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매일] “너희들을 관아에 넘기든 어쩌든 그 전에 주봉이 네 놈은 해야 할 얘기가 있다.”

“내가 아는 것은 지금 얘기한 게 전부요. 근데 뭘 또 할 얘기가 있단 말이오? 이젠 정말 숨기는 게 없소!”

최풍원이 김주봉이를 찍어 말하자 더는 할 얘기가 없다며 발뺌부터 했다.

“보연이를 알지?”

“보연이?”

최풍원이 누이동생 보연이에 대해 묻자 김주봉이는 처음 듣는 이름이라는 듯 생뚱맞은 표정을 지었다.

“내 동생인 보연이를 네 놈이 모를 리 있느냐?”

“아! 종조부 노리개였던 동첩 말이구려.”

김주봉이가 그제야 알겠다는 듯 아는 체를 했다.

“보연이가 어떻게 된 건지 너는 알고 있지 않느냐?”

“뭘 알고 있단 말이우?”

“보연이 죽음에 대해 알고 있지 않느냐 이 말이다!”

최풍원은 그동안 품고 있던 보연이의 죽음에 대한 의구심에 대해 물었다.

“그, 그건…….”

김주봉이가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보연이가 어떻게 된 것인지 똑바로 토설하거라. 만약 조금이라도 허투루 얘기하면 네놈 혀를 뽑아버릴 테다!”

최풍원이 넘겨짚으며 엄포를 놓았다.

김주봉은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고 느꼈던지 김 참봉이 죽은 후 집안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술술 털어놓았다.

김주봉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아버지 김 참봉이 죽고 나자 주태는 곧바로 보연이를 행랑어멈들이 기거하는 곳으로 내쫓았다. 그래도 제 아비 수발을 들던 사람인데 그리 박대하는 것은 너무 야박한 짓거리였다. 그러나 그건 짓거리에 속하지도 않았다. 김주태는 제 아비가 죽자마자 보연이에게 집적거리며 껄떡거렸다. 그리더니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주봉이가 어느 날 보연이를 겁탈했다. 아무리 동첩이라고 해도 제 애비와 살을 섞었던 여자였다. 엄밀히 따지면 어머니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사람을 아들이 욕 보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짐승만도 못한 짓을 저지르고도 김주태는 천연덕스럽게 보연이가 있는 행랑채를 출입했다. 한 번 길을 튼 주태는 주위의 눈도 아랑곳하지 않고 생각만 나면 보연이 방을 드나들었고, 보연이는 주위의 눈총이 따가워 견딜 수 없었다. 행랑어멈들은 주인인 주태를 욕하기보다는 계집년이 몸을 함부로 내돌리기 때문이라며 화냥년만도 못한 취급을 했다. 김주태의 패륜으로 충격을 받은 보연이는 정신이 오락가락했다. 그런데도 주태의 파렴치한 행동은 끊이지 않고 계속됐다. 결국 보연이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안채 마당에 있는 우물에 몸을 던지고 말았다. 자신의 파렴치한 죄가 들통 날까 겁이 난 주태는 천주학을 믿던 보연이가 그 사실이 드러나자 관아에 잡혀갈 것이 두려워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라고 뒤집어 씌웠다. 주봉이는 당숙인 주태의 지시에 따라 보연이의 시신을 수습해 화장을 해서 강물에 띄워버렸다는 이야기였다.

“뼈를 갈아 먹어도 시원찮을 김가 부자 놈들!”

김주봉의 이야기를 들으며 최풍원은 피눈물을 쏟았다.

“한 줌 목숨이라도 남아있는 한 내 반드시 김주태 이놈의 사지를 찢어죽일 테다!”

최풍원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김주태를 잡아 앙갚음을 하겠다며 이를 뿌드득뿌드득 갈았다.

“풍원아, 청풍도가를 쪼여야만 주태 놈을 잡을 수 있다. 그러니 잠시 분을 삭히거라!”

분을 이기지 못해 어쩔 줄 모르는 최풍원이를 장석이가 진정시켰다.

청풍도가의 계략을 막아낸 북진여각에서는 본격적으로 난장 틀 준비를 하고 읍성 내 향시인 한천 장날에 맞춰 개장을 했다. 청풍도가의 숨통을 끊기 위해서였다. 북진여각에서는 그동안 쟁여놓았던 갖가지 물산들을 일시에 풀어놓았다. 한편으로는 읍내로 통하는 모든 길을 틀어막고 청풍장으로 들어가는 물산은 풀뿌리 하나까지도 봉쇄를 했다. 그리고는 동몽회원들을 동원하여 북진에서 처음 열리는 난장을 청풍관내의 장사꾼들과 장꾼들에게 알렸다. 사람들에게 파는 물건은 싸게 내놓고 사들이는 물건은 후하게 금을 쳐서 받았다. 게다가 북진난장에는 청풍도가에서처럼 장사꾼들에게 뜯는 장세도 없었다. 그러자 값싸고 다양한 물건들을 지고 오는 장사꾼들의 왕래가 늘어나고 덩달아 물건을 사려는 장꾼들까지 몰려드니 북진난장은 매일같이 호황을 이뤘다. 그러자 청풍 읍리나루에 닻을 내리고 청풍장을 드나들던 경강상인들도 뱃머리를 돌려 북진나루에 닻을 내리고 짐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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