하고 발만 동동거렸다.

“그럼 내 동생의 아들한테 당신이란 말이 그리 거슬린단 말이오? 보연이를 생각하면 그 말도 과분하오! 금수도 당신보다는 낫소! 당신이 내 동생 보연이에게 어떤 짓거리를 했는지 난 다 알고 있소. 그 원수를 지금부터 차근차근 갚아줄 테니 당신도 한 번 당해보시오!”

최풍원도 보연이 이야기가 나오자 분을 이기지 못해 목소리가 떨리고 손발을 부르르 떨었다.

“이보게, 최 행수! 나는 땅을 넘겼으니 이제부터 그 땅에 대해서는 당신이 알아서 하시오!”

우갑노인이 김주태가 들으라는 듯이 큰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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