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그건 좀…….”

조구만이가 몹시 난처해하며 말끝을 흐렸다.

“아직도 덜 똥줄이 타는가보구만! 청풍도가를 살리고 싶으면 김주태를 데리고 오너라!”

최풍원의 눈빛에서 불똥이 튀었다.

“알겠소이다. 그럼 그리 전하겠소이다.”

조구만이가 더는 사정을 해봐야 소용없음을 알고 물러갔다.

비록 김주태가 관아에서 아전 노릇은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양반 부스러기였다. 김 씨네 일가는 조상 대대로 이곳에 터전을 잡고 행세를 부리며 살아온 집안이었다. 청풍 인근에서는 그 누구도 김 씨 일가의 눈 밖에 나면 밥 먹고 살기 힘들었다. 그래서 어떻게라도 잘 보이기 위해 그 앞에서는 죽는 시늉까지 해야 했다. 식구들 목숨줄이 김주태 한마디에 달렸으니 그 앞에서 기지 않을 수 없는 것이 고을민들 처지였다. 그뿐이 아니었다. 청풍부사조차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토호세력이었다. 신임부사가 내려오면 김주태의 집부터 찾는 것이 의례 정해진 사또의 행차였다. 신임부사가 일개 관아 아전의 집부터 찾는 것은 김주태가 돈줄을 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또는 그 돈이 필요했다. 그 돈이 있어야 대궐의 높은 분에게 뇌물을 바치고 좋은 자리를 하나 받아 한양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그러니 아전이라 하지만 김주태가 사또의 영전 줄을 잡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이유로 신임사또가 청풍에 부임해와 첫 행보가 김주태의 집이라는 것은 청풍고을민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 위세를 누리던 김주태가 최풍원이 부른다고 올 리 없었다. 더구나 최풍원은 자기 집에서 허드렛일을 했던 머슴이었다. 아무리 급하고 숨이 목전에 차올랐다 해도 그런 상것이 부르는 데 올 리가 만무했다. 그러나 최풍원은 청풍도가가 살아날 방법은 그 길밖에 없음을 김주태에게 전할 것을 조구만에게 일렀다.

부자 망해도 삼 년은 가고, 썩어도 준치였다. 지금 김주태가 최풍원의 술수에 말려 대궐의 탄호대감과 청풍부사 눈 밖에 나 사면초가에 몰렸지만 아직도 그를 떠받치고 있는 전답이 청풍고을 관내에 수없이 널려 있었다. 아직은 가을이 무르익지 않아 곤경에 처해있지만 추수 때가 되면 얼마든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발판이 될 수 있었다. 그러기 전에 김주태의 목을 다시 죄어야 했다.

대대로 김주태 집안을 끌어온 소득의 원천은 자신 소유의 땅을 도지로 주고 소작인들로부터 걷어 들이는 소작료였다. 김주태가 소작인들에게 물리는 소작료는 악명이 높았다. 나랏법으로 정한 소작료도 김주태에게는 개 짖는 소리였다. 김주태가 소작인에게 부르는 소작료가 곧 법이었다. 그 소작료가 얼마나 혹독한지 봄부터 가을까지 온 가족이 달라붙어 땅강아지처럼 일해도 추수 때 받는 것은 땅 마지기에 벼 반섬이었다. 그것도 타작을 하고 난 후 알곡은 지가 가져가고 뒷목으로 남은 찌끄래기였다. 그나마 그것으로 온갖 것을 섞어 늘려먹어도 채 겨울이 닥치기도 전에 바닥이 나기 일쑤였다. 그래도 소작인들은 찍소리 한 마디 하지 못했다. 김주태에게 아쉬운 소리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산 입에 거미줄 칠 수는 없는 일이니, 배를 곯아 앙앙거리는 어린 것들을 보고 못 본 척 외면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누구에게라도 손을 벌려야하지만 청풍에서 그것을 해결해 줄 사람은 김주태 밖에 없었다. 그러니 아무리 소작료가 박하고 혹독하다 해도 함부로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그렇게 소작인들로부터 착취한 소작료를 기반으로 고을민들에게 장리쌀을 빌려주고 고리로 이자를 받아 치부를 했다. 한번 김주태로부터 장리쌀을 빌려먹은 소작인들은 고리대금 때문에 농사를 지어도 헛일이었다. 일 년 농사를 지어 소작료와 빌려먹은 장리쌀을 갚고 나면 당장 먹을 양식도 남지 않았다. 그러면 다시 김주태로부터 장리쌀을 빌려먹을 수밖에 없었다. 죽어라 일을 해도 해마다 빚은 늘어가는 빈곤의 악순환이었다. 김주태 밑에서 소작을 부치는 농민들은 빚이 있는 한 그의 손아귀로부터 벗어날 길이 없었다. 죽어야 끊어질 수 있는 쇠사슬이었다. 이렇게 동네 사람들의 고혈을 짜 축적한 돈으로 관아와 결탁하여 청풍도가를 움직이며 이중삼중으로 치부를 하고 있었다.

결국 김주태의 부의 근원은 땅이었다. 그리고 그 부를 이루어주는 사람은 소작인들이었다. 김주태와 소작인들 사이를 끊는다면 그것이 김주태를 죽이는 일이 될 것이었다.

“화수야, 김주태의 읍내 땅을 부치고 있는 소작인들을 알아보거라!”

최풍원은 봉화수를 불러 그 방법을 강구해보라고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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