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테라피 강사

 

[충청매일] 봄을 어딘가로 빼앗겼네, 어 여름도, 아니 가을까지? 사상 초유의 긴 장마 끝나지 않을 듯한 전염병으로 서서히 지쳐가고 있다. 어려운 시간과 싸워내는 우리 모두를 위로할 만한 이야기를 찾아본다. 

시간의 흐름을 알려주는 선풍기 한 대, 그 앞에서 그걸 작동시키려 애쓰는 할머니, 딸깍. 으음, 강풍 버튼이 안 되네, 고장이 났나? 딸깍. 표제지에 네 장면으로 나뉘어 표현된 그림.

외롭고 힘겹게 강아지 메리와 여름을 보내는 할머니 집에 손자가 놀러 와 우리는 바닷가에 갔다 왔는데 할머니도 다녀오셨냐고 묻는다. 할머니가 몸이 불편해 못 다녀온 걸 알게 된 손자는 다음에 꼭 같이 가자고 바다 소리가 들린다며 소라껍데기를 주고 간다.

손자가 떠나 적막하게 집에 남게 된 할머니와 메리. 할머니는 고장 난 선풍기를 틀고 텔레비전 앞에 앉아 또 더위와 씨름하려는데 손자가 주고 간 소라껍질 속에서 소라게가 기어나온다. 메리가 소라게를 좇다가 갑자기 소라 속에 빨려들었다가 나온다. 메리에게는 바다 내음이 난다. 할머니는 강아지와 함께 소라게를 따라 소라 속 바다로 휴가를 떠난다. 옛날 수영복을 꺼내고, 커다란 양산에 가벼운 돗자리도 챙기고, 수박 반쪽도 들고서. 파도가 찰방대는 탁 트인 해변에서 갈매기와 수박도 나눠 먹고, 햇볕에 몸도 태우고, 바다 고래와 뒹굴거리기도 한다.  소라게를 따라간 기념품 가게에는 수많은 기념품이 있는데 할머니는 바닷바람 스위치를 산다.

집으로 돌아와 욕조에 물을 받아 몸을 씻고 바닷바람 스위치를 고장 난 선풍기에 끼운다. 윙 윙 윙 시원한 바닷바람이 할머니와 메리에게 온다.

선풍기가 신나게 돌고, “왈왈” “그래, 바닷바람처럼 시원하구나.”

손주가 주고 간 소라껍데기가 시원한 바닷바람이 되어 할머니에게로 온다. 몸이 불편한 나이대에는 많은 시간을 추억에 의존해 살아가게 된다. 현실에서 해결되지 않는 어려움을 상상의 세계로 이끌어 무리하지 않게 해결하는 안녕달 작가의 기지가 여지없이 나타난 ‘할머니의 여름휴가’다. 어른이 되어보면 혼자 계시는 할머니 이야기는 불편한 감정들과 죄스러움, 어찌하지 못하는 자기 생활의 번잡함으로 부대낀다. 작가는 과거의 추억과 현재의 필요를 어떻게 조화할 지 할머니 일상을 통해 제시한다. 일상에서 할 수 있는 만큼의 로망을 찾아 실천하고 실현하려는 소중함을 따뜻하게 그려낸다. 역시 나이들어 가는 아들이나 딸이 등장하지 않고, 손자가 등장하는 것은 어떤 역할을 하느냐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일상을 소중하게 보내는 법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저 평범한 소라껍데기를 손자의 향기와 추억으로 만드는 할머니, 새로이 기운을 내서 외롭고 적막할 시간을 즐겁고 풍요하게 채워나가는 것이다. 다음을 기약할 수 있도록 몸이 건강해진다면 그것도 좋은 일이고, 그렇지 못하다고 해도 하루하루는 그것 자체로 즐겁게 살면 좋기 때문이다. 아프거나 건강하거나 어쨌거나 자기 앞의 생이니 지루해 하지 말고 행복할 뭔가를 찾아내는 일상이 되어야겠다. 집에 있건 나다니건 혼자이건 누군가와 함께이건 어쨌건. 행복할 마음 바탕은 서로 다져야 겠다, 달라지는 기준과 방법에 잘 적응도 해나가면서.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