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그 땅을 제게 이태만 무상으로 빌려주셨으면 해서 이렇게 왔습니다요.”

“내 그럴 줄 알았네! 자네가 갑자기 들이닥쳤을 때는 뭔가 있어서였지. 하하하!”

윤왕구 객주가 방안이 떠나가라 호쾌하게 웃었다.

“왜 그래야 하는지 그 연유나 들어봄세!”

“어르신께서 그리 해주시면 이태 안에 김주태가 가지고 있는 읍내 땅을 모두 제 것으로 만들어 버릴 것입니다요!”

“그건 자네가 할 일이고, 그런데 왜 도지는 감해 달라는 말인가? 자네 남의 것을 너무 날로 먹으려 하는 것 아닌가?”

“그게 아니라 이번에 그 땅에서 나오는 수확물을 모두 소작인들에게 풀어버리려고 합니다요!”

“쉰 마지기 땅에서 나오는 소출을 몽땅 소작인들에게 준단 말인가?”

“예!”

최풍원이 망설이지도 않고 대답했다.

“왜?”

“김주태와 소작인들 사이를 끊기 위해서입니다요!”

“김주태와 소작인들을 끊는다?”

“그렇습니다요!”

최풍원이 윤왕구 객주에게 자신의 계획을 소상하게 설명했다.

최풍원의 의도를 설명하기 전에 먼저 김주태의 알토란 같은 땅 쉰 마지기를 최풍원이 관리하게 된 연유는 이러했다. 최풍원이 김주태를 더욱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 우갑노인에게 도움을 청해 청풍도가에 있는 곡물을 몇 배의 웃돈을 얹어주고 매입했다. 이것이 자신의 땅을 빼앗기 위한 미끼라는 것을 김주태는 돈에 눈이 멀어 알아채지 못했다. 그리고 목상과 뗏꾼들을 등쳐 떼돈을 벌 수작을 벌이는 김주태를 역이용해 그가 목숨처럼 아끼는 읍내 논을 쉰 마지기를 빼앗았다. 처음부터 그 땅은 최풍원이에게 넘겨주기로 약조하고 벌인 일이었다. 그러나 최풍원이 당장 그 땅을 매입할 여력이 없어 일단 경작권만 넘겨받기로 약조하고 소출의 심 할을 윤왕구 객주 상전에 주기로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삼 할도 두 해 뒤에 주겠다는 것이었다.

최풍원의 의도는 이러했다. 청풍 읍내에 있는 김주태의 옥답은 삼백 마지기 쯤 되었다. 그 중에서 이번에 차지한 땅은 쉰 마지기였다. 김주태의 전체 땅에 비하면 일부분이었지만 그 논은 관아 정문과 팔영루 사이에 위치한 금쪽같은 땅이었다. 최풍원은 그 땅을 고을민들에게 맡겨 경작시킬 계획이었다. 그리고 도지도 헐하게 하지만 소출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많이 나눠줄 작정이었다. 그렇게 되면 김주태네 논 한 마지기를 부치는 것보다. 최풍원이네 땅 한 마지기를 부치는 것이 더 실속이 있을 터였다. 결국 소작인들은 최풍원의 땅을 부치려고 달려들 것이었다. 그리고 그럴수록 김주태네 땅을 부치려는 소작인들은 줄 것이었다. 아무리 땅을 많이 가졌어도 그 땅을 경작할 소작인이 없으면 김주태도 어쩔 수 없을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당장 김주태에게 코가 꿰여있는 소작인들이었다. 김주태로부터 빌려먹은 장리쌀을 갚지 못해 끔찍한 착취를 당하면서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놈의 빚 때문에 죽을 똥 싸게 일을 해도 입에 들어오는 것이 없으니 당연히 빚 갚을 길은 묘연하고 해년마다 김주태의 종살이를 하는 것이었다. 최풍원은 그 고리부터 끊을 생각이었다. 그러려면 소작인들이 바쳐야 할 소작료를 한 해는 감해주고 버틸만한 양식도 미리 당겨주어야 했다. 그래서 최풍원은 윤왕구 객주에게 삼 할의 소작료를 두 해만 미뤄달라는 것이었다.

“어르신과 약조한 삼 할은 이 태 뒤에 모두 갚겠습니다!”

“알겠네! 장사가 이문을 남기는 일이지만 그것도 사람이 없으면 말짱 헛일 아닌가? 역시 자네는 대단한 장사꾼이구먼!”

윤왕구 객주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어르신 청풍도가 김주태한테 좀 가주시지요?”

최풍원이가 우갑노인에게 부탁했다.

“알겠네. 내일이라도 당장 청풍으로 올라감세!”

우갑 노인이 최풍원의 의중을 읽고 이유는 묻지도 않았다.

청풍도가 김주태로부터 넘겨받았던 논 쉰 마지기에 대한 권리 때문이었다. 모든 것이 처음부터 의도한 것이지만 최풍원은 그 땅을 김주태의 코앞에서 관리하며 눈에 가시처럼 굴 작정이었다. 그렇게 함으로써 김주태의 심기를 흐려놓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소작인들을 끌어들여 장차는 김주태의 읍내 땅을 모두 장악하고 종당에는 청풍도가까지 꺼꾸러뜨릴 복안을 세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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