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연구원 연구위원

[충청매일] 태풍 마이삭이 강한 돌풍과 비로 전국에 크고 작은 피해를 주면서 지나갔다. 그런데 며칠 후에는 하이선이라는 태풍이 올라온다고 하니 올해는 참으로 바람 잘 날 없는 날이 이어지고 있다. 장마와 태풍은 위협적이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고, 겉의 상처는 언젠가 아물 것이라는 희망이 있다.

그런데, 이 장마와 태풍들보다 더 크고 더 오래가는 소용돌이가 지금 국민들 마음에 자리잡고 있는 것 같다. 지난해 조국 전 법무부장관으로 시작한 사회 혼란은 아직도 끝나지 않고 있고, 작년 12월 말 시작한 코로나19도 그 끝이 보이는 듯 하더니 지난 8·15광화문집회로 다시 확산하고 있다. 게다가 일부 전공의들의 집단 휴진 사태는 사회 전반과 국민의 마음을 더욱 혼란스럽고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문제는 자연이 주는 장마와 태풍은 언젠가 지나가지만, 우리 마음에 남아있는 갈등의 소용돌이는 그 끝을 종잡기 어렵다는 데 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사실이 아닌 거짓 정보가 너무 많고, 그 거짓 정보에 많은 사람들이 흔들리고 서로 갈등을 빚고 있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거짓임이 드러났음에도 여전히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러한 갈등은 가까운 사이, 특히 가족일 경우 대화로 풀기가 매우 어렵다. 그래서 대부분은 해당 문제에 대해서는 포기하거나 무시하면서 지낸다.

필자가 직접 경험하고 있는 이런 종류의 갈등은 함께 살고 있는 장인어른과의 사이에서 주로 발생한다. 우리나라 상황을 기준으로, 매우 보수적인 장인과 그 반대의 진보적 성향인 필자는 태생적으로(?) 부딪칠 수밖에 없다. 보수와 진보의 정확한 정의나 방향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필자나 장인도 정확히는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나라에서는 보수와 진보로 구분되며, 늘 반대편에 서 있다. 때로는 반대편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서로를 비판하는 경우도 자주 경험한다.

이렇게 정치적 성향을 포함하는 이견과 갈등의 경우, 자신이 주장했던 것이 거짓 또는 잘못된 정보에 의한 생각이었음이 드러나더라도 본래의 주장을 바꾸려 하지 않는 성향이 더 강하다. 지난해 1년 가까이 나라 전체를 뒤흔들었던 조국 전 장관 관련 보도들이 지금은 하나씩 거짓으로 드러나고 있지만, 언론은 자신들의 잘못되었던 보도를 고치거나 사과하지 않는다. 필자의 장인도 여전히 작년의 정보들이 사실이라고 믿고 있다. 물론 이런 자기중심적 고집 또는 주관적 신념은 보수진영만의 것은 아니다. 사회 문제를 떠나 개인간의 사소한 의견충돌에서도 이러한 현상은 자주 목격할 수 있다. 이처럼 자신의 주장이 잘못되었거나 오류가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을 때, 사람들은 왜 이것을 쉽게 인정하고 수정하려고 하지 않는 것일까? 신념이 강해서일까? 아니면 단순한 고집 때문일까?

필자는 이 현상을 ‘자신의 마음에 거짓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보통 내가 어떤 사물이나 대상에 대해 가지는 초기 마음은 객관적 사실이나 정보보다 나의 판단력에 더 큰 영향을 끼친다. 즉, 99가지의 객관적 사실이 1가지의 주관적 신념을 이기지 못한다고 한다. 내가 주장했던 것을 철회하게 되면 나의 존재까지 부정당하게 되는 것 같은 ‘거짓 마음’과 이에 대한 두려움이 작용한다. 그래서 거짓된 보도인 줄 알면서도 계속 믿음으로써 그 두려움에서 도망치려는 것이다. 내 주장을 철회할 줄 아는 것, 이것은 줏대가 없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마음의 증거일 수 있다. 내 생각과 주장이 곧 나의 존재에 대한 평가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갈등 해소의 첫걸음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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