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번역가

[충청매일] 1368년 주원장이 원(元)나라를 멸하고 명(明)나라를 개국해 초대 황제에 올랐다. 이전에 주원장은 중원 남쪽 3대 반군 중에 가장 세력이 약했다. 이때 선비 유기(劉基)를 알게 되어 간청하여 자신의 측근으로 삼았다. 유기는 원나라 과거시험에서 장원을 차지할 정도로 식견과 지혜가 뛰어난 인물이었다. 유기의 주 업무는 바로 모사였다. 군주를 위하여 지략과 꾀를 내는 일이었다. 대부분의 모사들이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일을 처리하듯이 유기 또한 그랬다. 공을 이루고 명리를 추구하지 않았고 자랑하지 않았다. 유기는 3대 반군의 대결 국면을 이렇게 말했다.

“주군이 천하를 얻으려면 가장 강한 진우량과 맞서서는 안 됩니다. 두 번째인 장사성을 먼저 멸하여 세력을 얻은 후에 진우량을 공격하면 가능합니다.”

주원장이 이를 따라 차례로 강자들을 물리치고 결국 중원을 얻었다. 이를 계기로 주원장은 유기를 존중하여 항상 선생으로 호칭했다. 그리고 군신들에게 유기를 말하기를 나의 장자방이라고 치켜세웠다. 장자방은 한나라 고조 유방이 천하를 얻을 때 지혜를 낸 모사 장량을 말한다.

명나라 개국 이후에 주원장의 측근들은 모두 높은 벼슬을 부여받았다. 하지만 유기는 태사령이라는 낮은 관직에 임명되었다. 이는 유기가 평소 주원장에게 직언을 서슴지 않았기 때문에 미움을 산 까닭이었다. 결국 유기는 6개월 만에 하직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주원장이 다시 불러 이전보다 더 높은 관직을 맡아줄 것을 요청했다. 그리고 유기를 시험하기 위해 물었다.

“이선장이 우승상에 오르니 교만해진 것 같소. 그래서 승상을 바꾸려 하오. 양헌은 어떤가? 왕광양은 어떤가? 호유용은 어떤가?”

이에 유기가 아뢰었다. “기둥을 바꾸려면 반드시 큰 나무를 써야 합니다. 만일 작은 나무로 기둥을 삼으면 반드시 무너지기 마련입니다. 지금 이선장이 그들보다는 뛰어납니다.”

이는 이선장과 주원장이 사돈지간이기에 유기가 조심스럽게 답한 것이었다. 또한 유기는 주원장이 공신들을 제거하려는 의도를 알아챘다. 주원장이 자신에게 그 일을 맡길 것이라는 걸 알고 벼슬을 정중히 거절하였다. 그리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행동을 조심하면서 바둑을 두고 시를 짓고 저술을 하면서 여생을 보냈다.

그러나 새로 승상이 된 호유용이 언제고 주원장이 유기를 다시 불러 중용할 것을 두려워하여 모함을 투서하였다. 유기가 황제의 정기가 있는 곳에 묘지를 미리 봐두었다는 허무맹랑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모함은 갈수록 커져 반역을 꾀하고 있다고 주원장에게 보고되었다. 결국 유기는 주원장의 승낙으로 호유용이 보낸 밀사에 의해 독살당하고 말았다. 얼마 후 주원장은 공신들이 혹시라도 황제의 자리를 탐할까 두려워 대규모 숙청을 단행했다. 호유용과 개국 공신 등 이만 명을 역모로 몰아 목을 베었다. 이는 ‘명사(明史)’에 있는 이야기이다.

감탄고토(甘呑苦吐)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는 뜻이다.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고 자신의 비위에 맞으면 취하고 아니면 버린다는 의미로 주로 쓰인다. 권력과 돈을 쫓는 자라면 예의를 버리고 남달리 비정해야 살아남는 법이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