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최풍원은 김주태의 치부 기반인 소작료를 끊어버리기 위해 그의 땅을 붙여먹고 사는 소작인들을 이용할 생각이었다. 그러려면 소작인들을 김주태로부터 떨어뜨려야했다. 아무리 땅이 많아도 그 땅을 부쳐줄 사람이 없다면 그 땅은 죽은 땅이나 마찬가지였다. 혼자서는 그 땅을 부칠 수 없었다. 지금까지야 서로 땅을 부치겠다며 땅보다 사람이 많으니 배짱을 부리며 도지를 주었지만 그 고리만 끊는다면 김주태는 하루아침에 양지가 음지가 될 것이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북진은 장꾼들로 북적거렸다. 상전이고 난전이고 값싼 물건들이 지천으로 넘쳐흘렀다. 북진나루에도 경상들이 몰고 온 경강선과 인근 고을을 오가며 짐을 실어 나르는 지토선이 강물을 메웠다. 워낙에 강을 건너 오가는 사람들이 많으니 근처 나루터에서 거룻배가 여러 척 올라와 쉴 세 없이 강을 오갔다. 사람이 저래 모이니 장터는 성시가 될 수밖에 없었다. 북진장이 활황을 이루자 청풍읍장은 점점 활기를 잃었다. 청풍읍장이 쪼글어 들수록 청풍도가 역시 하루가 다르게 쇠락하는 빛이 역력해졌다. 팽팽하게 맞서다 한쪽이 주눅 들기 시작하면 그 반대쪽은 더더욱 승하는 법이었다. 청풍도가가 죽을 쑬수록 북진여각은 더더욱 기세가 뻗쳤다. 북진여각의 상전객주와 임방객주들은 물론 막일을 하는 일꾼들까지도 신이 나서 장마당을 돌아쳤다.

“성 객주, 곧 물이 질 테니 심 객주하고는 올라가 떼를 준비해야하지 않겠는가?”

최풍원이 말했다. 북진여각 사랑채에는 영월맏밭 성두봉 객주와 영춘 심봉수 객주가 마주앉아 있었다.

“그렇잖아도 그리 할 생각이었네.”

“급한 불도 끄고 여기 장도 자리를 잡는 모양새니, 우리도 올라가 장마 지기 전에 떼를 매놔야지.”

최풍원의 물음에 두 사람이 그리 답을 했다.

곧 장마가 지면 큰물이 날 것이었다. 큰물이 지고나면 불어난 물을 이용해 곧바로 뗏목를 띄워야 했다. 몇 동가리 되지 않는 작은 떼는 강여울이 드러날 정도의 갈수기만 아니면 언제든 가능했다. 그러나 여러 바닥을 한데 엮은 큰 뗏목은 큰물이 져야만 강물에 띄울 수 있었다. 지난번 청풍도가 김주태가 술수를 부리려다 미수에 그친 동강 뗏목을 한양가지 옮기려면 곧 닥칠 장마 전에 통나무를 엮어 떼매기를 마무리해놓아야 했다.

“이미 부사와 얘기를 해 탄호대감한테도 연통을 넣어놨으니, 동강 뗏꾼들하고 떼를 한양가지 옮기는 일일랑 두 사람이 맡아서 해주시게.”

“걱정 말고 대행수는 여기만 신경 쓰시게!”

성두봉이가 최풍원을 안심시켰다.

“우리 여각으로서는 처음 대궐에 공납하는 목상 일이니 우리 명운이 걸린 일일세. 그러니 각별히 신경을 써주시게. 이번 뗏일이 우리 여각에 상당히 중한 일이란 걸 너무나 잘 알 테니 더는 얘기 않겠네!”

“뗏일은 우리가 할 일 아닌가? 그러니 대행수는 우릴 믿고 마음 놓으시게!”

“성 객주가 영월에서 단단히 해 내려보내겠지만, 우리도 다시 한 번 꼼꼼하게 엮어 한양으로 보낼테니 과히 염려 마시우!”

성두봉과 심봉수가 다시 한 번 최풍원을 안심시켰다.

“자네들이 이리 해주니 나는 참 든든하다네!”

최풍원이 두 사람을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건 그렇고 청풍도가 김주태는 어찌 할 생각인가?”

“한 산에 두 마리 호랑이가 한데 살 수는 없지 않겠는가?”

“어차피 기울어진 싸움 아니겠는가?”

“힘 빠진 호랑이도 호랑이는 호랑이 아니겠는가. 끝까지 조심해야지!”

“쥐도 도망갈 구멍을 터주고 몬다고, 너무 몰아치지는 말게. 막다른 길에 이르면 돌아서서 물 수도 있으니.”

성두봉이 최풍원에게 일렀다.

“여부가 있겠는가. 김주태 스스로가 주저앉아 옴짝달싹을 못 할 때까지 주변을 싹 말려버릴걸세!”

최풍원이 이를 응시 물며 말했다.

“대행수 어른, 분부하신 일마치고 돌아왔습니다.”

그때 청풍읍에 나갔던 봉화수가 돌아왔다.

“그래, 알아 봤느냐?”

“예. 우리 예상대로 불만이 대단했습니다.”

봉화수가 세 사람에게 돌아가며 읍을 한 후 최풍원에게 청풍 갔던 일을 고했다.

“소작인들 원성이 가장 높은 건 뭐더냐?”

“그야 당연히 소작료지요. 소작료도 다른 곳에 비하면 말도 못할 정도로 월등히 높아 원성을 사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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