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김주태 놈 지독한 거야 청풍 관내가 뜨르르한 것 아니더냐. 그게 다더냐?”

“웬걸요! 소작료도 소작료지만 김주태 하는 짓이 참으로 가관이었습니다. 며칠 전 풋바심을 좀 해먹었다고 소작인 하나를 잡아다 볼기짝이 헤지도록 매질을 했다고 사람들이 수군거리더라구요.”

“참으로 호랭이도 안 물어갈 위인이구먼. 그깟 풋바심으로 해먹었으면 얼마나 해먹었다고 그렇게 고약한 짓을 했다나.”

봉화수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심봉수가 혀를 끌끌 찼다.

“얼마나 주렸으면 그 지독한 놈 논에서 풋바심을 했겠는가. 김주태는 지 놈 배가 부르니 남 배고픈 사정을 알 턱이 없지!”

성두봉도 욕을 해댔다.

풋바심은 아직 덜 여문 보리나 벼 낱알을 훑어다 절구에 찧어 나물과 섞어 끓여먹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먹을 양식은 없고 낱알 익을 때가지는 기다릴 수 없으니 여물지 않은 낱알을 훑어다 우선 허기라도 면하기 위해서였다. 얼마나 굶주려 견딜 수 없었으면 저승사자보다도 무서운 김주태 도지를 부치며 그 논에서 풋바심할 생각을 했겠는가. 사람 종자라면 측은지심에서라도 모르는 척 넘어가주는 게 인정이었다. 그러나 김주태는 소작인 하나쯤 굶어죽는 것보다 자신의 논에 알곡 한 줌 없어지는 것을 더 아깝게 여기는 인사였다.

“그래도 자꾸 빈 이삭이 보이자 김주태는 아예 논둑에 주야로 머슴들을 세워놨다고 하더구먼요. 그리고는 소작인들이 일하고 논에서 나오면 옷을 홀랑 벗겨 털기까지 한 대요. 그래도 소작인들은 이듬해 도지를 얻어야 하니 입도 뻥긋 못하고 있더라고요.”

“어쩌다 그런 인사가 청풍에 나타났다냐?”

“주릴할 놈!”

성두봉과 심봉수가 돌아가며 욕을 해댔다.

“화수야, 너는 이길로 나하고 충주 윤 객주 어른께 좀 다녀오자.”

봉화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최풍원이 충주 윤왕구 상전에 가자고 했다.

“지금 북진 장마당이 한창인데 여기에 대행수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겠는가?”

최풍원이 북진을 비운다고 하니 성두봉이 걱정되어 하는 말이었다.

“북진 난장을 접기 전에, 그리고 추수하기 전에 윤 객주 어른과 서둘러 상의해야 할 일이 생겼네.”

“그 문제를 상의하려 그러는가?”

“그렇다네!”

성두봉의 물음에 최풍원은 그렇다고만 대답했다.

성두봉과 심봉수는 영춘과 영월로 올라가고 최풍원과 봉화수는 충주로 내려갔다.

“그래, 바쁠 터에 기별도 없이 갑작스레 무슨 일로 왔는가?”

우갑노인이 상전을 들어서는 최풍원을 보며 물었다.

“객주 어르신과 두 분께 긴히 상의 드릴 일이 있어 급히 내려왔습니다요. 어른께서도 그간 무고하셨는지요?”

언제나 최풍원은 우갑노인을 보며 주눅이 들었다. 아마도 어린 시절 처음으로 장사를 배웠기 때문일 것이었다. 최풍원이 공손하게 읍을 하며 인사를 올렸다.

“자 안으로 들게! 객주어르신은 안에 계시네.”

우갑노인이 최풍원과 봉화수를 상전 안쪽으로 데리고 갔다.

“내, 자네 사정은 여기서도 잘 듣고 있다네. 이번에도 큰 성황을 이루고 있다지?”

“빈 수레가 요란하다고 변변찮은데 괜스럽게 소문만 그리 무성합니다요, 객주어르신!”

“그래 무슨 일로?”

윤왕구 객주가 최풍원을 빤하게 쳐다보았다.

“일전에 청풍도가 김주태로부터 빼앗은 논 쉰 마지기 일로 긴히 상의드릴 일이 있어 이렇게 왔습니다요.”

“그것은 이미 이 사람과 끝난 얘기 아닌가? 타작 끝나고 수확물 삼 할을 주기로 했던 것 아닌가?”

윤왕구 객주가 최풍원과 우갑노인을 번갈아보며 물었다.

“그렇습니다요, 어르신. 여기 최 행수가 여력이 생겨 땅을 사기 전까지는 대신 맡아 관리하고 삼 할을 우리 상전에 입고하기로 했습니다요.”

“그런데 무슨 문제라도 생겼는가?”

윤왕구 객주가 우갑노인의 답을 듣고 최풍원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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